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 2 (2권에 해당) 플라톤의 국가

트라시마코스가 소크라테스의 논리에 대응하지 못해서 다소 맥빠지게 퇴장하고 
그 뒤를 이어 글라우콘이 등장합니다.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를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소크라테스에게 반대편에 선 이유는 소크라테스로부터 한 수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글라우콘 자신은 올바름을 믿지만 올바르면 손해라는 세간의 주장에 대해 자신은 적절히 대응할 논리를 찾을 수 없으니 
자신이 그 입장을 주장하여 소크라테스가 그것을 반격해 내는 것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논의의 출발은  
글라우콘은 올바름이 좋다는 것이 무엇인지 소크라테스에게 묻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올바름이 좋다는 것이 
(i)올바름 자체가 좋은 것인지( 그 댓가와 상관없이:그 결과는 반드시 좋다고 보장할 수 없는  )
(ii)올바름 자체는 힘들고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그 댓가가 좋다는 것인지
(iii)올바름은 그 자체도 좋고 그 댓가도 좋은 것인지
어느쪽인지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묻습니다.
소크라테스는 (iii)이라고 합니다. 
글라우콘은 솔직히 많은 사람은 (ii)입장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사람이 올바름은 지키고자 하기는 하지만 그 이유는 그 자체가 좋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모두가 올바르지 않을 때의 최악의 상황(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을 피하기 위해 마지못해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가 올바름을 지키고자 하는 상태일 때 나홀로 올바르지 않게 군다면 틀림없이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자보다 올바르지 못한 자의 삶이 낫다는 믿음도 그 근거가 있다고 합니다. 

( 이부분에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본 게임이론이 생각납니다. 
특히 모두가 올바를 때 나만 올바르지 못하게 구다면 그건 분명 유리하다는 부분..... 
그런데 결국 올바름과 올바르지 못함이 적정한 비율에 따라 섞여 있는 것이 안정된 생존전략이라는 그런 이론이 있었어요.
시점이 다른 이야기이기 하지만 .... 일인칭주인공시점과 전지적 작가시점처럼
나름 정리를 해봤으면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올바름이 그 댓가와 관계없이 좋은 것이라는 걸 증명하려면, 
올바른 자가 올바를수록 갖은 핍박을 받고
올바르지 못한 자는 감쪽같이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모든 영광과 명예를 누린다
는 신파의 끝장사례의 경우에도 올바름이 낫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글라우콘의 형인 아데이만토스도 가세하여 올바름의 불리함과 올바르지 못함의 유리함을 설파합니다. 
세간의 말들을 예로 들면서 
올바름을 칭송한 말은 예외없이 그 댓가(개인과 가문의 영광)를 이유로 들고 있고  
또 올바르지 못함을 비난하지만 그 이득은 누리면서 오명은 벗어날 방법을 제시하는 예는 많이 있다.
궁극적으로 공정함을 견지해야 할 신(god) 역시 올바르지 못한 자에 대한 구제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올바른 자의 고난을 예비하고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에 대한 구원군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올바름이 그 스스로를 구원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일단 소크라테스는 
어려운 과제이므로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미시적인 대상보다는 거시적인 대상을 고찰하는 것이 쉽다고 하면서
인간보다는 먼저 국가의 올바름에 대해 고찰할 것을 제안합니다. 
국가(라기 보다는 공동체)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인간의 필요(의식주)을 충족하기 위한 협력과 분업의 필요성에서 공동체가 발생하게 되었다. 
인간의 필요가 다양하게 확대됨에 따라 그 에 따르는 다양한 일이 생기고 그 일을 하는 인간들이 모여살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계속되는 부분까지 읽었습니다. 
공동체가 계속 커져가고 있었는데 충분히 자랐는지는 아직 모르겠군요.
다음 시간에 계속...

일단 지난번에 국가(공동체)가 공동체에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되는 것으로 했는데...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한데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하는 것보다 한가지 일에만 종사하는 것 즉 분업이 유리하다고 합니다. 
그것은 기술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이러한 플라톤의 관점, 말하자면
'모든 사람은 어느 한 분야에서 좋은 기술자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만 종사할 수 있도록 권장해야 한다'
는 관점은 플라톤의 논리에서 아주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좋은기술'에서 논리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자주 있죠.
플라톤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데아가 아니라 좋은 기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 논의에서는 
글라우콘이 지난번에까지 각자가 일을 하는 바람직한 나라(건강한 국가)만 생각했는데 
정작 문제는 일하지 않고 낭비하고 노는 사람들까지 있는 나라라고 합니다. 
이에 소크라테스가 맞다고 하면서 이런 나라(염증상태의 국가)를 그려보다가 
나라가 이 정도에 이르면 낭비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영토가 부족할 것이고 
따라서 이웃나라와 전쟁을 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수호하는 일을 전담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점까지 이야기가 됩니다.
나라를 수호하는 일 역시 기술이고 다른 기술보다 난이도가 높은 편입니다.  

