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러미스의 '대항발전'
2010.12.10 12:13
더글러스 러미스라는 분을 어떻게 간단히 소개해야 할 지 잘 모르겠는데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두 책 모두 녹색평론사 출판) 등
민주주의, 평화, 경제 등에 대한 책을 쓰신 분입니다. 물론 활동도 다양하게 하시는 것 같고.
뒤의 책은 쓰지 신이치라는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와 한 대담집입니다.
몇 년 전에 [경제성장이...]를 읽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물론 기억을 못하구요,
이번 연평도 일 때문에 [에콜로지와...]라는 책이 손에 들어오더군요. 그냥 집에 있어서...
하여튼, 좀 뒤적여보다가 [경제성장이...]를 읽은 기억도 나고, 특히 '대항발전'(counter-development)라는
개념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지난 달에 녹색문명공부모임 내용도 그런 것이었고, 녹색문명이라는 것의 구체적인
내용도 결국은 '대항발전'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제성장이...]의 100페이지에 보면 대항발전이 무엇인지 설명이 있는데 여기 옮겨볼께요.
"'대항발전'이란 말에서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의 '발전'의 의미, 곧 경제성장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발전해야 하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거꾸로 인간사회 속에서 경제라는 요소를 조금씩
줄여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대항발전의 첫째 목표는 곧 '줄이는 발전'입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자는 것입니다. 각자가 경제활동에
쓰고 있는 시간을 줄이자는 것입니다. 가격이 붙은 것을 줄이는 겁니다.
대항발전의 두번째 목표는 경제 이외의 것을 발전시키자는 겁니다. 경제 이외의 가치, 경제활동 이외의 인간활동,
시장 이외의 모든 즐거움, 행동, 문화, 그런 것을 발전시킨다는 뜻입니다. 경제용어로 바꿔 말하면 교환가치가 높은
것을 줄이고 사용가치가 높은 것을 늘리는 과정입니다.
'발전'이나 '성장'이란 말에는 나쁜 역사가 들어있기 때문에 이 말은 쓰지 않는 쪽이 좋다는 생각도 설득력이 있지만,
사회를 한꺼번에 바꾸려는 게 아니라 조금씩 바꾸어 가자는 뜻이므로 거기에 걸맞는 말이 필요합니다."
더 자세한 얘기가 계속 이어 나오는데, 궁금하신 분은 책을 '사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녹색평론사에서 번역되어
나오는 책은 읽기가 참 좋거든요. ^^
하여튼, 새삼스럽게 이 분의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연평도 일과 장하준교수의 [...23가지] 때문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베스트셀러를 저도 사고 있는데, [...23가지]가 읽기에 어떨지 아직 모르겠지만,
[경제성장이...]도 강추합니다. 이 책을 읽을 독자로 저자가 상상하는 사람들이 머리말에 서술돼 있는데 .
우리 자신도 포함이 되는지 몇 항목에나 걸치는지 생각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또 옮겼습니다. ^^;
- 과로에 지쳐 있는, 혹은 노동현장의 부자유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샐러리맨이나 사무직 여성을 포함하여) 노동자.
- 자신의 밭이 공장화되는 것에 혐오감을 갖고 있는 농민.
- '경제'(구체적으로, 앞으로의 취직)라는 요소가 자신의 교육의 자유에 장애물이 되어 있다고 느끼는 학생.
- 광고산업이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느끼고 있는 소비자(특히 주부).
- 전쟁체험을 기억하고, 지금의 일본정부가 재군비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데 대해 충격을 받고 있는 노인.(참고로 더글러스
러미스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 전쟁을 체험한 바는 없지만, 앞으로도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젊은이.
- 남북문제는 '남'의 문제라기보다, 어느 쪽인가 하면, '북'의 문제라고 느끼고 있는 사람.
- 세계의 자연계가 사멸을 계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에 염려하고 슬퍼하는 사람.
- 왠지 모르게 위기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막연하고, 분명히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저자는 이 책의 제목으로 처음에는 [21세기의 커먼센스를 위해서]를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경제에 대한 우리의 상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는 머리말 끝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통의식을 갖게 될 때,
그 의식이 '상식'으로 변할 수 있을까."
* 여담 하나...
이마트피자에 이어 롯데마트치킨을 보면서, 모모동 모모모치킨을 떠올렸습니다. 그 집은 체인은 아니지만,
쓰는 닭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면 또 기분이 울적해집니다. 누구처럼 소음인인 저는 닭튀김때문에 채식을 포기한 일인인데,
모모동 모모모치킨은 채식따윈 생각도 못하게 만들지요. -,-;; 근데 워낙 비싸기도 하고, 대량사육되었을 닭을 '잡아먹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닭이 대량사육되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해서, 그래! 집에서 튀겨먹어보자!하고선 튀김가루까지 샀습니다.
하지만... 그 튀김가루 봉지는 아직 뜯겨지지도 않은채 부엌에 쳐박혀 있고, 튀김가루를 산 이후에도 모모동 모모모치킨을 여러번
잡아먹었습니다. 요점이 뭐여.. =,=;;
갑자기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교수가 주제별로 펼쳤던 논쟁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아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롯데마트치킨을 두고 매우 극명하게 반대의견을 보이는 두 사람의 토론을 들으면서 제가 한 생각은,
첫째, 의견이라고 다 받아주고 토론시키나하는 생각, 둘째, 롯데마트가 잘못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자신의 주장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
것인지 논리가 부실하고, 찬성하는 측도 역시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인 자유시장 논리를 눈하나 깜짝 안하고 펼치더라는 것입니다.
