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 요약 6 (6권에 해당) 플라톤의 국가
2013.04.25 01:47 Edit
앞에서 누구보다도 통치를 해야 마땅한 자격을 지닌 자는 다름 아닌 철학자라고 했습니다. 철학자는 어떤 사람인가? 진리,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사랑하며 추구하는 진리란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이 있는 것( 실체?)'이며 잡다하며 변화무쌍한 것( 모드, 변용?)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6권에서는 지혜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는 누구나ㅜ할 수 있는 것이나ㅡ말로만 할 수 있는 것이ㅡ아니라 그러한 성향을 타고나야 한다는 관점에서 철학자가 될 소질이란 어떤 것인지 설명합니다.
존재(본질혹은 실체)가 자신을 드러네 보여 주는 배움을 언제나 사랑한다. ( 다르게 표현하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진실하다. 거짓을 자진해서 받아들이는 법이 없고 최대한 진리에 이르고자 한다.
욕구가 혼이 좋아하는 배움의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육신의 즐거움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다. 예를 들자면 재물에 대한 집착이 없다.
성품이 저속하거나 좀스러움과 거리가 멀고 고매하고 호방하며 허픙치거나 비겁하지 않다.
그 외에도 쉽게 배워야 하고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배음 자체가 어렵고 배워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 없으면 배움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다르게 표현하면 똑똑해야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논의를 따라 가다 보니 철학자는 인품이 훌륭하면서도 머리도 좋은, 흠잡을 때라고는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자 아데이만토스가 그것은 현실철학자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는 주장을 합니다. 현실철학자들에 대한 평판이란 못된 사람이라거나 못되어 않다면 쓸모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그 평판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철학과 철학자가 처한 현실에 대해 말합니다.
이부분이 읽기는 어렵지 않은데 정리하기가 좀 까다롭다는 느낌이 듭니다. 올바른 국가와 철학자의 바른 위상이 같이 가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지금의 국가는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철학자라면 잔소리나 헛소리하는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고 제대로 철학자로 자라야 할 아이는 그 우수성이 어릴 때부터 드러날테니 소위 현실에서 출세하기를 바라는 부모 등 주변의 방해로 철학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소질을 잘못된 일을 더욱 잘못되고 하는 쪽으로 발휘하게ㅜ된다. 이렇게 자질이ㅅ는 사람이 철학자가 되지 못한 탓에 자질도 안되는 사람들이 철학에 기웃거리며 철학이 더욱 욕을 먹게 한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어려운 부분은 국가가 올바른 상태가 아닐 때 사회에서 가치를 도출하는 과정이나 도출되는 가치 자체가 철학자로 자라지 못하도록 가짜철학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극장- 광장의 공간에서는 대중의 다루는 기술,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것이 진리의 소리보다 크기 때문에 진정한 철학자는 제거되든지 은둔하든지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철학자로서의 성향을 타고난 우수한 아이들이 제대로 철학자가 되는 경우는 주변의 기대와 관심을 받지 못하는 특수한 조건, 예를 들자면 병약하다든가, 망명 혹은 몰락한 국가의 출신이라든가 하여 출세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됀 경우, 그 아이는 타고난 성향으로 제대로 철학자로 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를 만날지 못한 탓에 은둔하든지 지내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주장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직접 읽어본 소감으로는 철인정치란 일종의 신정정치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종교와 정치의 일치에서 종교 부분을 철학으로 바꾼 것입니다. 플라톤의 수호자집단은 일반 대중과 구분되는 독특한 생활양식을 가진 공동체인오늘에 그것과 가장 유사한 집단을 생각볼 수 있는 것이 수도자집단(카톨릭의 사제나 불교의 승려 ) 입니다. 앞으로 소개할 내용으로 좋음의 이데아가 나오는데 이것은 결국 이 수호자 집단이 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 도 이런 것과 가장 유사합니다. 그럼 다음으로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논의를 소개하겠습니다.
현실의 철학과 철학자의 처지에 대해 변명(?)한 후 지금의 어떠한 국가 체계도 철학과 철학자가 그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철학과 철학자가 제 힘을 발휘하기 못하는 한 사회와 국가의 부정과 악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철학자가 통치자이고 통치자가 철학자가 될 가능성은 두가지입니다. 기왕의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든지, 철학자가 권력을 받아 퉁치자가 되는 경우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또 사람들이 철학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일단 알게 되면 철학자의 통치를 반길것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는데요. 어떤 맥락에서 넘어간 것으로 정리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많이 미루다 할까날까 하다가 정리하는 거라 흐름이 자연스럽지는 못합니다. 이 과정은 결국 앞서 논의한 수호자에 대한 것과 지금 논의한 철학자에 대한 것을 결합시키는 것인데요. 올바른 국가의 수호자들에 대해 정리하면서 다루었지만 철학자가 국가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차마 할 수가 없어서 깊이 논의하지ㅡ않았던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논의도 앞서 정립한 올바름의 기준이 지혜, 용기, 절제, 올바름이라면 어쨰서 그래야 하는 것인가? 혹은 그것이 왜 좋은 것인가? 라는 식으로 그물음이 근원적인 것으로 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올바름이무엇인지알았다 하더라도 왜 올바름을 추구해야하는가? 그대답을 철학자는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나타나는 모습(생성과소멸을 통해)은 변화무쌍하지만 철학자는 변하지ㅡ않는 무언가를 보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변화무상함속에서 공동체를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완성을 통해서 국민이나 공동체을 더 나은 어떤 것으로 이끄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냥 그때 그때 좋은 것이 아니라철학자는 좋은 것에 대한 확고한 앎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가치 중의 가치요 존재 중의 존재라 할만한 좋음의 이데아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비유를 통해 설명할수 밖에 없다고 하며서 가시적인 영역에서의 태양과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눈의 시력이 있고 보이는 대상이 있어도 빛 즉 태양이 없으면 볼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거 빛의 강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눈의 시력을 인식, 대상을 진리에 비유하고 인식과 진리를 가능케 하는 좋음의 이데아는 태양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나 인식도 좋음의 이데아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좋음의 이데아는 어떻게 알려지는 것인가 했을 때 달리 표현할 수 없어 인식이라 하겠지만 진리에 대한 인식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진리와 인식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니까요.
좋음의 이데아를 스피노자의 실체로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실체가 뭐였더라.... 자기원인이라고 했던 것 같고.... 실체는 반드시 있을 수 밖에 없고(존재를 본질로 하고) ..... 유일하고 무한하고 영원하다. 그에ㅡ비해 모드( 나타나는 모습) 라면 자기원인이 아니고 (타자원인) ..... 그걸로 모든 성질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의이죠. 실체가 자기원인이고 모드는 타자원인이라는 것이 정의였죠. 제 기억으로는.... 정의로부터 정리가 나온다 그거군요.
그러면 진리와 인식은 스피노자식으로 하며 무엇에 해당될까요? 진리는 아마 스피노자가 정리이고 인식은 역시 확실성을 동반한앎이라고나 할까....그런데 이것은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인식과는 다른데 플라톤은 수학적 추론과 좋음에 이데아에 대한 인식을 구분하거든요.
그냥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불교의 깨달음, 기독교의 하느님 이런 것과 오히려 비교해보아야하지 않을까요? 종교적 깨달음과 유사하고 사실 그러한 관점에서 읽어야지 학문적인 차원에서만 보려고 하면 미궁 속을 헤메지 않을까 합니다. 적어도 종교적인 경지라고 하면 이해못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ㅎㅎㅎ.... 하여튼 지금은 더 이상 기억나는 것이 없고 7권에서도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설명이 계속되니 이번편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