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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6월 4일 온생명론 연구모임 정리

2010.06.08 11:21

시인처럼 조회 수:6194

원래 5월 28일로 예정되어 있던 온생명론 연구모임을 한 주 늦춰 6월 4일날 했었죠.

自然, happysong, 봄날, 시인처럼 네 사람이 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약속이 있어 자연님이 먼저 일어났구요,

황님이 끝날 즈음 놀러왔답니다.

마치고 나서 happysong님은 서둘러 가시고 남은 세 사람은 적선시장 골목에서 파전 놓고 막걸리 한 잔 했네요.


이 날은 특별한 형식이 없이 그 사이 공부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바를 늘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요,

고민의 지점을 찾아내고 확인하는 차원에서는 얻는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1. 인식자와 무관하게 실체로서 고정된, 또는 존재론적 지위에서 앞서는 온생명이 있는가?


먼저 자연님은 윅스킬의 둘레세계 개념과 마뚜라나의 인식론, 그리고 장회익의 보생명 개념을

함께 놓고 비교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데요,

제 식대로 정리해 보자면 "실체로서, 또는 존재론적 지위에서 앞서는 고정된 온생명이 있는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 같습니다.


윅스킬에서나 마뚜라나에게서나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 둘레세계, 또는 세계가 산출되게 되고,

따라서 생명의 수만큼 다양한 각각의 세계, 또는 둘레세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맞나요? ^^;;)

보생명 개념도 이처럼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 고민 중인데

하지만 적어도 생명의 최소 단위인 온생명 단계까지 가면 온생명은 고정되게 주어져 있는 것 같다는 거죠.

낱생명에 해당하는 것들의 인식, 또는 관계맺기와 별도로 온생명은 '존재론적'으로 '있는 것'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어쩌면 온생명론은 여타 존재론들과 마찬가지로 top-down 접근 방식(저는 소나기형 접근 방식이라고 하고 싶어요 ^^;)이라면

윅스킬이나 마뚜라나의 사고 방식은 bottom-up 접근 방식(저는 분수형 접근 방식이라고..)이라는 큰 차이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싶어요.


2. 온생명론에서 밝히는 '생명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 점은 자연님도, 봄날님도 큰 숙제처럼 고민하는 문제라고 하는데요,

"온생명이야말로 생명이다" 라고 할 때 이 말의 내용, 함축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떻게 할 때 비로소 생명이 된다" 라고 할 때 이 내용은 무엇이라 제시되는지

이 점이 분명하게, 그리고 풍부하게 제시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 큰 의문이라는 겁니다.


마뚜라나는 '자체생성 aupoiesis'라는 것이 생명의 내용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면

온생명의 개념은 생명의 내용보다는 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마뚜라나는 생물학자로서 생물학자가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십분 살려 생명의 내용을 밝혔다면

장회익 역시도 이론물리학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로 생명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분명히 있을 것인데

그 점이 과연 풍부하게 제시된 거라 할 수 있는지 고민되는 지점입니다.

가령, '자체촉매 현상'이나 '국소질서' 등과 같은 점이 충분히 설명된다면 생명의 내용이 드러날까 생각되기도 하던데요,

장회익 선생님은 충분히 이야기한 것을 우리가 못 알아먹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온생명론에서 아직 충실하게 이야기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더 깊이 따져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3. 온생명론은 생명 이해와 관련한 기존의 문제를 해소하는가, 답습하는가?


이건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이었는데요, 최근에 다른 논문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만

생명의 기원, 또는 생명의 정의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견해가 크게 둘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라더군요.


하나는 the compartmentalist's view라는 것으로 경계를 중시하는 관점입니다.

마뚜라나가 제시한 자체생생성 중심의 생명 정의가 바로 이 견해인데요,

어떤 경계를 기준으로 경계 안 쪽에서 자신과 경계를 재생산해내는 생산 네트워크가 그 네트워크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될 때

이것을 생명으로 보는 겁니다.

이 때 생식이나 유전은 자체생성 체계가 생긴 뒤 뒤따라 나오는 결과이므로 자체생성성이나 경계만큼 중요하게 보지는 않습니다.


또 하나는 molecular geneticist's view라는 것으로 정보 부호, 유전 물질을 중시하는 주류 생물학계의 관점입니다.

즉 자기 복제를 가능케 하는 유전 정보야말로 생명의 본질을 이루는 것으로 보고

극단까지 밀고 나가면 자기 복제하는 RNA 분자덩어리까지도 생명으로 볼 수 있으니 경계는 부차적이라고 보는 관점이라네요.


개념상으로 보아 전자는 원칙적으로 유전 정보 물질없는 지질로만 된 생명도 가정할 수 있고,

후자는 원칙적으로 유전 정보만으로 된 생명도 가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진영을 '지질 세계(lipid world)'와 'RNA 세계(RNA world)'로 빗대어 대비시키기도 하나 봅니다.


현재 생명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이 이런 형국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할 때

과연 온생명론이 이 문제를 해소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생명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는가 물어볼 수 있을 겁니다.

고민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여기에 빛을 던져주기보다는 온생명 규정 안에서 이 문제를 반복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의 온생명 정의는 다분히 주류 생물학계의 정보적 연계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체촉매적 기능을 하는 국소질서의 복제생성률이 1을 넘어설 때..."라는 내용은 분명 이 점을 반영하고 있죠.

하지만 '얼마나 오래 존속해야 생명인가'라는 관심에서 눈을 돌려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 때 생명인가'라는 점에 관심을 두면

마뚜라나식의 관점에 따라 온생명을 정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비록 정보적으로 연계되지 않고 찰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항성-행성 체계 내의 자유에너지 흐름을 이용하여

자체생성하는 체계가 형성된 그 시점을 그 항성-행성 체계 전체가 온생명으로 성격 전환을 이룬 시점이다..

라고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만약 온생명 정의에 대한 이런 두 관점이 다 가능하다면 결국 현재 생물학계에서의 논쟁 구도가

온생명론 안에서 고스란히 재연되는 것일텐데,

그렇다면 온생명론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답습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 제가 가진 의문입니다.


4. 온생명론이 해결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자체생성론이 해결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결국 이렇게 생겨난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온생명론이 등장함으로써 생명 이해의 문제에서 해결된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마뚜라나의 자체생성론이 등장하면서 해결한 문제는 무엇인지를

이해해야겠다는 점에 여러 사람들이 동감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공부를 해 왔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아직까지 나름의 결론을 얻은 바가 없고,

여기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더 앞으로 진전도 안 되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 네 번째 문제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으려는 공부를 해야되지 않겠나 싶네요.


물론 이것 말고도 다른 이야기도 많았고, 이 날 나눈 이야기 중 중요한 게 이거였나도 자신 없는데요,

요즘 제가 관심 가진 방향으로 정리를 하다보니 이렇게 정리되었습니다.

happysong님이 정리하시면 어떻게 정리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다음 모임은 2주 뒤인 6월 18일(금) 저녁 6시 반이구요, 역시 길담서원에서 만납니다.

그 때까지 또 공부하고 고민하고 써온 만큼 내놓고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참, 그리고 올 여름 온생명론 작은 토론회는 7월 31일(토) 경이 어떤가 후보로 꼽아 보았구요,

이번 6월 녹색문명 공부모임에서 상의해 보려고 합니다.

이상, 오랜만에 올리는 모임 정리였습니다.


- 시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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