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월 세번째 온생명작은토론회준비글 작은토론회/강좌 관련글
2011.02.18 21:17 Edit
장 회 익
앎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앎의 틀
- 틀에 맞지 않는 정보의 처리
- 새로운 틀
- 칸트의 철학은 앎의 틀에 대한 것이다.
- 틀은 변화한다.
-
생명이란 무엇인가?
- 사물에 대한 현상적 지식을 가지는 것과 그 사물과 관련된 현상에 대해 과학적 설명을 하는 것 (자유에너지/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
- 우주 안에는 생명현상이라 불릴만한 특수한 현상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온생명이라는 형태를 갖출 때에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 태양-지구계와 그 안에 형성된 전체 국소 질서들의 집합이 온생명에 해당하고, 각 단계 그리고 각 개체로서의 국소 질서들은 낱생명이다.
- 생명이라는 것은 이 온생명이 이루어진 상태를 일컫는 말이 되어야 한다. 이 안에서 편의상 구획되어 있는 어떤 개체가 살아 있느냐 아니냐는 이것이 온생명과 정합적 관계가 있느냐 아니냐를 의미하는 것이다.
- 온생명은 더 이상 분할하면 생명현상으로서 존립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생명이 갖추어야 할 필수 단위임과 동시에, 더 이상 외부로부터 결정적인 지원이 없어도 생존을 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생명이 지니는 자족적 단위이기도 하다.
- 앎과 온생명 – 틀이 바뀌어야 한다. 온생명을 담을 수 있는 앎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물리학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 생명에서 발현된 것
- 생명체 외부에서 관찰하여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것
- 생명체의 일부가 되어서 주체적으로 파악할 수 밖에 없다.
- 이것 없이는 인식이 불가능하지만 (인식의 기본바탕) 인식대상의 세계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는 경우 인식의 층위가 달라진다. (자기성찰)
- 어떠한 의식이 어떤 범위에서 발생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의식을 담아내는 신체의 물리적 여건에 의존한다.
- 의식과 물리적 여건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는가? (자유의지)
- 의식과 온생명 – 의식의 크기 (작은 나/큰 나)
마뚜라나/바렐라
앎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앎은 저기 바깥에 있는 것을 머리에 넣는 인식현상이 아니다. 우리로부터 독립한 세계가 있고 인식활동을 통해 객관적 세계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 저기 바깥의 세계는 인간(구조)이 산출하는 것이다.
- 인식이란 행위(산출)이다
- 인식이란 객체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 인식활동이란 효과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인식함으로써 우리자신을 산출한다. à 인지적 순환
생명이란 무엇인가?
- 자기생성조직 / 자기 옷을 여민다 / 자신을 주위환경과 다른 것으로 구성한다 /조직의 유일한 산물이 자기자신이다 (개체발생)
- 자기생성활동 - 구조접속/재귀적 상호작용
- 물리적 과정이기도 하지만 개체 특유의 현상계(생물학적 현상계)를 만든다
인간의 의식이란?
- 유기체 간의 접속(3차 등급 – 사회적 접속)영역에서 생긴 행동이 바로 의사소통적 행동이다. 의사소통적 행동에는 타고난 것(본능)과 배운 것(학습)이 있다. 의사소통적 행동 중 배운 행동을 가리켜 언어적 영역이라 부른다.
- 언어적 영역에서 언어적 영역 자체에 속한 행동들의 상호조정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언어적 구분이 생겨서 언어가 생긴다.
- 언어가 생기면 조정행위를 통해 언어가 산출되었다는 것은 가려진다. 저기 바깥에 존재하는 것처럼 된다(객체화?).
- 생물학적으로 보아 인간의 독특함은 사회적 구조접속이 언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자기의식과 정체성이 산출된다.
- 인간의 행위는 언어 안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사건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는 우리의 온몸이 함께 얽혀 있다. 모든 행위는 우리의 구조적 역동성과 구조적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
- 우리가 가진 세계란 오직 타인과 함께 산출하는 세계일 뿐이다. 오직 사랑의 힘만이 이세계를 산출할 수 있다.
-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어려움의 핵심은 바로 앎을 잘못 아는데, 앎을 모르는데 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빠짐없이 세계를 산출하는데 이바지 한다. 우리가 타인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세계를 산출하는 바로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 행위의 초월성을 보지 못하면, 우리가 부응하고자 하는 상과 실제로 산출하는 존재를 혼동하게 된다. 이런 잘못은 오직 앎을 알아야만 고칠 수 있다.
정리 및 질문
1. 앎의 틀 / 앎에 대한 앎
객관적 외부세계에 대해 부정적 입장
앎의 틀: 틀 안의 세계 / 틀이 달라 짐에 따라 세계가 달라 질 수 있다.
여전히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경계는 인정.
인식주체는 집합지성(지성의 집합)
앎에 대한 앎 : 세계란 행위(구조접속과 섭동)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계는 개체의 자기 생성의 산물이다. 경계인정 안함.
세계란 계속되는 행위를 통해 계속 만들어지는 진행형
2. 생명에 대한 과학적 설명
자유에너지/자체촉매적 국소질서 - 근본적으로 물질에서 생명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조건들이다. 이 조건이 갖추어지는 단위가 지구-태양계이다. 그래서 진정한 생명의 단위는 태양지구계이고 이것이 온생명이다.
자체생성조직 -생명이 물질에서 탄생하지만 물질현상과 달리 생명현상이라고 할만한 현의 특질 을 설명한 것이다.
3. 의식
(장) 의식을 물리학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결정론 대 자유의지
(마) 의식은 신경계의 작용의 결과이고 고차적인 의식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식이 가능한 구조를 설명하고자 한다.
4. 성찰의 결과
(장) 온생명을 알게 되면 즉 생명의 조건을 알게 되면 그 조건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마) 생명의 본성이 타인과 공존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알게 되면 타인을 부정함으로써 생기는 인간사회의 문제가 많은 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한다.
(질문) 1. 과학적 설명과 현상적 설명을 구분하는 기준은?
2. 자족적이라는 것이 온생명의 개념에 들어가는가? 들어간다면 왜?
3. 온생명의 의식: 개체 의식과 별개? 신경계가 정보통신망?정보통신망을 통한 의식수준의 상승?
4. 결정론 대 자유의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