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모임은 르두의 [시냅스와 자아]
2009.11.12 02:23
온생명론 연구모임의 다음 모임은 르두의 [시냅스와 자아]를 읽고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다마지오의 [스피노자의 뇌]를 일단 마무리했는데, 제 스스로 평가해 보면,
* 다마지오의 용어로 '정서'(emotion)와 '느낌'(feeling)의 구분이 몸과 마음의 구분과 연관된다는 것,
* 두려움, 행복, 슬픔, 공감, 부끄러움과 같은 '정서'가 화학적/신경적 반응의 복합체라는 것.
* 느낌은 신체 지도에 나타나는 신경 패턴에서 비롯되는 것.
* 몸과 마음이 한 가지 실체의 두 측면이라는 스피노자의 생각은 정서/느낌이라는 두 측면과 연관되며, 현대적인 신경생리학에서 실질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것.
* 뇌는 몸보다는 마음에 더 가까운 기관으로서, 뇌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해 몸과 마음의 관계를 더 알 수 있다는 평범한 주장의 확인...
이런 것이 제가 이 책에서 얻은 내용입니다.
다음에는 한스 요나스의 [생명의 원리: 철학적 생물학을 향하여], [몸의 철학], 스피노자의 [에티카] 등이 거론되다가 우선 신경생리학, 특히 뇌신경생리학을 더 공부해 보자는 의견이 더 많아서, 조지프 르두의 [시냅스와 자아]를 읽기로 했습니다.
조지프 르두 (지은이) | 강봉균 (옮긴이)
시냅스와 자아: 신경세포의 연결 방식이 어떻게 자아를 결정하는가,
원제 Synaptic Self (2002)
출판: 소소, 2005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47233&partner=egloos )
역자의 글에 따르면, 인지과학의 한 축에서 의식(consciousness)의 인지과정이 모두 밝혀지면 마음의 비밀이 모두 풀릴 것이라고 믿느 사람이 많은데, 이러한 주류의 견해에 반대하는 것이 이 책의 저자 조지프 르두의 생각입니다. 르두는 마음에서 인지뿐 아니라 감정과 동기(의욕)이 중요하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의식이 어떻게 뇌에서 나오는가?"가 아니라 "우리 뇌가 어떻게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가?"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책을 2003년에 처음 영어판으로 보았는데, 영어로 된 신경생리학 용어가 낯선 게 많아서 읽는 데 고생을 했었습니다. 다행히 한국어판이 나와서 읽기에 더 수월해졌는데, 아직도 신경생리학 용어가 좀 불편합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좀 배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많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 보니 제가 제 블로그에 올려 놓은 것이 걸리네요. ^^
http://hanmihye.egloos.com/3257099 )
블로그에 괜찮은 서평이 좀 있습니다.
http://azuremaya.egloos.com/5015629
http://hgc9395.egloos.com/7632212
다음 모임은 11월 27일(금) 7시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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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늘
2009.11.2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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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
2009.11.24 20:39
다하늘님, 반갑습니다. 많이 바쁘셨나 봅니다.
혹시 녹색아카데미 모임이 별로 유익하지 않아서 안 오시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르두의 [시냅스와 자아]는 '마음'에서 조금 더 멀어지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다마지오도 신경의학자이고 주로 신경외과(즉 정신과) 질환이 있는 환자를 fMRI 같은 기계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을 주로 하는 의사이지만, 마음에 대한 다마지오의 논의는 그나마 좀 철학적이었는데, 르두의 방식은 훨씬 더 직접적으로 신경과학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은 좀 뒤늦게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이라 분류되는 책들을 열심히 읽으려 하고 있습니다. M.R. Bennett라는 신경생리학자와 P.M.S. Hacker라는 철학자가 함께 쓴 [신경과학의 철학적 기초](2003)와 [인지 신경과학의 역사](2008)를 틈나는 대로 보려 하는데,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 시간이 많이 듭니다. 이번 학기 마치면 겨울방학 동안 제대로 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대학원 수업의 마지막 주 내용이 인공지능과 뇌과학 내지 신경과학을 연결하는 것인데, 하여튼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저도 누가 좀 구해 주면 좋겠다는... ㅋ 다하늘님, 함께 서로를 좀 구해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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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늘
2009.11.25 10:47
역시 "나 여기 있소!"하고 적극적으로 답해주는 이가 自然님이군요! 고맙습니다.
