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두번째 질문 스피노자
2012.05.21 00:30 Edit
에티카에 대한 첫번째 질문을
다시 읽어보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헐~
이것을 통해 두 가지를 알 수가 있네요.
첫째, 사람이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말을 할 수 있다.
둘째, 그때가 지나면 그 문제를 전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하나 드는 생각은 절대적 무한에 대비되는 것을 말할 때는
부분적 무한이 아니라 상대적 무한이라고 해야 되겠어요.
그죠?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상대적 무한이 뭘까?
무한이 뭘까?
무한에 대한 정의는 없지만 유한에 대한 정의는 있죠.
같은 류에 의해 한정되는 것이었나 뭐 이렇다고 했는데...
찾아보니까
to be finite : be limited by another of the same nature (in its own kind)이라고 되어있네요.
그렇다면 유한은 자신과 동등한 다른 것이 있어야 하고
상대적 무한은 여기서 infinite in its own kind로 변한 것이나까 자신의 류는 있지만 그 안에서는 제한되지는 않는다이고
절대적 무한은 자신의 류라는 것 조차 없다.
뭐 이렇게 되는 걸까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왜 하는걸까요?
(생각하면서도 모르겠어요. 그냥 하긴 하지만...)
예를 들 수 있으면 명확할 거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자연수는 무한하다라고 하면 이건 뭘까요?
엥~ 이거 상대적 무한인가요?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좋겠다 싶지만 능력이 안되서
그냥 넘어갑니다.
그 다음은 "존재와 본질"입니다.
헐~ 스피노자가 내린 정의1번입니다.
바로 자기원인(cause of itself)!
본질이 존재를 포함한다나 뭐라나....
근데 이게 무슨 말일까요?
엉성하게 생각해보면
존재의 근거에 대해 더 소급할 것이 없다는 상황이 바로
자기 원인이 되는 것이니까
뭔가.....
"이렇다" 라고 하는 하면 "그럼 그렇지" 하고 끝나는 상황같기는 해요.
그럼 이러한 상황을 어렵게 말한 것일까요?
본질이 존재를 포함한다.
흠.......
정리 24에 보면 신에 의해 생산된 것은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지 않는다 (제마음대로 편하게 번역하자면)라고 되어 있거든요.
그럼 이런 상황이라며 "이거다"라고 하더라도 왜 그런지는
더 근원적으로 소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이기 때문에 이렇다
~라면 이렇다
이렇게 될까요?
그럼 부분집합같은 것이군요.
흠 본질이 존재의 부분집합이 된다고나 할까
그런 상황이군요.
적다보니 조금 정리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뭔소리냐? 하겠지요.
뭐...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또 생각나면 글올리는수밖에.......쩝.
Message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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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별말씀을
감사합니다. ^.^
별 고생스럽거나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서 잠깐 당황스런 기분도 드는데요.
다른 철학자를 통해서 보자면 그 철학자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니까 볼 책도 많아지고 .... 그래서 저는 그냥 책 한권만 읽는 쪽이 좋습니다.
에티카에 보면 물질은 신의 본성에 속하지 않는다는 주류신학자들의 주장을 검토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주류신학자의 논리는
물질은 무한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의 무한성에 참여할 수 없고 따라서 신의 본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류신학자들은 물질이 분할가능하다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물질의 분할가능한 성질과 무한한 성질을 동시에 지닌다면 자기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스피노자는 물질은 무한한 신의 본성에 속한다고 하면서 주류신학자들이 제기한 문제는 오히려 물질을 분할가능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물질의 분할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한성을 인정합니다.
현실적으로 물질을 분할가능하다고 당연히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imagination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확인요함....)
여기까지가 제가 책에서 본 내용입니다.
스피노자가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지 아주 궁금한 기분으로 읽었는데 역시나 허를 찌르는 결론에 와 대단하다(?) 면서 감탄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후 무한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했구요.
스스로 모순인지도 모르고 받아들이는 견해가 많은데
스피노자가 따지는 것을 보니 역시 참 대단하다 또 감탄 ..
답글로 쓰려니까 너무 길어서 본질과 존재에 대한 의견은 다른 본문으로 쓸겠습니다.
답글을 달아주셔서 늘감사합니다. 6-_6
어려운 공부를 하고 계시는데, 제가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이제까지 별로 도움이 안 되었습니다. 스피노자의 책 자체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면서 읽어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철학 전공자들은 철학사를 즐겨 사용합니다. 게다가 훗날의 철학자들이 고전을 다시 읽을 때에도 결국 자신의 생각을 새로 만들어서 그 고전을 읽게 되잖아요. 제 자신은 스피노자를 있는 그대로 읽기보다는 들뢰즈를 통해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도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기 전에는 철학사가 내지 논평자였죠. 그의 [스피노자의 철학]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가령 http://trans-r.tistory.com/37 , http://hi007.tistory.com/230 참조)
하지만, 다른 철학자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고전 텍스트에 도전하는 것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바람직한 접근이라 생각합니다.
'무한'에 관해서만 말하자면, 스피노자 이전에도 뷔리당이니 오렘이니 하는 사람들이 심각한 논쟁을 전개했고, 스피노자는 그 전통을 잘 알고 있는 맥락에서 자신의 얘기를 풀어갔습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19세기에 특히 헤겔의 철학이나 수학(특히 미적분학)과 관련하여 무한에 대한 얘기가 아주 폭넓게 오고갔으니, 새삼 스피노자의 텍스트에 담긴 '무한'에 깊이 골몰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질'과 '존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말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유럽어의 근간이 되는 라틴어에서 esse는 영어의 be, 불어의 etre, 독일어의 sein이 됩니다. 한국어에는 이 말이 없지만, "A는 B이다."라는 말에서 바로 본질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동시에 '존재한다'는 말도 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존재(being, Sein)가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