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요약 1-2 (83-120쪽-1권 끝) 플라톤의 국가
2013.04.23 19:36 Edit
시작은 올바른 삶에서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정직하게 산다
빚을 지지 않는다
갚을 데에 정확히 갚자 (친구에게 도움을 적에게 응징을)
이러한 주장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이란 것이 그렇게 나이브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이때 새로운 주장을 펼치는
트라시마코프가 등장하여
올바름이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한다.
이유는
아마도 (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어요...소크라테스가 아니라 나라도 쉽게 반박할 것 같은 논리)
적법한 것이 올바른 것이고
적법을 판단하는 법은
강자(지배자, 통치자)가 제정하는 것이고
그 법은 강자(지배자, 통치자)의 이익을 담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결국 올바름이란 강자의 이익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뭐랄까....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그래도 이 견해는 올바름의 문제에 대해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양진영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적법성 말고 올바름을 정하는 다른 기준이란 없다는 관점을 보여주는 것.
즉 트라시마코프의 견해는 철저한 현실권력중심주의 실정법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도 실수를 할 수 있는 존재라면
자신의 이익이 아닌 법을 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그 법을 따르는 것이 올바른가? 따르지 않는 것이 올바른가?
라고 묻는다.
(그러니까 적법성과 올바름이 어긋날 수 있는 경우를 반례로 든 것이죠)
이에 대해 트라시마코프는
실수를 저지를 때는 통치자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말한 강자(결국 통치자)의 이익이란
자신의 이익의 실행하는데 실수를 하지 않는 자이다.
어떤 전문가도 실수하는 경우에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실수하지 않는 경우를 가리켜 우리는 전문가라 한다.
(이것도 이상하지만 그럴싸하지요?)
이건 이렇게 넘어가고 다음으로 제기하는 소크라테스의 반격은
의술과 키잡이의 항해술 등을 예로 들면서
기술이란 대상을 위한 것인가(몸의 치료이나 선원의 통솔)?
아니면 기술 자체의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가? 그래서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는 기술을 다시 대상으로 삼는 다른 기술이 있어서 이러한 연쇄가 계속되는 것인가?
라고 묻는다.
트라시마코프는 기술이 대상을 위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럼 의술이 몸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키잡이의 항해술이 선원들의 안전한 항해를 위한 것이듯
통치술도 그 대상인 피통치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하다보니
트라시마코프는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이익을 위해 통치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결국
강자의 이익이 아니라 약자의 이익이
올바름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답답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다시 정리하면
소크라테스가
기술이란 그 대상의 최선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로
통치술이라면 그 대상인 피통치자의 최선을 위한 것이다
라는 논리로
트라시마코스에 반박한 것이다.
이에 대해 트라시마코스가 전열을 가다듬고 주장하기를
양를 치는 기술를 예를 들어
양을 살찌우는 기술은
결국 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목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래니 통치술도 결국 통치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라는 논리의 답변을 합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기술의 목적(대상의 최선상태를 위하는 것)과 기술로 인한 이득을 분리하는 논리를 취합니다.
이름하야 "이득획득술"
각각의 기술은 그 고유의 대상이 있고
그로 인한 이득은 이득획득술이라는 별개의 것이라고 합니다.
이득획득술이 다른 고유의 기술에 공통으로 붙어있는 것이지요.
좋은 기술과 이득획득슬이 같이 가면 좋겠지만
때로운 무상으로 얻을 수 있는 좋은 기술이 있기도 하도
기술도 없으면서 이득획득술만 좋은 경우도 있는 것도 같고
...이런 등등을 생각해보면 이도 그러듯한 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통치술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통치술 자체는 피통치자를 위한 것이고
이와 결부된 이득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또 기억해둘만한 말을 하는데
통치자의 통치의 대가로는
돈, 명예등이 있지만
훌륭한 통치자는
돈과 명예를 대가로 바라지 않는다.
그럼 그들의 대가는 무엇이냐
벌를 피하는 것이다.
무슨 벌이냐면
자기보다 훌륭하지 못한 자들로부터
통치당하는 벌을 피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섞인 것 같은 느낌인데)
이에 대해 트라시마코스는
기술은 이득을 얻는 것과 분리될 수 없고
자신의 이득을 최대화하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라는 것...