사실 아카데미모임이 있다는 것과 같이 갈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가뭄에 봇물이라도 만난듯 반갑고 매우 유익합니다.
잘아다시피 자신이 쉽게 이해하여야 그것을 알기 싶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문제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성급히 덤벼든 것이 화근이었어요.
일종의 주제파악이 안된 것이지요.
권해주신 책은 잘 읽어보겠습니다.
개인적인 일입니다만, 소기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이런 式으로라도 참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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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
2009.11.25 13:04
다하늘님, 금세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그런데 Bennett & Hacker의 두 책은 일독을 권할만한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너무 뚱뚱하구요(450쪽 정도). 그런 만큼 너무 방대합니다. 게다가 어떤 면에서는 비주류이기도 하고 도발적이기도 합니다. 약간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기존의 인지과학이나 심리철학이나 특히 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의 연구자들이 개념들을 과장해서 사용하는 바람에 많은 (근본적인) 왜곡이 일어났다는 주장을 담고 있거든요. 댓글로 달기는 너무 길어질 테니까 따로 글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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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늘
2009.11.26 17:23
너무 시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outlook이 고장이라 첨부파일은 읽을 수가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e mail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첨부파일 형식이 아닌)
이상하게도 자연님이 도와준다고 생각하니 힘이나고
마음의 이해에도 진전이 있어졌습니다.
자연님 또한 당신이 바라는 일에 많은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참! 이번에 나온 '물질,생명,인간...'을 읽었습니다.
이해에 어려움이 있어, 지금 칸트를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자연님이 '온생명에 대하여'에서 "온생명은 물질인가? 생명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였는데,
어떻게 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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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헌터
2009.12.01 09:46
최근에 Bennett & Hacker와 Dennett & Searle 사이의 논쟁이 출판되었습니다.
"철학"과 "신경과학"은 상보적인 관계이면서 또한편 앙숙같은 인상이 들기도 합니다.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체질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만...
이러한 갈등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천착함으로써 풀리리라 기대해 봅니다.
<바램>의 문제는 <want>의 입장과 <need>의 입장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원하는 것>과 <구하는 것>의 차이... 어쩌면 이것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짓는 지표가 아닐까요?
<希>라는 개념보다는 <望>과 <見>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차이가 좀더 분명해지는것 같습니다.
보기는 보되, <마음으로 보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의 차이... 이또한 인간/동물의 차이를 나타내지요.
이러한 인간/동물의 문제는 결국 <小乘自我>와 <大乘自我>의 갈등 문제로 귀결되는것 같습니다.
종교의 문제처럼 보이는 이 갈등은 결국 과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心身問題>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통해, "의식"의 문제가 "생명"의 문제와 동등하다고 추론해 봅니다. 생명은 물질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산 개구리>와 <죽은 개구리> 그리고 <동면중인 개구리>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각각의 경우 "생명"이 떠났거나 어느 곳인가에 숨어 있다고 보아야 할까요? 마치 "의식"이라는 존재처럼...
이 시점에서 우리가 "의식"이라는 존재에 대한 "관념"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식>이란 <생명>과 동일한 해석이 가능한 그러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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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
2009.12.17 16:15
뒤늦은 댓글을 답니다. 흥미롭게도 타임헌터님이 이 댓글을 달기 직전에 제가 "좋은 글과 자료 이야기" 게시판에 베넷-해커와 데넷-설 사이의 논쟁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더랬습니다. (신경과학의 철학적 기초와 뇌, 마음, 언어 )
M. Bennett, D. Dennett, P. Hacker, J. Searle, D. Robinson, Neuroscience and philosophy: brain, mind, and language,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그런데 제가 미처 모르고 있었는데, 혹시 베넷-해커=데넷-설의 논쟁이 담긴 책이 한국어로 출판된 것인지요.
