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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 제가 고전번역원이란 데에서 '고전의 향기'라는 글을 매주 하나씩 받고 있는데, 얼마 전에 올라온 글이 인상적이어서 여기 한번 올려 봅니다. 성격이 좀 안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서평 비슷하게 한번 써 봐야겠습니다. *)



김종후(金鍾厚),〈장난삼아 병에 대한 글을 지어 아우 이약화에게 주다(病戱寄贈李弟若和)〉《본암집(本庵集)》

李 弟若和從余學最久。以余之無可學。學其多病。余每以是戱而念之。然若和旣學余之病。可不學余處病之方乎。處病善則病反益於我矣。若和之侍其大人之醴泉郡 也。索余贈言。而余未之果。日余病愈甚。有懷若和之同病。乃寄語之曰吾且言余之處病。而吾子聽焉。食人之所欲也。而吾以病故疎之。色人之所欲也。而吾以病 故遠之。貨財名利。亦人之所欲也。而吾以病故不營。心焉懼七情之蕩熾而增吾病也。則制其過慮。四體之安逸而妨吾病也。則使之勞。夫疎食遠色不營貨財。情不 蕩而體不逸。吾非病而可能也哉。此吾處病而得其益者然也。今若和隨親于官。口足乎食矣。目足乎色矣。見聞足乎貨財矣。情可得蕩而體可得逸矣。時來京都。試 有司則有名利誘焉。吾故願若和之不徒學吾病。而幷學吾處病之方也。抑余恐若和笑余自謂能處病而病不已。爲處病無效。則是不然。向使我不知處病之方。安得病 之不已哉。吾其死久矣。


 아우 이약화(李若和)가 나에게서 공부를 가장 오래 배웠는데, 내게 배울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병이 많은 것만 배웠다.내가 매양 이를 장난삼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약화가 이미 나의 병을 배워 버렸는데 내가 병을 처치하는 방도를 배우지 않는다면 되겠는가? 병을 처치하는 일을 잘 하게 되면 병이 도리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법이다. 약화가 그의 어르신을 모시고 예천군(醴泉郡)으로 가면서 나에게 전송의 말을 부탁하였다. 나는 답을 하지 못하고, “내 병이 더욱 심해졌다.”라고 하였지만, 약화가 같은 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이에 글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내 병을 처치한 것에 대하여 말을 하리니, 자네는 들어보게나. 음식은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내가 병때문에 가까이 하지 않았고, 여색은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내가 병 때문에 멀리하였네.재물과 명리(名利) 역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내가 병 때문에 꾀하지 못하였네.마음에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의 일곱 가지 감정이 동탕쳐서 내 병을 심하게 한다면 그 지나친 생각을 절제하고, 사지가 너무 편안하여 내 병 처치에 방해가 된다면 몸을 수고롭게 하였다네. 음식을 가까이 하지 않고 여색을 멀리하며 재물을 꾀하지 아니하며 감정을 동탕치게 하지 않고 육신을 편안하게 하지 않았으니, 내가 병이 아니었더라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내가 병을 잘 처치하여 도리어 이득이 된 것이라네. 이제 자네가 벼슬하러 가시는 부친을 따라가는데, 입에는 음식이 풍족할 것이요, 눈에는 여색이 풍성할 것이며, 보고 듣는 것에는 재물에 대한 것이 많을 것이니, 감정이 동탕치고 육신이 편안하게 될 것이네. 그리고 때때로 서울에 와서 벼슬길에 오를 시험을 치르게 되면 명리에 유혹되기도 할 것이네. 내가 이 때문에 자네가 내 병을 단순하게 배울 뿐만 아니라 내가 병을 처치하는 방도까지 함께 배우기를 바라는 것이라네. 어쩌면 아마도 자네는 나를 비웃으며 이렇게 생각하겠지. ‘스스로 병을 잘처치한다고 하면서도 병이 낫지 않으니, 병에 대한 처치가 효과가 없는 것 아닌가?’ 이는 그러하지 않다네. 내가 내 병을 처치하는 방도를 알지 못하였더라면, 어찌 병이 나을 수 있었겠는가? 병이 낫지 않았다면 나는 죽은 지 오래되었을 것일세.”


김종후(1721-1780)는 조선 후기 산림의 학자다. 그 제자 중에 이상매(李商梅)라는 이가 있었다. 자는 약화(若和)인데 나중에 이름을 의교(義敎)로 바꾸었다. 고모뻘 되는 사람의 아들이라 아우라 불렀다. 그 부친이 이명중(李明中)인데 지방관으로 나가게 되자 따라 가게 되었다. 이때 김종후가 전별의 뜻으로 이 글을 지어주었다. (출처: 이종묵, 한국고전번역원 고전포럼 [고전의 향기0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