여기서 나라의 수호자로 적합한 성향 혹은 자질은 무엇인가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빠집니다.
여러 모로보나 그 자질은 개와 닯아야 한다(?)는 식으로 결론이 납니다. 그 이유는

감각이 예민하여 추적을 잘하고 싸워야 할 때 용감하게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용맹성(격정)은 적에게만 발휘되어야 하며 자기 나라 사람에게는 온순하여야 한다
온유와 격정이라는 대립되는 특성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주인에게는 온유를 주인을 해치는 적에게는 격정을 적절하게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니 그게 딱 개가 가진 특징과 일치합니다.
더 나아가 개가 꼭 자기에게 잘해준다는 것만으로 적과 주인을 구분하는 것은 아니고 
못된 주인이라도 한번 주인은 주인으로 섬깁니다. 
이것은 배우는 자세 즉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약간 뜨아~)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라의 수호자는 천성으로 지혜를 사랑하며 격정적이고 날래며 굳세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 이 때는 미처 주목하지 못했는데 '격정' 이라는 부분 역시 플라톤에게서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개, 동양적 스타일로 바꾸면 '의로울 의'
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
 
그 다음 수호자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로 넘어갑니다. 
교육에는 육체를 단련하는 것(체육)과 영혼을 단련하는 것(시가)가 있는데
먼저 시가교육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시가에는 픽션과 논픽션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허구가 먼저입니다. 
쉽게 말하면 옛날이야기를 제일 먼저 해준다는 것이지요. 
그 옛날이야기라는 것이 말하자면 그리스신화인데요
소크라테스는 이 이야기가 잘못되어있다고 말합니다. 
신이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나쁜일을 하고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기 위해 자신을 위장하는 등 이런 일을 하는데 그건 아니라는 거죠.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자라나는 어린이한테 신이 나쁜 짓도 하고 불완전한 것으로 이야기하는 건 잘못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도록 검열단속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유, 인권의 세례에 푹 빠진 사람으로서 검열이라고 하면 일단 거부감부터 생길 수 있는데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지금 이 부분은 
어린이를 국가수호자로 키우기 위해서 
어린 시절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는가를 보고 있습니다.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진실이 뭐냐가 아니라 교육적 효과라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다루는 것은 신과 영웅에 대한 기준인데
신이나 영웅이라 불리는 자는 그 이름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지 
시정잡배나 다름없는 짓도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러한 이야기는 검열해서 다 아웃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진실이더라도...
(혹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인간을 다루는 기준입니다.  
이 논의는 인간의 올바른 삶을 고찰하는 도중에 나온 것이라면
인간에 대한 기준은 아직 고찰 과정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미정입니다. 그러나 
대략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결국 좋은 인생을 사는 식으로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의 내용에 대한 검열기준(?)이었다면 
이야기의 형식이랄까 그런 측면에서 바람직한 형식이 있는지 모색하는데 ....
그것은 모방(등장인물이 직접대화하는 투)을 얼마만큼 허용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핵심논지로 등장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설계하고 있는 국가는 
기본적으로 전 국민이 일인일역에 충실하면 되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역할을 모방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충실도만 떨어뜨릴 뿐 긍정적인 효과를 낳지 않는다고 봅니다. 
다방면으로 모방에 능하다는 것이 이 국가에서는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방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야기에 모방이 전혀없으면 재미가 없으니 
어느 정도의 모방은 허용하되 그 기준은 
훌륭한 사람의 말의 모방은  허용하고 
뭔가 안좋은 말이나 행동에 대한 모방은 허용하지 않기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영웅은 직접 말할 있지만 악당은 화자를 통해서만 말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데 상대가 어린이이고 어린이는 금방 흉내낸다는 걸 생각하면 현실적인 결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까지가 이야기 즉 서사에 대한 것이었고 
이제부터는 시(라기보다는 노래)대해서 고찰합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수호자교육의 한분야로서 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 
내용은 서사에서 이미 고찰한 그대로 하면 되는데 
문제는 노래의 형식이라고 할 부분이다. 
형식에서 하모니와 리듬이 있다. 
하모니 중 비탄조의 하모니(발라드?)나 퇴폐적인 하모니(댄스?)는 아웃시키고
건전하고 건강한 하모니(교양가요?) 만 남겨둡니다. 
우리가 흔히 ′어린이에게는 동요′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 
소크라테스에 동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리듬인데 리듬은 소크라테스가 잘 모르겠으니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좋은 리듬과 나쁜 리듬에 대한 고찰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2권이 끝나는 것은 아니고 조금 더 있지만 그냥 3권과 같이 묶겠습니다. 이미 너무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비스듬히 처리한 글은 이번에 새로 첨가한 부분입니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다시 앞부분을 보니 거의 대칭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논의가 일관성이 있더군요. 이랬다저랬다하는 일 없이 정신이 바짝 차리고(?) 일관성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탄의 의미로 첨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플라톤의 국가 포스팅을 어쨋든 이번 주에는 마무리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옵니다. 잘자요. 
(음악도시 성시경시장멘트 ㅎㅎ--- 따라해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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