소승자아, 대승자아의 개념은 낯설지만, 슈뢰딩거가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인용한 인도 베단타 철학에서 아트만과 브라흐만의 관계를 말한 것이 통할 것 같기도 합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삶과 온생명]에는 "나뭇가지 하나가 살아 있는 것인가, 죽은 것인가?"라는 질문과 거기에 이어지는 논의가 있습니다.
몸-마음의 대립구도와 물질-생명의 대립구도도 그렇지만, 생명-의식의 문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의식'을 '생명'과 동일하거나 적어도 동등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많은 어려운 문제가 연결되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명과 의식을 같은 것으로 보기에는 주저함이 많습니다. 가령 뇌(적어도 신경계)가 없는 동물들이나 식물들에게 의식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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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헌터
2009.12.24 09:00
자연님 반갑습니다. {베넷-해커:데넷-설}의 책은 아직 번역본이 없는것 같습니다.
제가 굳이 {소승자아/대승자아}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 표현이 <심신문제>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면서 또한 가치에 기초하는 종교의 문제까지도 아우를수 있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인도 철학의 {아트만:브라만}의 개념은 맹자가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人心:道心}의 개념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사실 {소승자아:대승자아}의 문제 제기는 <생명>의 문제와 <의식>의 문제를 동시에 접근하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베넷-해커의 주장은 <의식>이라는 문제가 "transitive-conscious"와 "intransitive-conscious" 사이의 몰구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합니다.
"transitive-conscious"는 "un-conscious" 또는 "sub-conscious"의 대립개념으로,
그리고 "intransitive-conscious" 는 "non-conscious"의 대립개념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의 개념은 윌리엄 제임스가 주장하는 <주의>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보이고
후자의 개념은 "하나의 실체" 또는 "주체"로서의 <의식>이라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은 데넷과 설의 관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데넷의 KINDS OF MINDS와 설의 MIND:A brief introduction 참조)
동물이나 식물에게 <의식>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의식>을 하나의 실체 또는 주체로 보는 관점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구성원인 국민을 의미하는것일까요? 그렇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국민>은 또 무엇일까요?)
<국가>는 때로는 유형의 개체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무형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국가>란 소재가 있는것 같으면서도 딱히 그 위치를 지정할수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의식>의 문제는 이렇게 <국가>라는 관점을 통해 <self>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의식>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다르게 설정해야 하지 않는가 하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제 방식으로 설명한다면, (아래 다하늘님에대한 답변 참조)
뇌가 있는 동물에게만 <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CPU가 없는 computer는 단순한 calculator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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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늘
2009.12.02 15:50
타임헌터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반갑습니다.
상당히 창의적인 생각을 하시는군요.
앞으로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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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늘
2009.12.16 20:42
오랜만입니다. 마음에 대한 나름의 창의적인 생각을 올립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만
참고는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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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
2009.12.17 16:36
다하늘님의 글을 얼른 읽어보았습니다. 고민하고 계신 문제가 제 관심과도 통합니다.
간단한 질문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바람'('바램'은 볕이나 습기를 받아 빛이 변하다. 오래되어 변색하다. 라는 뜻이라서, 아마도 '바람'이 올바른 표현일 것 같습니다^^)이란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적 사유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자유의지'(free will)의 문제를 상기시킵니다. '뇌'와 ''바람'의 관계는 매우 복잡할 뿐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가령 얼마전 아주 못된 아동성폭행범이 술을 마시고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죄를 지은 것이라는 이유로 중형보다 낮은 선고를 받았습니다. 유명한 '트윙키 변론'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사람이 달콤한 불량식품 덕분에 시장과 부시장을 저격한 것이라면서 일급살인(first-degree murder)이 아닌 고살(manslaughter)을 주장한 사례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Twinkie_defense )
만일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이 항상성 유지를 위한 뇌의 요구이고 이것이 뉴런의 작업으로 표출된 느낌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이런 자유의지 내지 고의(mens rea)에 따른 범죄를 처벌할 수 없게 됩니다. 법적 책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이며, 의지는 '바람'과 직접 이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첨단이라고 하는 신경생리학이나 뇌과학은 매우 위험할 수 있는 함축을 지닙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다하늘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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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늘
2009.12.17 19:44
반갑습니다. 자연님의 관심이 늘 힘을 줍니다.
