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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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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http://cluborlov.blogspot.kr/ )



석유정점론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붕괴를 우려합니다.


드미트리 오를로프의 새 책 [붕괴의 다섯 단계](Five Stages of Collapse)은 이런 논의를 정리해 주는 동시에 다가올 붕괴를 경고하고 이를 대비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살아남은 (또는 살아남을) 사람들을 위한 도구상자"라는 것이 이를 잘 말해 줍니다.


여러 서평에 따르면 오를로프의 생각은 비관론보다는 낙관론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러시아 출신으로 12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엔지니어로서 미리 대비를 잘 하면 엄청난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붕괴'를 말하기 위해 1972년에 출판된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를 언급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로마클럽보고서에서는 비교적 단순한 성장 모형을 만들어서 시뮬레이션을 시켰습니다. World3이라는 이 프로그램(시나리오)은 세계 인구, 산업화, 오염, 식량 생산, 자원 고갈이라는 다섯 가지 요인만을 가지고 미래 사회를 예견하려 했는데, 2004년에 출판된 [성장의 한계, 그 후 30년](Limits to Growth: The 30-Year Update)에 따르면, 이 모형이 놀랍게도 지난 30년 동안을 잘 예측했다고 오를로프는 지적합니다. 


그 뒤의 10년을 아주 잘 예측하고 있는 것이 이탈리아 피렌체 대학의 우고 바르디(Ugo Bardi)가 제안한 소위 세네카 낭떠러지 모형(Seneca Cliff model)이라고 합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Lucius Anneaus Seneca)가 했다느 말에서 따 온 이름이랍니다.

“만사가 생겨나는 속도와 비슷하게 소멸된다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성과가 지니는 허약함에 어느 정도 위로가 될 걸세.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네. 생겨나는 것은 정말 느려터지지만,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거든."


석유정점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허버트 곡선(종 모양 곡선)은 정규분포(가우스 분포)이고, 정점을 기준으로 좌우대칭이죠. 그러나 바르디가 자원과 자본이라는 변수에다 오염이라는 변수를 덧붙이고 나니 이 종 모양 곡선이 한쪽으로 찌그러진 모양이 되었다는 겁니다. 성장을 향하는 쪽은 완만하지만, 정점을 지난 뒤에는 급격하게 하락해 버리는 모양이죠. 


오를로프가 말하는 붕괴의 다섯 단계는 신뢰의 붕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1. 재정적 붕괴(financial collapse): "평소와 같은 사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단계. 미래의 모습이 과거와 마찬가지일 거라는 믿음이 무너지고, 재정적 자산을 보장할 수 없으며, 금융기관은 갈수록 악화되는 단계.

  2. 상업적 붕괴(commercial collapse): 시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단계. 화폐가치는 갈수록 하락하고, 상품의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수출입의 연쇄가 끊어지고, 생활필수품의 품귀가 일어나는 단계.

  3. 정치적 붕괴(political collapse): 정부가 보살펴 주리라는 믿음이 무너지는 단계. 생활필수품 등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지면서 정부가 권위를 잃고 실제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단계.

  4. 사회적 붕괴(social collapse): 다른 사람들이 보살펴 주리라는 믿음이 무너지는 단계. 여러 사회집단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사회적 제도들이 무너지는 단계.

  5. 문화적 붕괴(cultural collapse): 인간의 덕에 대한 신뢰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단계. “친절, 관대. 배려, 돌봄, 정직, 환대, 공감. 자애” 등의 가치가 사라지고, 가족끼리도 부족한 자원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 단계. 


이 다섯 단계의 붕괴가 막연한 미래의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오를로프는 재정적 붕괴의 여러 측면들을 상세하게 다룬 뒤에, 실제 사례로 아이슬란드의 경우를 보여줍니다. 상업적 붕괴의 실제 사례로 러시아 마피아의 경우를, 정치적 붕괴의 사례로 아프가니스탄의 한 지역을, 사회적 붕괴의 사례로 집시를, 문화적 붕괴의 사례로 동아프리카의 "이크"라는 부족의 경우를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최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나 그리스 상황을 염두에 두면, 이런 붕괴에 대한 이야기가 막연한 비관주의자들의 문제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석유정점론이나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등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이 되어 있지만, 생각보다 붕괴가 가까이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한번 곱씹어볼만한 것 같습니다. 총체적인 붕괴는 아니라 해도 1단계 재정적 붕괴에 해당하는 외환위기 때 수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고 스스로 생명을 끊기도 하고 직업이 바뀌고 사회제도가 큰 변화를 겪었던 것을 보면, 이런 우려가 눈앞의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제 자신은 사회과학의 폭넓은 배경을 깔고 있지 않은 자연과학자나 공학자의 분석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편이라, 이 책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가령 저는 자레드 다이아몬드 식의 논의는 영 공감이 가지 않았었는데, 오를로프의 이야기는 어떨지 한번 차분하게 따라가볼만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선 짧게 이 책에 대해 저자 자신이 소개하는 내용을 한번 훑어보시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http://cluborlov.blogspot.kr/p/the-five-stages-of-collaps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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