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온생명론 연구모임 정리
2009.06.09 17:34
5월 29일로 예정되어 있던 온생명론 연구모임을 한 주 미루어 6월 5일에 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를 해 볼께요.
참석한 사람 : 그러게요, 自然, 황, 시인처럼
(조촐하게 모였죠? 한 주 미룬지 잘 몰랐던 분도 있고, 바빴던 분고 있고 해서...^^;)
이 날은 장회익 선생님의 지난 겨울 인문강좌 강의 중 "제4강 나와 너 그리고 우리 - 삶과 앎" 원고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주로 나누었던 이야기...는 정리하기가 힘들고 주로 제기되었던 질문들만 정리를 해 보죠.
Q. '너'와 '그것'이 구분되어야 하는 이유가 불분명하지 않은가?
(원고의 12쪽, 33쪽에 등장하는 앎의 구분, '1. 나의 나와의 관계에 대한 관심사, 2. 나의 너와의 관계에 대한 관심사, 3. 나의 그것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사'에 대한 의문)
Q. '온우리'는 물활론적이지는 않은가?
Q. '온우리'라는 말, 또는 이름을 써서 얻는 소득이 별로 없는 것은 아닐까?
'집단 지성', 또는 '온생명의 정신' 등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복잡해지고 오해소지 많은 뉘앙스만 더해지는 것은 아닐까?
Q. 장회익 이론 속에서 '지식'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13쪽에 대인지식, 대생지식, 대물지식이라는 기존 용어 이외에 '대아(對我)지식'이란 말이 새로 등장하는 데 이 때의 '지식'은 knowledge? knowing? 앎? 나 자신에 대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느낌이 아닌가?
Q. 장회익 이론 속에서 '주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삶의 주체', '공동 주체', '서술주체(인식주체=관측자)' 등의 용어에서 '주체'의 의미는 같은가? 이 각각에서 '주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Q. 우리는 인식 주체일 뿐만 아니라 '행위 주체'이기도 하므로 원칙적으로 우리가 포함된 세계에 대한 예측은 불가능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 자신의 행위에 따라 예측된 바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 좋은 예측을 가능케 하는 통합적 지식, 큰 그림을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A. 행위의 층위와 서술, 또는 예측의 층위가 다르기 때문에 '행위 주체로서의 나'는 '서술 주체로서의 나'가 서술하는 서술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서로 다른 층위를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예측하고 행위하기를 거듭하는 게 아닐까?
Q. 예측과 행위 사이의 관계, 우리 자신이 우리가 예측하는 세계에 불가피하게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장회익 이론은 보다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참여적 세계관'이라는 연구 패러다임을 채택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Q. '온생명의 주체적 측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이미 이야기하는 다른 연구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다중 지성'이라든지, '집단 지성'을 논하는 연구 등을 비롯해... 이런 다른 이들의 기존 개념을 이용해 온생명의 주체적 측면을 설명하는 것과 '온우리'라는 새 개념을 이용해 설명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오해의 소지가 적고 잇점이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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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과 행위의 문제에 대해서는 장회익 선생님께서 작년 가을 석학특강에서 칸트 얘기를 하셨던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 같습니다. 칸트는 지성(Verstand)과 감성(Sinnlichkeit)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글자로만 보면 이 둘이 모두 '지식' 내지 '인식'을 이루는 요소라는 점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식이 이루어지려면 이 둘이 늘 함께 작용해야 합니다. 따라서 인식 주체라 함은 '지성의 주제'(서술 내지 예측)와 '감성의 주체'(행위)를 동시에 의미하죠.
"감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오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사유되지 않을 것이다.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그러므로 개념을 감성화하는 것(즉 개념에 대하여 그 대상을 직관에 있어서 부여하는 것)은 직관을 지성화하는 것(즉 직관을 개념 아래에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 오성은 아무것도 직관하지 못하며, 감성은 아무것도 사유하지 못한다. 양자가 결합함에 있어서만 인식이 나올 수 있다." (I.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B. S. 75.)
저는 여전히 선생님이 얘기하시는 '지식'은 knowledge라기보다는 knowing 내지 독일어의 Wissen 내지 프랑스어의 savoir와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알기' 정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