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화두(1)
2010.01.07 11:43
“용어의 정확한 정의는 불필요한 논쟁을 줄여 줍니다.”
(1) <의식>의 문제
데카르트는 감각할 수 있는 존재인 육신을 ‘res extensa’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감각할 수는 없지만 육신과 달리 사물을 인식하는 또다른 ‘그 무엇’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res cogitans’라고 불렀습니다.
‘인식의 주체’인 ‘그 무엇’을 데카르트는 하나의 개체로 보았습니다. 이른바 <의식>이라는 개념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의식>이 하나의 개체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하나의 개체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식의 주체로서의 <의식>은 결국 “나”라는 존재를 의미하는 개념이 됩니다.
즉 <의식>이라는 개념은 “나”를 의미함으로써 실체화하게 되는데, 실체화란 또한 개체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의식>은 개체화됨으로써 육신과 대비되는 위치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육신과 대비되는 하나의 개체로 자리잡은 <의식>은 마침내 ‘심신문제’를 낳기에 이릅니다.
‘심신문제’는 ‘심’과 ‘신’이 하나냐 아니면 둘이냐에 따라 1원론과 2원론으로 나뉘는데,
어쩌면 여기에다 1.5원론을 첨가해야 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심’과 ‘신’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다만 따라 나올 뿐이라는 김재권의 ‘심신 수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에서 ‘심’이 따라 나올 때,
원래 하나이던 것이 쪼개져 따라 나온다면 1원론이 될 것이고, 안에 따로 숨어 있던 것이 따라 나온다면 2원론이 될 터이니,
결국 1.5원론이란 무지로 인한 잠정적인 주장으로 보아 무시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창발성으로?)
그런데 “나”라는 존재를 인식할 수 없을 때에도 <의식>은 하나의 개체로 인정받을까요?
동물의 경우는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만일 “나”를 인식하는 주체만이 <의식>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면 동물에게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동물이 비록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인식의 주체로서의 구실은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1)인식의 주체로서의 <의식>과 (2)“나”를 인식하는 <의식>을 구별할 필요가 생깁니다.
종종 <의식>이라는 존재를 여러 수준으로 나누어 설명하려는 시도를 접할수 있습니다.
에델만은 <의식>의 수준을 1차/2차/고차 등으로 분류합니다.
데넷은 생물을 여러 수준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베넷-해커는 <의식>을 타동사적/자동사적으로 분류합니다.
왜 이들은 이렇게 <의식>을 여럿으로 나누어 설명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의식>이라는 존재가 서로 겹치지 않는 여러 상태로 표출되는 예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가 잠들어 있을 때 “나”의 <의식>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요?
그래도 잠들어 있을 때는 누군가 흔들어 깨우면 “나”의 <의식>은 어디선가 급히 돌아옵니다.
그러나 “나”가 기절한 경우는 “나”의 <의식>은 여간해서는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때는 “나”는 또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도대체 왜 “나”는 이런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의식>이라는 개념은 <마음>이라는 개념과 혼용되고 있습니다.
<의식>이라는 개념은 이성적인 면이 강한데 비해 <마음>이라는 개념은 감성적인 면이 강합니다.
그래서인지 흥미롭게도 문과인 철학에서는 <마음>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이과인 뇌과학에서는 <의식>이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의식>과 <마음>은 과연 동일한 존재일까요?
<의식>에 관한 여러분의 정의는 무엇이고 또 <마음>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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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지요
2010.01.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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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
2010.01.11 00:38
'의식'을 어떻게 정의하고 얘기를 끌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참 어렵고 힘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로저 펜로즈가 "임금님의 새 마음"(황제의 새 마음, Emperor's New Mind)의 후속편으로 발표한 "마음의 그림자들"(Shadows of Mind)의 부제는 "빠져 있는 의식의 과학을 찾아서"(A Search for the Missing Science of Consciousness)인데, 거기에서 흥미로운 용어 정리를 합니다.
‘의식’(consciousness), ‘인식’(awareness), ‘이해’(understanding), ‘지능’(intelligence)
펜로즈에 따르면, ‘지능’은 반드시 ‘이해’를 전제해야 하며, ‘이해’는 ‘인식’을 전제해야 합니다. ‘인식’은 ‘의식’의 수동적 측면이고, ‘의식’의 능동적 측면은 자유의지입니다.저는 이 의식, 인식, 자유의지, 이해, 지능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마음'(mind)이란 용어를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http://www.thebigview.com/mind/ 참조)
제 자신이 심리철학 전공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아마추어에 가깝습니다만, 굳이 '마음'과 '의식'을 구분하자면, '의식'은 '마음'의 다양한 측면들 중 하나라고 봅니다. 제가 많이 의존하는 스탠퍼드 대학 철학백과사전의 '의식'이란 항목(http://plato.stanford.edu/entries/consciousness/ [Robert Van Gulick 집필])과 '인지과학'(http://plato.stanford.edu/entries/cognitive-science/ [Paul Thagard 집필])이 유용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물의 의식'(http://plato.stanford.edu/entries/consciousness-animal/ [Colin Allen 집필])과 '동물의 인지'(http://plato.stanford.edu/entries/cognition-animal/ [Kristin Andrews 집필])이 좋은 대조논리가 됩니다.
영어판 위키피디어의 '심리철학'(http://en.wikipedia.org/wiki/Philosophy_of_mind ) 항목도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독어판 위키피디어의 '마음'(http://de.wikipedia.org/wiki/Geist )도 유용합니다.
