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생명과 체용론
2009.04.18 12:39
어제는 모처럼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러게요님, 황님, 시인처럼님, 봄날님, 수수한님, 산지기님(오랜만에..^^), 그리고 저 自然, 이렇게 7명이 모였습니다. 어제 나눈 얘기 중 몇 가지만 적어볼까ㅣ 합니다.
아마 시인처럼님이 준비해왔던 1장짜리 질문지를 올려 주시리라 짐작합니다만, 거기에서 '생명'이란 것인 '살아 있음'인가 아니면 '생명체'인가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의 의견은 이 문제가 신유학(성리학+도가)의 체용론의 문제의식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주어/술어의 문제는 사실 체언/용언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고, 대상의 본질적(불변적)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체'와 대상의 가변적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용'은 늘 함께 다닙니다. 이 개념을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더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참고할만한 자료 두 개 올려 놓습니다.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체용론
형이상학적인 본체적 존재〔體〕와, 형이하학적 세계에 속하며 오관(五官)으로 감지할 수 있는 현상〔用〕을 가리키는 유교 철학 용어.
중국의 서당불교(書堂佛敎)에서 인도 불교를 중국 불교화할 때 그 이론을 체계화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였으나, 송나라 유학자들이 이를 유가 철학에서 이론적이며 조직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체용의 사상은 이미 ≪중용≫에서 ‘비은(費隱)’의 개념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를 영구불변의 본체적 존재로서 체라 하고, 기를 변화하고 작용하는 존재로서 용이라 하였다.
주희(朱熹)는 주돈이·장재(張載)·정이의 본체론을 총정리해 이와 기로 설명한다. 주희는 이를 천지만물의 본체(體)로서의 형상(形相)으로 보았고, 기는 그 형상인 체를 구체화하는 작용(用)적 자료로 보았다.
이기이원(理氣二元)으로서의 인간 존재를 해명한 것을 살펴보면, 정이는 인성(人性)을 의리의 성과 기질의 성으로 나누었는데 성(性)을 이(理), 정(情)을 기(氣)로 보고, 성은 착하지 않음이 없으나 정은 기의 청탁(淸濁)으로 말미암아 선(善)과 불선(不善)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심(心)의 주체를 성이라 하고, 심의 작용을 정이라 함으로써 성정을 체용으로 설명하였다.
주희의 성론은 정이의 성즉리설(性卽理說)과 장재의 천지지성(天地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의 설을 이어받고, 거기에 태극(太極)은 곧 이요 음양은 기라는 사상을 결부시킨 본체 우주론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 과 기질지성으로 나누었고 다시 성정 문제로서의 맹자의 사단(四端 : 惻隱之心·羞惡之心·辭讓之心·是非之心)과 칠정(七情 : 喜·怒·哀·懼·愛·惡·欲)을 사단은 본연지성으로서 이·체로 보았고, 칠정은 기질지성으로서 기·용으로 보았다.
≪중용≫의 중화장(中和章)에서도 희로애락이 발하지 않은 상태를 성으로서 체라 보고, 발하여 절도에 맞게 하는 것이 화인데 이것은 정의 발로인 용이라고 보았다.
≪중용장구 中庸章句≫에서의 인심(人心)·도심(道心)에 관해서도 인심은 인욕(人欲)이 있으므로 위태롭고, 도심은 천리의 마음이기 때문에 정미(精微)하다 하였다. 그리하여 천리자연(天理自然)의 마음인 도심은 인간의 총체가 되고, 인욕과 물욕이 혼탁한 인심은 용이 된다고 보아 인심·도심을 체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주희 이후 동양 철학의 전반적인 문제를 체용의 개념으로 이론화, 체계화하는 풍조가 생기게 되었다.
