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의 난지도
2009.09.08 23:00
아래에 소개를 했습니다만, 제가 정기적으로 받는 웹진으로 [고전의 향기]라고 해서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보내 주는 게 있습니다.
오늘 받은 것이 인상적이어서 여기에 올려 함께 나눌까 합니다. 왜 '인상적'이라고 했는지는 아시는 분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힘들긴 하지만, 요즘 한문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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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는 조선후기 지도에는 중초도(中草島)라 되어 있고 그 물가 마을을 수생리(水生里)라 하였다. 불광천과 홍제천이 한강과 만나 형성된 모래섬이다.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시민이 버린 쓰레기를 덮어썼다. 조선시대 이 일대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라 효령대군의 희우정(喜雨亭)과 심정(沈貞)의 소요정(逍遙亭) 등 이름난 정자가 있었다. 다행이 지금은 하늘공원이 조성되어 다시 아름다운 풍광을 돌려받았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그곳에는 물이촌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수이촌(水伊村), 수이촌(水移村)으로도 썼지만 물이촌이라 읽었다. 물이촌을 글로 후세에 알린 사람은 한백겸(1552-1615)이다. 한백겸은 《동국지리지(東國地理誌)》, 《기전고(箕田攷)》 등을 저술한 뛰어난 학자다. 특히 《기전고》는 청나라 장생목(蔣生沐)의 《별하재총서(別下齋叢書)》에 수록된 이래 근대 중국의 총서에도 포함되어 있으니, 조선의 저술로는 드문 예라 하겠다.
한백겸은 1610년 호조참의로 있던 중 모친상을 당하였다. 느지막이 시작한 벼슬길인 데다 벼슬살이 자체를 즐기지 않아 물러나 살고자 하였다. 마침 물이촌에 전장을 구입하여 소유하고 있던 아우 한준겸(韓浚謙)이 형을 위하여 땅을 떼어 주었다. 이에 한백겸은 그 마을 이름을 물이촌(勿移村)으로 이름을 바꾸고 그 집에 이름을 구암(久菴)라 하였다. ‘구암’과 ‘물이’를 합하여 오래도록 은거의 뜻을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것이다. 구암은 북쪽 언덕 아래 있었는데 그 곁에 대나무 수백 그루를 심었으니 다시 대나무의 곧은 정신을 배우려 한 것이었다.
훗날 이 땅은 채팽윤(蔡彭胤)에 의하여 다시 한 번 빛이 났다. 채팽윤은 1686년 한후상(韓後相)의 딸과 혼인하였으니, 한백겸은 그에게 처고조부가 된다. 채팽윤이 초례를 올린 것이 바로 이 물이촌이었다. 당시 구암은 이미 허물어져 노비들의 거처로 변해 있었다. 채팽윤은 처고조부가 남긴〈물이촌 구암의 기문〉을 쓸쓸히 읽었다.
그 후 충청도 남포(藍浦)의 현감으로 있던 채팽윤은 1706년 부인 한씨를 잃었다. 가난하여 부인의 묘 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안타까워하다가 장인의 도움을 받아 이듬해 처의 널을 싣고 천리 길을 가서 물이촌에 장사를 지냈다. 이로써 채팽윤은 물이촌 사람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을 불러 한백겸 생전에 있던 계를 다시 조직하였다. 그리고 채팽윤은 오래 뜻을 바꾸지 않겠다는 ‘구암’과 ‘물이촌’의 정신을 사모하여 자신의 집을 ‘물이소(勿貳巢)라 붙였다. 두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한결같아지는 조그만 집이라는 뜻이다. 〈수촌수계서(水村脩稧序)〉라는 글에 이러한 사연을 적었다.
(이종묵,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國都之鎭三角山迤北一支。越大路而西。蹲蹲延延。若斷若續。遇水而止。結爲阜。繞爲洞者。村之居也。漢水從東南來。過龍山至喜雨亭下。溢而爲沱。分流二派。其大勢浩浩淵淵。循西岸而北。直趨海門。其一派東折西廻。屈曲縈紆。抱村之洞口而去。可十餘里至幸州城下。復與大江合。兩江之間有島。作叉禾黍稢稢。村之居民。常隔水往來而耕種焉。名之曰水伊村。每夏秋之交。潦霖大漲。兩江合而成海。水色連天。村之得名。蓋以是歟。余戊申夏。丁外艱。舍季柳川子小莊。在直北數里許。奉几筵居之。亦有數畝田。正在此村北麓下。割而與我。乃營草屋數架。爲田廬焉。旣服闋。欲起而趨朝則病也。難堪夙夜。欲捲而歸山則老也。未忘狐丘。岐路徘徊。頭髮空皓。顧此一區。猶有桑下之戀。姑息偸安。以爲卒歲之計焉。則就田廬上。又構一小草屋。以便病人居處。僅庇風雨。容膝而止耳。其始也。嚴霜夜降。蟄蟲尋穴。唯以存身爲急。固未暇有探奇選勝之意。及旣定居。坐於斯。臥於斯。游泳於斯。則其山光水色助我幽趣者。亦不一而足。其前則江外諸山若靑溪 廣州 若冠嶽 果川 若衿州 衿川 若蘇萊 安山。連巒接岫。一陣周遭。鳳舞龍翔。爭向窓欞。左之而截彼三峯。壁立千仞。有凜然不可犯之勢。右之而遠浦遙岑。極目微茫。有包含荒穢之量。何其俄頃顧眄之間。氣像若是其不同耶。其出門而正相對者曰仙遊峯。一點孤山。飛墮江干。宛如群龍爭珠。其廻望而先入眼者曰逍遙亭。百尺雙柱。對豎波心。恰似仙府開門。危檣片帆。隨風往來。點點出沒。非野外大江所常縱目者乎。老牛將犢。六七爲群。或飮或臥。非門邊綠蕪所常自牧者乎。朝煙暮霞。秋月春花。流光代謝。變態無窮。皆能收貯眼前。以爲吾家計。而惟後一面無所見。懸崖斷麓。勢同展屛。朔風號饕。曝背猶溫。先儒有論陰陽體四用三之數曰。天地東西南可見。北不可見。此地眞得天地自然之形勢乎。去紫陌不盈一息。長樂風鍾。有時到耳。朝紳之問舍求田。宜無若此地之便。而百年抛棄。主管無人。殆鬼祕神鏗以待我歟。因而思之。人之安宅。不在遠而在邇。回視平生。許多枉步。莫不如此。可笑也已。於是改水伊村曰勿移村。以方言字音相同也。扁其屋曰久菴。因舊號而寓新意也。將考槃終身。久而不移者。其不在於此耶。噫。士移其業。民移其居。皆由於血氣方盛。有所外慕。今吾頹齡如歸。萬事躝跚。坐則忘立。臥則忘起。移業何求。移居何往。惟其不移。所以能久。久則安。安則樂。樂則欲罷而不能。雖欲移之。亦不可得也。吾知免夫。遂書以見意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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