결국 뭐니뭐니해도 머니다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통치에 있어서는 일관되게 주장하다가 의술이나 다른 기술에서
트라시마코스 자신도 일관성을 잃고 헤메다가 소크라테스에게 말리기는 했지만)
더나아가 문답을 통해 트라시마코스는
올바른 사람은 순진한 바보/몽상가라는 식으로 말하고
올바르지 않은 사람은 훌륭한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올바르지 않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주장에서
나아가 올바르지 못한 것이 훌륭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 이 논의가 좀 복잡한데 정리하면 일단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은
사실 올바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권력이 바로 올바름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올바른 사람이란 현실권력이 정한 법을 준수하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은 결국 남(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할 뿐 자신은 손해를 본다
반면 올바르지 못한 사람 다시 말해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야말로 오히려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사람이다.
나아가 가장 큰 불법(쿠테타같은, 나라를 훔치는 사람)은
전혀 비난받지도 않으며 (왜냐하면 자신이 새로운 올바름의 기준을 세울 것이니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람이다.
이런 요지의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뭐...맞는 말 같기도 하고...)
이에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올바르지 못함의 속성과
훌륭함/훌륭하지 못함의 속성을 비교하면서
결국 올바름과 훌륭함이 속성상 닮아있고
올바르지 못함과 훌륭하지 못함이 속성과 닮아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그 과정은 대충 정리하면
올바른 이는 다른 올바른 이를 이기려고 하지 않지만 올바르지 못한 이는 이기려고 할 것이다.
(책에서는 능가한다는 표현으로 되어있음)
올바르지 못한 이는 올바른 이를 이기하려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올바르지 않는 이도 이기려고 할 것이다.
이는 그대로 훌륭함과 훌륭하지 못함에도 적용되는 것이고
자기와 같은 상태의 것을 이기려고 하지 않고 자기와 다른 상태의 것을 이기려고 한다는 점에서 올바름과 훌룽함은 닮았고
자기와 다른 상태를 이기려고 하는 것은 물론 자기와 같은 상태도 이기려고 한다는 점에서 올바르지 않음과 훌륭하지 않음이 닮았다.
그래서 여기서 할 수없이 트라시마코스도 올바름과 훌륭함이, 올바르지 않음과 훌륭하지 않음이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트라시마코스가 소크라테스문답을 따라가다보니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론에 도달하곤 했습니다.
특히 올바르지 않는 것이 훌륭하다(지혜롭다)는 자신의 주장을
올바른 것이 훌륭하다(지혜롭다)라는 결론으로 바뀌어버린 이후에는 좋을대로 하시라는 식으로 논쟁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이번에 검토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강한가? 올바르지 않는 것이 강한가? 에 대해서는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악한 일을 도모하는 무리라도
그 무리 안에 올바름이 없다면 도모하는 일에 성취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를 펴면서
올바름이 일을 성취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한 개인에게도 적용되어
개인에게 올바른 측면과 올바르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
올바르지 못한 점은 그 개인을 분열시키고 그 능력을 떨어뜨리는 반면
올바른 측면은 능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즉 올바름이 훌륭하고 강하다는 것이지요.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올바름이란 강자의 편익이라는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은 사실 올바름이란 기준은 결국 실정법 밖에 없는 것이고 실정법이란 법을 제정하는 자의 편익에 봉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은 힘의 논리 외에 올바름의 기준은 없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법을 지키는 사람은 올바르다는 평가를 받을지는 몰라도 남만 좋은 일을 시키는 바보라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즉 올바름은 순진한 무능이고 올바르지 못함은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처사라는 식으로 주장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통치자가 따라야 하는 올바름의 기준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에 충실한 통치자와 충실하지 못한 통치자가 있겠으나 그러한 기준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폅니다. 이러한 주장을 위해 의술 등을 예를 들어 기술의 대상이 무엇인가를 검토합니다. 올바름의 기준이 없다는 주장과 그것을 잘 지켜지는가와 잘 지켜지지 않는가를 검토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올바르지 않음이 더 훌륭한가 하는 점을 검토하고 더 지혜롭고 강한 것인가도 검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 이제까지 올바름에 대한 그릇된 주장만을 검토했을 뿐 스스로 올바름에 대한 기준을 표명하지 않았음을 고백하는 식으로 끝이 납니다.
그럼 2권을 기대하며....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