≪참고문헌≫ 中庸思想에 관한 硏究(沈佑燮, 東國大學校 博士學位論文, 1981)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체용론 항목
체용론 (體用論)
사물을 체와 용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그 각각의 의미와 상호 연관성 속에서 사물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체는 사물의 본체, 근본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용이란 사물의 작용 또는 현상, 파생적인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체용론의 연원은 멀리 한대(漢代)에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정현(鄭玄)은 〈예기 禮記〉 서(序)에서 "마음을 통제하는 것을 체라 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행하는 것을 용이라 한다"고 하여 체용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체용론적인 사고방식이 제대로 정립된 것은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하안(何晏)·왕필(王弼) 등에 의해서이다. 그들은 비록 체용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사용한 본말(本末)의 개념은 체용론의 중국적 원형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들은 도가의 무(無)와 유(有)에 관한 설명을 본말론으로 체계화하여, 변화가 무궁한 천지만물에 대해 그 본체인 '무'는 적연부동(寂然不動)하다고 하며, 본체가 있어야만 개개의 현상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러한 본말론이 뒤에 불교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체용론으로 발전했다. 불교에서 체용의 논리는 인과의 논리와 대비되는 것으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바람과 파도의 관계로 비유된다면, 체와 용의 관계는 물과 파도의 관계이다. 따라서 인과론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서로 별개의 것이지만 체용론에서는 체와 용이 서로 다른 실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송대에 성립된 성리학은 이 불교적 체용론을 받아들여 자신의 이론체계를 구축하는 데 사용했다. 특히 주희는 이 체용론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자신의 이론체계를 수립했는데, 그는 "형이상(形而上)인 것으로부터 말한다면 아득한 것(沖漠者)이 체가 되며, 그것이 사물 사이에서 발현하는 것이 용이 된다. 형이하인 것으로서 말한다면 사물이 또 체가 되고 그 사물의 이치가 발현하는 것이 용이 된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형이상을 도의 체라 하고, 천하의 달도인 5가지를 도의 용이라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이황은 이를 해석하여 "체와 용이라는 것은 2가지가 있는데, 도리에 대하여 말한 것이 있으니 아득하여 조짐이 없으나 만상(萬象)이 빠짐 없이 갖추어 있다는 것이 그것이요, 사물에 나아가 말한 것이 있으니 배는 물에 다닐 수 있고, 수레는 육지에 다닐 수 있다는 것과 실제 배와 수레가 물과 육지에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주희의 체용론은 어떤 대상을 고정적으로 체와 용에 분속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상으로는 분리될 수 있으나 실제는 분리될 수 없는 모든 합일적 존재를 설명하는 추상적 범주였다. 주희가 이 체용론의 범주로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한 대표적인 분야는 심성론이다. 그는 심을 체와 용으로 구분하여, 발(發)하기 전을 심의 체로, 이미 발한 때를 심의 용으로 설명했다. 따라서 심의 미발(未發)을 가리키는 성(性)과 심의 이발(已發)을 가리키는 정(情) 역시 체와 용의 관계로 설명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체용론은 중요한 사고방식으로 자리잡았으며, 이 체용론을 이용해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수립한 대표적 인물은 이황이다. 이황은 기대승과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을 벌이면서 사단은 이의 발(發)로, 칠정은 기의 발로 설명하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했다. 심성론에서의 이발설은 그의 사상체계에서 우주론에서의 이동설(理動說), 인식론에서의 이자도설(理自到說)과 함께 성리학의 이기론에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원래 성리학에서는 동정(動靜)하는 것은 기이며, 이는 그 동정의 소이(所以)일 뿐 그 자체가 동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에는 정의(情意)와 조작(造作)이 없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황의 이발설·이동설·이자도설은 분명히 성리학의 이에 대한 설명과는 배치되었다. 이때 이황이 자신의 논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체용론이다. 그는 이를 체로, 이가 상(象)으로 드러난 것을 용으로 파악하는 주희의 설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자체를 체와 용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대개 정의가 없다고 운운한 것은 본연의 체요, 발하고 생(生)할 수 있는 것은 지묘(至妙)한 용이다"라고 하여 이에 정의와 조작이 없다는 것은 이의 체를 말하는 것이며, 이가 발동하고 생한다는 것은 이의 용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과 우리나라의 전통철학에서 중요한 범주로 사용되던 체용론은 19세기 이후 서양세력의 침략을 받으면서 그들 기술문명의 우월성을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제시된 중국의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이나 우리나라의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9 | 이번 모임? [8] | 황 | 2009.05.26 | 6924 |
18 | 다음엔 4강, 5월 15일에 모입니당~. [1] | 시인처럼 | 2009.05.08 | 6528 |
» | 온생명과 체용론 | 自然 | 2009.04.18 | 6319 |
16 | 다음 모임, 4월 17일 (금) 오후 7시입니다~. | 시인처럼 | 2009.04.08 | 7542 |
15 | 지난 겨울 장회익 선생님 인문강좌 순서 [1] | 시인처럼 | 2009.04.03 | 7164 |
14 | 다음 모임은 4월 3일(금) 오후 7시 | 황 | 2009.03.21 | 7282 |
13 | 그럼 온생명모임은 이번 금욜 7시인 거죠?! | 황 | 2009.03.17 | 7394 |
12 | 다음엔 3월 18일, 로스네 이야기입니당~ [8] | 시인처럼 | 2009.03.08 | 5579 |
11 | 18일 모임에 읽을 Macroscope [6] | 自然 | 2009.03.07 | 6767 |
10 | metadesign 12쪽 편집본 [3] | 自然 | 2009.03.01 | 6605 |
9 | The Macroscope, a book on the systems approach [2] | 自然 | 2009.02.27 | 6070 |
8 | cognition이 '인식'일까요, '인지'일까요? [2] | 自然 | 2009.02.21 | 7205 |
7 | 다음 모임은 금요일 피해서 3월 5일에 할까요? [8] | 시인처럼 | 2009.02.21 | 5653 |
6 | 마뚜라나의 글 몇 편 [3] | 시인처럼 | 2009.02.20 | 5669 |
5 | 2월 20일 모임 예정대로 하실거죠? | 시인처럼 | 2009.02.18 | 5851 |
4 |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7] | 自然 | 2009.02.09 | 9315 |
3 | 제가 맡은 참치 대뱃살! [1] | 녹스 | 2009.02.05 | 5648 |
2 | 30일 모임, 좀 미뤄 주심 안 될까요? ^^; [14] | 시인처럼 | 2009.01.28 | 5687 |
1 | 1월 16일 공부 보고~ | 시인처럼 | 2009.01.28 | 61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