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녹색아카데미

이 책에 대해서 떠들어댄 적이 있었는데, 고맙게도 이렇게 멋진 서평이 나와서 퍼왔습니다, 한겨레신문에서.

지난 9월 모임에서 자연자연님이 발표하셨던 "[삶과 온생명-새 과학문화의 모색]해제"에서 언급되었는 얘기도 있네요~


장정일의 독서일기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M. 피어시그 지음·장경렬 옮김/문학과지성사

motor.jpg

작년에 나온 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책 한 권을 꼽으라면, 단연코 로버트 M. 피어시그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문학과지성사)다.

이 책은 내 청춘의 책이다. 이십대와 삼십대에, 나는 각기 다른 번역본으로 이 책을 한번씩 읽었다. 조승국이 번역한 <모터사이클과 선>(대운당, 1981)과 일지 스님의 <선을 찾아가는 늑대>(고려원, 1991)가 그것이다.

1974년에 출간된 이 책은 지은이의 자전적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특히 어느 철학 세미나에서 만난 한 철학 교수와 오이겐 헤리갤의 <궁술에서의 선>을 토론하고, 그와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미국 횡단 여행을 했던 일이 작품의 주제와 줄기를 이룬다.

철학 교수였던 존은 모터사이클은 좋아하면서 관리에는 등한했는데, 피어시그는 존의 그런 태도로부터 “정신적 삶과 기술 공학적 삶 사이의 분열”이라는, 기술 공학에 대한 현대인의 이중적 태도와 서구 문명의 병적 징후를 읽었다.

모든 기계가 그렇듯이 모터사이클도 끊임없는 주의와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모터사이클의 편리만 취하고, 그것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터사이클이 가진 원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일찍이 C. P. 스노는 과학 기술이나 기계 공학에 대해 품고 있는 현대인의 이중성을 꼬집으면서, 전통적인 ‘문학적 지식인’과 과학자들 사이의 괴리에 ‘두 문화’(two cultures)라는 이름을 달아 주었다.

그는 인문학의 세례를 받은 전통적인 지식인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과학자들은 셰익스피어에 대해 모른다고 꼬집으면서, 새로운 시대의 교양은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소설가 장정일
작중의 존은 스노가 비판했던 문학적 지식인을 대표한다. 그는 날씨나 도로 사정과 같은 주행 환경에 따라 모터사이클을 관리할 줄 모르며, 고장이 나면 정비소에 맡기는 것으로 관리의 책임을 다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가운데, 전구도 하나 제대로 못 갈아 끼우는 것을 자랑삼는 분이 있다면, 그가 바로 존이다.

지은이가 이 책을 구상하고 집필했던 1968~1974년은 히피 문화가 미국을 휩쓸던 때였다. 자연 친화적이면서 기술 문명에 반대하는 태도야말로 히피의 기본적인 가치관이랄 수 있는데, 지은이는 오히려 이런 태도의 근본에 서구 문명의 고질적인 병폐가 있음을 발견했다.

물론 히피적 세계관의 배경에는 도구적 이성이 만들어낸 아우슈비츠의 비극과 핵전쟁이 될 게 분명한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공포에서 비롯한 반문명적 세계관이 희대의 항공기 폭파범 유나바머를 만들어낸 것은 역설 가운데 역설이다.

서구인이 갖고 있는 정신(본질)의 우위와 물질(현상)로 간주되는 기계·기술에 대한 폄하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까지 소급해 올라가야 할 만큼 뿌리 깊다. 지은이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미국을 횡단하면서, 정신과 물질로 이원화된 서구 철학사를 하나로 통합하는 지적 순례를 동시에 수행한다.

그런 끝에 두 개의 범주를 통합해 주는 ‘직관’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결론은 ‘물아일여, 주객일체’(物我一如, 主客一體)라는 선적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 피어시그는 말한다. “신성한 부처님은 산 위에서나 연꽃잎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주 편안하게 디지털 컴퓨터의 회로 안에, 그리고 모터사이클의 변속기 안에 정좌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처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나아가서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이 된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의 표지를 열면,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라는 녹록잖은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을 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지은이다. 장정일 소설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녹색문명공부모임 2011년 모임 자료집 시인처럼 2012.02.06 7788
18 광우병 관련 자료 自硏 自然 2012.05.08 5998
17 광우병과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 병 [1] file 自硏 自然 2012.05.07 6609
16 5월 녹색공부 모임 관련 제안 [5] 산지기 2012.04.27 5766
15 빛과 생명, 보어의 1932년 강연 그리고 ... [6] 自硏 自然 2012.04.15 7424
14 동국대 김익중교수의 탈핵강의 자료 눈사람 2012.04.13 7278
13 하승수변호사의 녹색당이야기 [1] 눈사람 2012.02.27 6385
» 장정일의 독서일기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가치에 대한 탐구] [3] file 눈사람 2012.02.07 7218
11 녹색공부모임 전기자동차 후기 happysong 2010.01.12 9091
10 여행, 석유 이전과 이후 [8] 민슉슉 2009.09.14 9258
9 Stern Report와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 [2] 自然 2009.07.12 11115
8 부엌에서의 플라스틱: 석유 이전과 이후 녹스 2009.06.14 11749
7 5월 9일 '석유전후' 책내세 모임 정리 [3] 시인처럼 2009.05.28 9002
6 제안 하나 [12] 2009.05.11 9137
5 프로젝트 모임 '석유전후' (책내세 모임) 시인처럼 2009.05.08 9403
4 물물교환-그림 팝니다 [4] file 2009.04.20 9502
3 2월 모임에 자기 연구 주제 정해 옵시다~. [1] 시인처럼 2009.02.10 9537
2 2009년 녹색문명공부모임 공부 방향 시인처럼 2009.02.09 9093
1 2008년 녹색문명공부모임 정리 시인처럼 2009.02.09 9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