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세미나4기 발제2 얼렁뚱땅

3장 콜레스테롤의 딜레마

 

비타민D와 엽산은 둘 다 인체에 필수적인 성분이다. 비타민D는 햇빛(자외선)을 받고 인체에서 생성되는데 반해서 엽산은 햇빛에 의해 파괴된다. 그래서 우리 몸은 필요한 양의 비타민 D를 생성할 만큼의 햇빛을 받아야 하는데, 그 햇빛의 강도는 그로 인해 엽산이 파괴되더라도 그 남은 양만으로 우리의 인체의 활동에 지장이 없는 정도여야 한다. 그렇다고 어떻게 균형을 맞출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몸은 이미 주어진 환경의 햇빛의 강도에 따라 비타민 D의 생성과 엽산의 파괴가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진화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피부색이 그것이다. 자외선이 강한 적도 근처에는 엽산의 파괴를 줄일 수 있도록 검은 피부로, 일사량이 적은 북쪽 지역은 자외선을 최대한 많이 받아들여 필요한 만큼의 비타민 D을 생성할 수 있도록 흰 피부로 진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누이트족의 경우처럼 예외도 있지만 그것은 환경에 적응한 선택이 발생할 만큼 긴 시간을 거주했더라도 음식을 통해 충분한 비타민 D를 섭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부색에 대한 진화적 압력이 없었던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피부색과 환경의 긴밀한 관련은 현대에 와서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불과 1-2백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인간이 자기가 태어난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일생을 마쳤다. 그러나 지금은 원래 태어난 곳을 떠나 지구 어디든 거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가령 내가 검은 피부를 가졌더라도 북극에 가서 살 수도 있다. 그럼 비타민 D가 부족해진다는 것을 알고 비타민 D을 음식이나 영양제로 섭취하면 된다. 내가 흰 피부를 가졌고 적도 부근에 살게 된다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엽산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제로 조상대대로의 땅을 떠났고 타향에서의 삶이  자신의 건강을 돌볼 처지가 아닌 경우에 발생한다. 흑인노예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앞에서 설명한 비타민 D, 엽산과 자외선의 상관관계에 따르면, 뉴잉글랜드에 강제로 이주당한 흑인노예의 경우 비타민 D 부족이 일어났을 것이다. 여기서 이 장의 제목을 차지한 콜레스테롤이 등장한다. 그것은 시대를 뛰어넘어 나타난 다음의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국사회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심장병에 걸리는 비율이 유럽계나 아시아계에 비해 두 배에 이르는데, 그것은 왜 그런가 하는 점이다. 비타민 D는 체내의 콜레스테롤이 햇빛을 받아 변환되어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비타민 D의 생산은 햇빛의 양 뿐만 아니라 체내콜레스테롤의 양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적은 햇빛이라도 콜레스테롤이 충분하다면 그래도 필요한 만큼의 비타민 D를 생산할 수 있다. 특히 ApoE4라는 유전자는 혈액을 흐르는 콜레스테롤 양을 늘리는 일을 한다. 따라서 흑인은 엽산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햇빛을 차단하는 검은 피부를 가짐과 동시에 콜레스테롤을 증가시켜 적은 햇빛으로도 비타민 D의 생산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된 것이다. 이것을 다시 뉴잉글랜드에 강제이주를 당한 흑인노예의 예에 적용시켜보면 이들은 검은 피부를 투과하여 콜레스테롤을 추가로 전환할 만큼 햇빛에 충분치 않기 때문에 비타민 D 부족과 콜레스테롤 과잉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그래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경우 콜레스테롤 과잉으로 인한 심장병의 발병률이 높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면 부작용이 염려되는 콜레스테롤감소제를 복용하기보다는 과잉콜레스테롤이 비타민D로 변환될 수 있도록 태닝을 자주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3장에서는 콜레스테롤의 예 이외에도 특정 개체군에만 나타나는 특성이 어떠한 경로로 진화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예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특성이 과거에서 유리했으나 달라진 환경에서는 오히려 불리한 특성이 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환경의 변화가 불과 몇 백년 안쪽에 일어난 일이고 그것은 아직 진화의 관점에서는 그 적응이 고려조차 되지도 않을 찰나에 불과해 변화의 조짐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불리한 환경에 적응하는 쪽으로 진화가 일어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것은 더 이상 불리한 환경이 아닌 것이 된다. 물론 그 사이에 어떤 종은 멸종을 겪거나 아니면 지구 전체의 시스템이 망가져 생명 전체가 멸종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따지면 꼭 이래야 한다는 것은 없다. 그래도 막 살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삶의 규칙을 정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럴 때 그 근거가 무엇인지 냉정히 판단해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을 넘어 남을 판단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행동으로 나아갈 때는 더욱 더 그 근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좋든 싫든 진화는 계속 된다는 것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 외 이 책을 읽으면서 내용이 무척 흥미롭기는 하지만 다소 정보의 과잉이라는 느낌도 가졌다. 건강하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좋기는 하지만 건강에 대한 정보가 많다는 것이 꼭 건강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요즈음처럼 건강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면서 나는 건강에 얼마만큼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건강이 최고의 가치인가? 건강에 좋다는 것에는 항상 우월한 가치를 인정하고 건강에 나쁘다는 것은 무조건 억압해도 괜찮은가? 인간의 생명을 구한다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많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가 지니는 가치가 이러한 질병을 치료한다거나 이러한 증상을 개선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연구 자체로 가치가 있다거나 그냥 궁금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해주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이 책을 통해 내 몸에 대해서도 생각하였다. 내 몸에 담긴 역사만 파헤쳐 보아도 우주의 역사가 나올 것이니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또 머리말에서 저자가 우리는 혼자 있을 때도 혼자가 아니다. 박테리아, 균류, 벌레 등등 수많은 생물체가 우리와 같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정말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 몸만 가지고 놀아도 정말 심심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간디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간디가 몸과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평생을 실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리 정신적인 일이라도 몸을 통해 이룰 수 밖에 없는 것이니 정말 무슨 일을 하려는 사람은 몸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겠다. 보다 도덕적이거나 바람직하거나 금욕적이거나 혹은 건강에 좋다거나 하는 것에 상관없이 나도 내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일에 더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내 몸을 알지 못한다. 알아가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간디처럼 음식실험은 못할 것 같으니 일단은 생명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내 몸의 위상을 점점 높여가는 일을 계속 해 나가야겠다.    

Leave Mess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