바램이라는 용어를 잘 못 쓰고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타임 헌터님도 지적했듯 望과 風의 두 가지 의미로 쓰임니다만, 그 둘을 붙여서 설명할때가 많기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바램은 마음의 발단입니다. 소설을 발단에서부터 시작하듯이... 즉, '내외부의 자극에 몸과 정서(心性 내지는 평소의 자신의 觀)에 따른 상태가 뇌에 지도처럼 그려지는 상황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외부로 표출되는 과정은 다음의 두가지의 양태를 가집니다.
a. "내부 감각의 느낌ㅡ>바램(여기서의 느낌과 바램은 주로 무의식과 잠재의식을 말함)"ㅡ>(정신)의식ㅡ>생각ㅡ>실행 [내부 감각적 마음 표출]
b. 외부 자극ㅡ>(정신)의식ㅡ>외부 감각 느낌ㅡ>바램(의식적)ㅡ>생각ㅡ>대안 마련ㅡ>결정과 판단ㅡ>실행이나 의사 표현 [마음의 표출]
자연님의 지적은 法에서 다루는 '善意'와 '惡意'에 따라 고의적이 아닌 실수를 경감하는 것에 대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위의 마음의 표출 양상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음의 실행단계에서는 [자유의지]가 표출됩니다.
그러하니 마음의 기초인 '바램'을 가지고 선의.악의의 의도를 가려 법적책임을 논할 단계에는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램이 기초가 되고 판단을 위한 감성과 이성의 단계를 거쳐야 실행의 단계인 마음이 표출되니까요.
미국의 사례 두 가지는 善.惡意의 판정이 잘못된 것이라 보여집니다. 더 자세한 것은 판례를 보아야 하겠지만 말이지요.
자연님의 관심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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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헌터
2009.12.21 16:49
다하늘님의 <마음>이라는글을 아직 숙독하지 못했기에 이에 관한 얘기는 잠시 미루기로 하고...
앞서 저는 <바램>에는 <need>와 <want>의 서로 다른 두 종류가 있음을 얘기했었습니다.
언뜻 생각키로, 다하늘님이 말씀하시는 "하고 싶은 마음"이란 <need>를 의미하는 것 같고 "생각"이란 <want>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제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need>란 "몸"이 원하는 것을, 그리고 <want>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잠깐 자연님이 꺼내신 화제로 돌아가면... 저는 동물은 <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마음>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구분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분이 많을텐데, 이와 관련해서 한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에 대한 것입니다.
"동물에게도 과연 <간접경험>이란 것이 존재할까요?"
다시한번 제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직접경험>이란 <의식>에 의한 것이지만 <간접경험>이란 <마음>에 의한 것입니다.
저는 동물에게는 <간접경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간접경험>이란 "본능"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동물에게는 <간접경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동물에게는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하늘님이 사용하시는 <마음>이라는 개념은, 저의 개념체계에서는 <마음>과 <의식>의 중간적 위치로 보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이 모두 동물에게도 존재하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신다면
제가 왜 굳이 <의식>과 <마음>을 구별하려고 하는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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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늘
2009.12.18 13:34
자연님이 지적한 '자유의지'라는 것이 조금 복잡하군요. 좀 더 공부를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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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늘
2009.12.21 20:51
타임 헌터님은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습니다.
need want
바람 생각
몸 마음
직접 경험 간접 경헙
의식 마음
동물적 사람적
그리고는 '다하늘이 생각하는 마음은 마음과 의식의 중간 위치인것 같다.'고 하였지요.
그것은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정의 하느냐에 따라 그 범위가 달라집니다.
뇌의 작용 모두를 마음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좀 더 뇌의 고차원적인 작용만을 마음이라 볼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자유 의지] 즉, 에드워드 윌슨이 정의 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물리적.화학적 상태가 부과하는 제약들로 부터 자유로운 결정을 하는' 그것만을 마음으로 볼 것인가? 또한 단어의 뒤에 望자가 붙거나 희망, 소망, 열망, 욕망.. 心자가 붙은 측은지심, 수오지심,사양지심, 시비지심, 양심, 호기심, 탐구심, 의심, 의구심,욕심... 것만을 마음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타임 헌터님이 생각하는 마음의 정의를 우선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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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헌터
2009.12.24 08:31
서양적 관점을 들여다 보면, <의식>이라는 개념은 이과적 의미가 강하고 <마음>이라는 개념은 문과적 의미가 강합니다.
