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짓밟히던 ‘날노래’에 인생을 담았소
다음달 노래 공연하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9곡 부르고 얽힌 일화 들려줘 ‘노나메기 재단’ 설립 밑돌로
‘재야의 큰어른’ 백기완(77·사진·통일문제연구소장) 선생이 다음달 25일 저녁 7시30분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 무대에서 ‘노래에 얽힌 백기완의 인생 이야기’ 마당을 펼친다. 그가 살아오면서 듣고 불렀던 날노래(유행가) 아홉 곡을 직접 부르고 그에 얽힌 투쟁사와 일화를 들려주는 자리다.
지난해 가을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열렸던 첫 공연에 비해 이번에는 2천석 규모의 대극장에서 100명 규모의 노동자합창단과 춤꾼 이애주 교수(서울대)를 비롯한 찬조 출연자들도 더해져 한결 풍성해졌다.
19일 낮 기자간담회에서 백 선생은 “노래는 내가 살아 온 과정의 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날노래는 우리 둘레에서 너도나도 흥얼거리는 노래를 말합니다. 내가 부를 날노래는 내 속에 잠겨 있던 울음을 끄집어내는 촉매적 존재라 할 수 있어요. 길바닥에서 뭇 발길에 짓밟히는 돌멩이 같은 게 바로 날노래지요. 나와 마찬가지로 짓밟히던 노래들을 부를 겁니다.”
이날 무대에서 그는 <세동무> <해방된 역마차> <비 내리는 고모령> <달도 하나 해도 하나> <고향설> <울고 넘는 박달재> <짝사랑> <대지의 항구> <녹슬은 기찻길>을 부르고 자신의 시도 낭송한다. 대부분 30~40년대 어릴 때 듣고 자란 곡들로 그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울고 넘는 박달재>라 했다. “노래 가사를 보세요. 특히 2절 뒷부분.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 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밥이나 떡이 아니라 도토리묵을 먹을 수밖에 없는 가난의 문제를 이렇게 미학적으로 잘 형상화한 시나 노래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배우 권해효씨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노나메기재단 설립을 위한 준비 과정이기도 하다. 내년 초쯤 추진위원회를 띄울 예정인 노나메기재단은 “진보정치와 진보 대중운동을 뒷받침하는 학술·문화운동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동석한 김세균 서울대 교수(노나메기재단 설립 추진위원회 준비위 공동대표)는 설명했다.
재단 설립을 위한 씨앗돈으로 통일문제연구소 소유의 땅과 건물, 통장 등을 모두 내놓기로 한 백 선생은 이렇게 부연했다. “진보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관만으로는 안 됩니다. 올바른 인생관도 마찬가지로, 아니 더 중요해요. 역사관과 생활관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요즘 진보진영의 통합 얘기가 많은데, 세력이 하나가 되는 게 급한 게 아니라 자신부터 하나가 되어야 해요. 객관 현실을 하나로 만드는 싸움을 통해 자신도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번 공연은 노나메기재단설립추진위(준), 서울대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서울대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가 공동 주최하고 문화다양성포럼이 주관하며 한겨레신문사·경향신문·프레시안 등이 후원한다. 입장료는 어른 1만원, 대학생 포함 학생 5천원인데 “마당판에서는 워낙 지정석이란 게 없기 때문에 공연장은 선착순 입장”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02)3272-2334.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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