과장해서 전국민이 [...23가지]를 사(읽)는 세상에 말이지요. 그야말로 비상식적이라는 거죠.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너무나
당연하게 옳다고 혹은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에야말로 더 정교한 논리가 필요하고 그래야만 정의로운 상식이 지켜질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 샌델교수의 [정의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다 못 읽었지요, 물론...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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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2010.12.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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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2.17 10:34
저도 최근에 러미스의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눈사람님의 포스팅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는데, 지난 번에 이 책 소개하셨을 때 왜 바로 읽지 못했나 후회가 되었습니다.
지난 번 녹색당 하승수 변호사님 강연에서 '성장'과 '토건'이 아닌 거기에 대항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FTA든 사대강 토건공사든 MB에게 사람들이 표를 준 것이든 글로벌 슬럼프의 문제이든 결국 성장주의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하는데, 그렇다면 소위 '발전'은 없는 편이 좋은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얘기하고 "석유 없는 삶"이 가능함을 말해도 결국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도록 훈련받고 세뇌되어 왔기 때문이죠. 더글라스 러미스는 미국 출신이지만 일본에서 살면서 이 경제성장주의에 대해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책을 낸 것이더군요. 원문도 일본어이구요. 대항발전이라는 개념은 더 깊이 파 볼만한 흥미로운 주장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언제든 이 책을 함께 읽고 진중하게 토론을 해 보면 참 좋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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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댓글엔 다시 뒷북댓글로.. ^^;; 이 분의 책은 읽을 때는 확 오는데 지나고 나면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책 전체가 하나의 줄기라고나할까 그런 걸로 쭉 연결돼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 책은 발제하기도 어렵다는. 책이 얇고 어렵지 않아서 읽기에는 부담스럽지 않으니, 이 책으로 뭔가 해본다면 자연자연님 말씀대로 모두 함께 읽고 토론거리를 하나씩 가져와서 전체 토론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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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2.27 13:46
ㅋ 하긴 뒷북... 맞습니다. ^^ 제목이 아주 맘에 와 닿았습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경제성장이라는 이상한 목표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의심을 하지 않는 요즘 시대에, 정작 중요한 것은 하승수 변호사님과 녹색당이 말하는 "성장 담론"에 대한 적극적인 대항일 것입니다.
더글러스 러미스의 책 함께 읽고 얘기해 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혹 4월이라도?하지만, 누군가 발제는 짧더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 -
현재 계획으로는 4월은 시인처럼이 하기로 돼있어요. 전에 잡아놓은 1년 모임 계획을 3월 모임 때 같이 보면서 여러모로 조정을 해보도록 할까요? 거의 빈 달이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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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2.28 09:22
아, 저의 실수입니다! "4월이라도?"의 의미는 "가까운 시일 안에?" 또는 "주 발표에 살짝 끼어서 보조 주제로"라는 의미였습니다. 4월에 시인처럼님의 소중한 발표가 있는데, 그 대신 다소 뜬금없이 더글라스 더미스의 책을 함께 읽자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번 하승수 변호사님의 녹색당 창립과 관련된 강연을 듣고 난 뒤였거든요. 그래서 기왕 관심이 모이는 김에...라는 의미였는데, 의도와 달리 이미 정해진 4월 발표에 엉뚱하게 끼어들려 한 셈이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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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일정에 대해서 한번 같이 얘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잊어버렸을 수도 있고 일정이나 관심이 바뀌어서 발표 시기나 주제를 조정해야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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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2.28 11:40
오늘 중에는 다음 주 토요일 모임에 대해 공지를 올리려고 했는데, 질베르 시몽동... 생각보다 상당히 어렵네요. 멈포드와 위너...까지 속을 썩이고 있답니다. ^_^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는데요, 간디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한자 적슴다.
간디의 독립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비협조'라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자치와 같은 맥락인데,
영국의 제국주의에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의 힘이 발휘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당시 인도에는 마을이 70만개 쯤 있었는데, 영국인이 70만명이 넘어와도 마을 하나에 영국인 한 사람
밖에 있을 수 없다는 계산을 내놓았다고 하네요. 만들어쓰고 우리끼리 도와주고 우리가 만들어 먹고 하는
자치를 하면서 영국에 협조하지 않으면 자연히 영국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요. 통치라는 것은 그 힘을
인정해주는 민중이 없으면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
러미스의 개념 중에 '대항발전'이라는 것이 있다고 얘기했었는데, 이게 자치나 비협조가 한 단계 더
구체적으로 내려가는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마트피자나 통큰치킨에 비협조하고 대항발전을 한다고 치면, 일단 안 사먹음으로써 비협조할 수 있겠죠.
중요한 것은 내가 왜 비협조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동의, 비협조할 수 있는 경제적인 힘, 자존심도 필요할 듯.
확실히 요즘같이 험악한 세상에서는 비협조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고, 적극적인 대항발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러미스와 조지 오웰의 공통점이 하나 있네요. 러미스는 일본에 해병으로 갔었고, 조지 오웰은
인도에 제국경찰로 갔었답니다. 두 사람 다 지배층이었고, 식민지에 주둔하면서 깨달은 바가 많았었나 봅니다.
우리나라에 경찰이나 정부 관료로 살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지에 대해 회의하고 비판한 일본 사람은 없었을까
궁금하네요.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직 제 귀에 들어오지 않은 걸 보면 별로 없거나 제가 게을러서 몰랐거나
일본 혹은 우리나라가 의도적으로 그런 사람을 드러나지 않게 애를 쓴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네요.
혹시 아시는 분, 알려 주시면 고맙겠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