서양의 사고가 합리적 관점을 우선시해서 그런지 서양은 대체로 <의식>을 <마음>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보는것 같습니다.
동양적 관점을 들여다 보면, 불교의 경우 <안/이/비/설/신/의>라고 해서 여섯번째에 <의식>이 나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一切唯心造" 라고 하면서도 정작 <마음>에 대한 분류는 없습니다. (<마음>이 한단계 높기 때문이라고 봅니다만...)
식물에는 뇌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뇌를 가진 동물의 행동과 인간의 행동을 비교해 보면,
동물의 행동은 인간에도 있는데 반해, 인간의 행동중 일부는 동물에게서 찾을 수 없는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물 행동의 주체"를 <의식>으로 정의하고 "인간 행동의 주체"를 <마음>으로 정의합니다.
따라서 <의식>은 <마음>의 부분집합으로 정의될수 있겠습니다.
(데넷이 <KINDS OF MINDS>에서 비슷한 주제를 계속 논의하지만 서양의 어긋난 시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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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늘
2009.12.25 02:45
타임 헌터님 또한 그 관심범위가 넓으시군요. 그만큼 마음이 큰 것이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음'을 정의 한다는 것은 대 철학자라해도 껄끄러움이 많은 소재일 것입니다.
타임 헌터님은 "인간 행동의 주체"를 '마음'이라 하고, 동물의 행동은 '의식'이라 하였지요.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이렇게 묻고 답하는 것이 참 의미있고 재미있습니다. 그런 재미를 준 타임 헌터님에게는 더 고맙구요.}
유아는 마음이 있겠지요? 소년은, 청년은, 어른은 말할것도 없을 것입니다. 태아에게는... 그것은 좀 어려운 문제입니다.
요점은, 마음이란 일종의 觀(인생관, 세계관...)이 소승자아(自利的)에서 시작하여 대승자아(利他的)에 가까워져 가는 과정이 아닌가도 생각이 됩니다.
즉, 마음은 '신체와 의식의 발달에 의해 형성 내지는 발전하여 나아가는(성장하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는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라고...
나는 후자의 생각을 종교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사람 발생학'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입니다. 만능 줄기 세포인 수정란(단세포)에서 시작하여 6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사람이 되기까지... 마치 35억년의 장구한 進化의 과정처럼.
물론 사람은 동.식물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그 특별함이 '마음'이라는 것은 협소하게 마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닐까요?
딴에는 나도 사람을 특별하게 생각하기는 합니다. 사람을 기계에 비유하는 윌슨, 데닛, 도킨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나의 필명 '다 하늘'과도 관계되는 말입니다.
"떽끼! 사람을 기계에 비유하다니.. . '사람은 神의 자식이고, 만물은 神의 흩어짐이며, 온생명은 지금 [成長中]'인 것 아니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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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란다. 고로 존재한다!.]
'느낌'이 있기전에 '정서'가 있다는 것을 다마지오가 일깨워 주었지요.
나는 '생각'이 있기전에 '바램'(바람에는 風의 뜻과 希의 뜻 두가지로 쓰이는 것이 사전적이고, 일반적이나 希의 의미일때의 명사형은 바램이라 쓰고 있음. 色바램의 뜻이 아닌)이라는 것이 먼저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그 '바램'은 본능적인 恒常性만을 유지키 위해 바라는 것이 아니라, 뇌가 대뇌변연계(감성 담당)에서 그 위에 대뇌피질을 덮어 진화했듯이 좀 더 고차원적인 것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우리式으로 말하자면 낱生命이 補생명에게 무엇인가를 희구하는 것-바램-이고, 낱생명 자신도 보생명에게 무엇인가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바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나는 바램이 있어 생각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출석률이 저조하여 짤리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유전자의 이해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마음에 와서는 도무지 내 마음을 모르겠는거예요!
아직도 마음과 本性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나의 난독증이 언제나 해소 되려는지...
누가 날 좀 구해주었으면 하는데, 이럴때 한영애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