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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질문과 사족

2009.04.27 21:03

엘리엇 조회 수:6942

 

질서와 무질서(혹은 복잡성), 이 두 특징이 어쨌던 자연에서는 공존할텐데, 기존의 뉴톤적 세계에서는 세계의 모습이 시계와 같은 정확성과 합일성으로 표상되었다면, 세계를 보는 관점 면에서 그와는 다른 해석은 세계의 근본적 모습이 이 복잡성으로 표현되고 있는 어떤 형태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질서란 무질서의 한 모멘텀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두 세계관의 기술의 문제에서 선형방정식과 비선형 방정식이 각각 이용된다는 것이고요. 이 둘의 특징적인 차이가 바로 ‘되먹임’이구요.

    이 과정 가운데 지난 시간에 언급한 볼츠만을 위치 시키고 싶은데... 뉴턴적인 세계와 열역학의 통찰은 처음에는 모순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는데, 왜냐 뉴턴적 세계는 기본적으로 질서로 표상되는데, 열역학의 세계에서는 궁긍적으로 열죽음으로 향하니까. 그래서 볼츠만이 나왔다는 것이죠? 볼츠만이 이 둘이 상반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이 아니였나요? 증명했다면 어떤 문제 의식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풀었는지? 이 부분을 지난 시간에 설명했던 것 같은데 다시 들으면 이해가 좀 갈 것 같습니다. 위와 같은 네러티브가 가능은 한 건지, 잘못 되었다면 교정도 좀 봐 주시구요 ㅎ ㅎ

   아무래도 준비 걱정은 붙들어 매셔두 되겠습니다. 질문이 꽤 될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는 헤라킬레스와 히드라의 대결로 드러나는 질서와 무질서의 구도는 우리 생각이상으로 굉장히 보편적인 서사입니다. 지난 시간에 얘기 했듯이 그것들이 드러나는 방식이 하나는 리니어(linear)하고 하나는 시작과 끝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 우르보르스의 형태를 띈다는 것이죠. 뭐 피드백 고리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현대 우리 삶에서도 전반적으로 지배적인 것이 리니어한 것들이라는 통찰로 이끕니다. 현대 건물과 도시외관이 시각예술의 관점으로 보자면 아직까지 주류는 한점 원근법에 기반하고 있고, 시 보다는 산문이 우위를 점하고 제품의 생산과정은 전적으로 리니어하고 그래서 베르그송의 이런 혜안이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 놀라지 말기 바란다. 우리의 모든 예측과 관심의 방향은 바로 우리의 산업화된 사회내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네.” 뭐 정확하진 않습니다. 저는 이런 서사로 가닥이 잡혀가네요. 수요일날 이런 것들을 소재로 얘기가 좀 되었으면 싶습니다.

   아직 안끝났습니다. ㅎ ㅎ 끝낼려고 하는데 또 하나 가 떠오르네요. 왈, 기존의 소설의 서사구조 즉 기승전결은 현실을 진실하게 직면할 때 많은 한계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결과가 불분명하고 사실 결과라는 것이 누가 보느냐 어찌 보느냐와 관련되어  있는데, 결론이 보이지 않거나 이렇다할 사건이 없는 우리 일상의 정말 진실한 면은 차라리 결론을 내지 않고 사태를 지켜 보는 것이 더 진실인 것 같고 억지로 사건을 만드는 것은 진실을 추구하는 우리 마음을 항상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뭐 이러 비슷한 말을 어떤 문인이 했는데, 역쉬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신문보도 문화도 이러한 전통적 서사 구조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