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화두(2)
2010.01.07 15:23
(2) 개념의 문제
<의식>과 관련된 연구 특히 심리철학(Philosophy of Mind)에서는 <의식>과 <마음>이라는 개념이 혼동되어 사용되듯이, ‘감각’과 ‘지각’이라는 개념 또한 혼동되어 사용된다. 그런데 이런 혼동 가운데 무엇보다도 심각하게 검토해야할 혼동은 사실은 ‘인식(cognition)’과 ‘재인(recognition)’의 혼동이라고 본다. ‘재인’에는 ‘인식’이라는 용어에 “재”라는 접두사가 붙어있다. “재”라는 접두사가 붙었다면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나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별도로 그런 용어가 생겨났을 텐데도 별로 주의를 요하지 않은 채 혼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사실은 각자 개인의 문제다. 즉 누구든 자기만의 용어 체계를 갖고 일관성 있게 사용한다면 용어 사용 자체가 문제가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일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필요하다면 그 사람의 용어 체계로 번역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즉 의사소통의 문제는 용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용어 체계의 문제인 것이다. 용어 체계란 결국 용어의 정의를 의미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논고』를 저술한 후 철학을 완성했다고 생각하고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초등학교 교사를 한 사건은 유명한 사건이다. 그는 왜 『논고』후 철학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문제가 언어의 문제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언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게 된다면 철학의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언어란 인간의 창작물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가 만든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으므로, 언어 또한 당연히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선에 맞추어 생각을 전개했고 나름대로 결론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무슨 생각으로 다시 돌아온 것일까? 오스트리아의 고향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교사를 했던 비트겐슈타인은 고향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여태껏 훌륭한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생각은 여지없이 깨지고 다만 벌거벗은 임금에 불과했다는 깨달음. 그는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아이들을 통해 언어의 발생 과정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미 성숙한 언어였다. 소위 철학이라고 부르는 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은 이미 논리적으로 자리가 잡힌 언어들이었다. 그런데 언어란 과연 언제 어떻게 의미를 얻게 되며 논리적 구성을 갖추게 되는 것일까? 과연 성숙한 언어의 의미는 논리적으로 완전하게 확립된 것일까? 전기 비트겐슈타인이 논리를 사용하여 언어의 문제를 풀었다면,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자체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언어는 더 이상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오직 사용만이 존재했다. 뿌리는 오랜 세월 속에 묻혀 용해되어 버렸기 때문에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문제 제기 뿐이었다.
그는 마침내 언어가 신기루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언어가 존재하는 한 그로부터 발생하는 신기루를 제거할 수는 없다. 신기루란 바로 언어 자체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수천년전 석가가 보았던 바로 그것을 본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스승인 러셀과는 기질이 달랐다. 그래서 러셀의 철학을 깊이 파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러셀의 철학은 그의 생각처럼 천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더러 잊혀진 채로 있긴 하지만 거기에는 제법 비옥한 토양도 있다. 그러나 무뎌진 칼날로는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는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었지만 풀 힘은 없었다. 아니 풀이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저술은 철학의 문제집이 되고 말았다. 물론 상당히 좋은 문제집이긴 하지만...
그런데 언어란 과연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일까? 인간이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한, 언어의 문제는 쉽게 포기해 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언어는 사고를 가능하게 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언어다. 인간이 일주일중 월요일에 가장 많이 사망하는 생물종이 된 까닭도 바로 언어 때문이다. 즉 인식은 언어의 문제이고 언어의 문제는 결국 의미의 문제이다. 그래서 정의가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와 개념의 관계는 무엇일까?
그런데 정작 “개념”의 정의를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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