독어 Geist, 그리스어 πνεῦμα 프네우마, νoῦς 누스, ψυχή 프쉬케, 라틴어 spiritus, mens, animus/anima, 히브리어 ruach 아랍어 ruh, 영어 mind, spirit, 불어 ésprit, 이태리어 mente, 일본어 こころ(고코로)가 모두 같은 의미가 아닐 수도 있지만, 위키피디어에서는 모두 한묶음에 나옵니다. 각 언어권마다 조금씩 다른 관점과 서술이 나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하여튼 저는 '마음'과 '의식'을 정확히 정의하고 얘기를 전개하는 것이 힘들고, 어떤 점에서는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서는 스피노자의 일원이측면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온생명론 공부모임 멤버들의 공통된 의견은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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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헌터
2010.01.11 16:20
굳이 <의식>과 <마음>을 구분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단어를 아무런 불편없이 사용하고 있는데 굳이 구분함으로써 ‘긁어 부스럼’ 식의 불편을 자초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심지어 일반인의 경우에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양인’에게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구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델만이나 데넷이 굳이 여러 수준의 의식이나 생물로 나누어 설명을 시도한 것은, 그들이 하나의 의식이나 생물만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들에 부딪친 후 취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여러 수준의 구분이, <의식>과 <마음>의 구분이라는 단순한 방법에 의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잠깐 ‘통증(pain)’이라는 개념과 ‘고통(suffering)’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저녁 식사 후 그의 애견을 데리고 철길이 있는 들판으로 산보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산보 도중 웬일인지 현기증을 느끼고 잠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과 애견이 밧줄에 묶인 채 철로 위에 놓여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멀리서 기적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와 애견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애견은 밧줄이 조이는 ‘통증’으로 인해서였지만, 그는 잠시 후 기차가 지나갈 것이라는 ‘고통’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통증’은 <의식>의 산물이지만,
‘고통’은 <마음>의 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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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
2010.01.13 14:38
제가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저도 개념을 정확히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의식'을 '마음'의 여러 측면들 중 하나라고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마음'과 '정신'은 어떻게 같거나 다른가? 하는 문제도 제기된 적이 있는데, 요즘 생각으로는 '마음'과 '정신'은 대체로 동의어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정신현상을 곧 신경상태와 연결시키는 접근이 기능주의 심리학과 상통한다고 하면서, 아예 명시적으로 마음의 여러 측면 중 하나로 의식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 따르면 '마음'에는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 '감각', '기억', '사고', '의지', '인지', '운동통제' 등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식의 추상화는 각 측면들의 경계도 모호하고 대개는 여러 측면들이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부적절한 면도 있다는 언급을 잊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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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
2010.01.22 16:01
(* 관련될 것 같아서 제가 지난 학기 수업에서 게시판에 썼던 글(일부)을 가져옵니다. *)
존 설이 중국인(어) 방 논변은 강한 인공지능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인공지능은 즉 (언어의) 이해를 simulate할 뿐이고, 순전히 기호조작의 계열로 구문상으로 형식적 작동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해와 참된 지능에 필요한 의미론적 차원(지향성 또는 의도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시스템 응답(systems reply: Dennett, Hofstadter)은 방 안의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방 자체는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스템 응답에 대한 Searle의 반박은 이해는 의식적 정신상태(conscious mental state)를 전제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를 다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생긴 거죠.
먼저 펜로즈가 [마음의 그늘]에서 정리하고 있는 네 가지 용어는 ‘의식’(consciousness), ‘인식’(awareness), ‘이해’(understanding), ‘지능’(intelligence)입니다.
펜로즈는 ‘지능’은 반드시 ‘이해’를 전제해야 하며, ‘이해’는 ‘인식’을 전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식’은 ‘의식’의 수동적 측면이고, ‘의식’의 능동적 측면은 자유의지라고 말합니다. 즉 펜로즈에게는 의식(consiousness)가 가장 중요합니다. 약간 과장해서 도식화하면
의식(consciousness) --> 인식(awareness) --> 이해(understanding) --> 지능(intelligence)
가 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의식(consciouness)가 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데, The MIT Encyclopedia of the Cognitive Sciences (1999)는 맨 처음부터 의식을 '의식적 정신상태'(conscious mental state)로 보고 얘기를 끌어갑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사전[Robert Van Gulick]은 원론적으로 '의식'은 명사(consciousness)라기보다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비균질적 형용사(conscious)라고 봅니다. '상태'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긴 하겠지만, 하여튼 '의식'이란 곧 '의식적 정신상태'를 가리킵니다. '의식적 정신상태'는 대략 여섯 가지 의미로 분류됩니다.
http://plato.stanford.edu/entries/consciousness/
(1) a mental state one is aware of being in
(2) qualitative or experiential properties of the “qualia”
(3) phenomenal states: the spatial, temporal and conceptual organization of our experience of the world and of ourselves as agents in it
(4) what-it-is-like states (Nagel)
(5) access consciousness: availability to interact with other states and of the access that one has to its content (Block)
(6) narrative consciousness (Dennett)
여기에 덧붙여 마음(mind), 지각(perception), 인지(cognition)의 개념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하튼 지금은 Cognitive Science를 '인지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확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SEP는
Cognitive science is the interdisciplinary study of mind and intelligence, embracing philosophy, psychology, artificial intelligence, neuroscience, linguistics, and anthropology
라고 말합니다. 즉 인지과학은 '마음'과 '지능'을 연구한다는 것이죠.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The MIT Encyclopedia of the Cognitive Sciences (1999)에는 mind 항목도, cognition 항목도, perception 항목도 없습니다. intelligence 항목이 짤막하게 있고 Robert J. Sternberg가 작성했는데, 별로 영양가가 없습니다.
하여튼 일단 핵심은 '의식'에 있다고 보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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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헌터님! 새해 좋은일 이루길 바랍니다.
'의식'과 '마음'의 문제 조금 더 공부후에 해 올립니다.
아무래도 타임헌터님의 올 [화두]로 인하여 공부 한 번 제대로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