플라톤 국가 4-1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 국가 4권 정리-1


지도자가 해서는 안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딱 봐도 너무 힘들어 보입니다. 부귀영화는 고사하고 소소한 인간의 행복조차 누릴 수 없습니다. 당연히 그러한 지도자가 행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지금까지의 논의는 올바른 국가를 정립하기 위한 것이다. 성공한 지도자 혹은 행복한 지도자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국가의 지도자의 모습이 이러하다면 물론 올바른 국가의 농부의 모습,  장인의 모습도 있을 것이다. 이들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자신의 본분은 아니다. 본분을 벗어나 그것을 추구할 수는 있다. 그것은 일정한 폐해가 있을 것이나 지도자가 자신의 본분을 벗어나는 것만큼 국가차원에서 위험하기는 않을 것이다. 일단 홀륭한 국가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지 행복한 지도자를 그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할말없음) 그리고 지나친 부와 가난이 국민이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덧붙입니다. 국민도 그렇지만 지도자는 특히 그 본분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그것을 담보는 것은 결국 교육과 양육이라고 합니다. 앞서 살펴본바와 같은 교육을 받은 지도자라면 지도자로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설령 개인의 엄청난 희생을 다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행복의 척도가 달라지니까요. 역사상으로 일신의 이익보다는 공적 일에 헌신한 훌륭인물이 많이 있지만 플라톤의 국가가 그리는 지도자상에 딱 부합하는 인물 간디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세세히 찾아보지 않아 확신할 수 없지만 간디의 사상과 일치하는 부분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올바른 교육과 양육이 이루어진다면 지도자가 일신의 안위를 추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국민의 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법으로 규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시시콜콜한 규제 따위는 건전한 사람이라면 자율적으로  도출해낼 수 있는 상식이지요. 일일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성품은 개판인데 그것은 놔두고 규제만 늘이는 것은 끝도 없는 규제를 반복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그것은 히드라의 머리를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치 현대 입법의 양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법이 끝도 없이 쌓여갈 뿐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교육과 양육을 받은 세대라면 구세대의 잘못을 시정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교육방법 함부로 바꾸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가장 보수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시가교육과 관련하여 다른 리듬이 스며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리듬의 변화는 결국 국가의 근본을 흔드는 힘을 가졌지만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놀이인양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 올바른 국가는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 올바른 국가에서 입법사항은 국가의 근본에 관한 것 다시 말해 신성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국가의 기원 정당성에 대한 신화적인 사항이라고 합니다.


빼먹은 부분이 있는데 국민제각각이 맡은 바 일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이러한 국가야말로 비로소 하나의 국가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소크라테스가 부를 억제해야 한다(영토 역시 일정한 크기 이상 가져서는 안된다)고 하자 한 제자가 그럼 부강한 국가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지 않는가 하는 문제제기에서 나옵니다. 전쟁으로 인한 이익을 나누면 특히 재산상의 이익을 양보한다면 동맹군을 얼마든지 만들수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록 하나의 국가로 보일지라도 올바르지 못한 국가는 하나의 국가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얼마든지 동맹군이 내부세력 중에 있다는 뜻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만 이정도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첨가할 것은 앞에서 플라톤의 지도자상에 딱 부합하는 인물로 간디를 들었는데 차이가 있다면 간디의 경우 개인의 구원 혹은 개인의 구도의 견지가 중요하게 덧붙여져 있다는 점입니다. 국가에서는 개인의 구도의 차원이 없습니다, 그런 것이 주된 논의 장이 아니어서 그런지 플라톤의 사상에 그런 부분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육과 양육으로 이상적인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은 스파르타식 강압적 교육을 연상시키고 그러한 교육을 통해 인간의 성품이 훌륭해질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오류로 판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욕망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제대로 보지 못했고 또 인간의 고귀함의 깊이도 제대로 못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플라톤의 다른 저서를 읽어보니 않았으니 단언할 수는 없지요. 이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인간은 왜 올바르게 살아야 할까요?그러고 보니 지금 그것(올바름)을 찾고 있는 중이지요?


( 이때는 앞으로 더한 주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플라톤에게도 인간의 구원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플라톤에게는 자유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그것이 계속 거슬리게 되는데요. 다 읽어보면 플라톤은 거부하는 것은 욕망의 자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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