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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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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 지 꽤 지났지만 지금 다시 보아도 여러 모로 흥미로운 책이 있어 소개를 드립니다. (요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몇 년 전에 그러게요님이 이 책에 대해 얘기해 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여튼 최근에 이 책에 관심이 꽂혀 열심히 읽으려 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시미즈 히로시라는 분은 원래 약학 전공인데, 1970년에 규수 대학 이학부에서 생물학과 물리학을 연결할 목적으로 신설된 학과의 교수가 되었습니다(74쪽). 연구를 통해 생명관계학이라는 것을 제안했고, 가네자와 공업대학에 "장 연구소"를 만들어 활발하게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자에 따르면 "장소론에 대한 논의를 더욱 넓혀 생물의 신체에 머무는 국재적 생명과 생명 상호 간의 관계 및 그들이 속한 공간 자체가 갖는 편재적 생명의 이중성을 주장하고, 후자를 '순수 생명'이라고 하여 양자의 조화로운 합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424쪽). 아마 시미즈 히로시가 말하는 '국재적 생명'과 '편재적 생명'의 개념쌍이 '낱생명'과 '온생명'의 개념쌍과 연관될 수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대학분쟁이 심하던 1960년대 말부터 자기조직 현상의 물리학을 통한 생명 현상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합니다(38쪽). 생물적 자율성의 문제와 '자기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래서 1980년대 초부터 동료들과 바이오홀로닉스(bioholonics)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생명을 '관계자holon'라는 요소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제안합니다. 일본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도 많고 했던 모양인데,  특히 생명의 이해에서 '정보'가 매우 중요하다는 시미즈의 주장이 공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시미즈는 "생명관계학 연구의 특징 중 하나는 정보를 보는 시선을 관찰자 측에서 그 대상인 생명시스템 측으로 옮기는 것에 있다"고 말하면서, 관계자들에게는 정보의 흐름이 의미를 창출하고 자기라는 개념을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그 맥락에서 시미즈는 '장소'場所와 '장'場이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예부터 '기'氣라고 불러온 것이 장의 정보와 관계가 있는 개념일 것"(107쪽)이라고 말합니다. 


이전에 제가 보생명을 야콥 폰 윅스퀼의 '둘레세계'라는 개념과 통하는 것이라고 발표한 적이 있는데, 시미즈의 '장소'도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상세하게 살펴볼만한 책임에 틀림없습니다.


  • 저자: 시미즈 히로시 (淸水 博)
  • 제목: 생명과 장소: 창조하는 생명의 원리 (Daum 책 링크)
  • 원제: 生命と場所―創造する生命の原理  (일본 아마존 링크) (출판사 링크)
  • 출판년도: 한국어 번역판 2010년 (원서 1999년, 2003년 재간행)
  • 출판사: 그린비



    철학아카데미 소운서원 생명과학연구실


    목 차


    역자 머리말

    머리말


    1장 생명의 논리를 살피다


    1. 생명을 어떻게 기술해 갈 것인가

    2. 자기조직과 정합성

    3. 생명관계의 과제


    2장 생명시스템의 복잡성


    1. 관계자, 복잡한 장소와 장, 정보창출의 기본 구조

    2. 의미세계의 논리란 무엇인가

    3. 생명관계학이 설정하는 제문제


    3장 생명의 자기창출 과정을 해명한다


    1. 의미적 자율시스템으로서의 생명

    2. 의미창출 과정을 구성하다

    3. 해석 과정의 역동성과 의미의 창출


    4장 장소적 관계의 제창


    1. 생명관계학의 구축법을 찾아서

    2. 대뇌(大腦), 그 극대컴퓨터로서의 작동

    3. 관게적 창출의 과학기술에 있어 장소적 논리


    보론: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구판의 맺음말

    신판의 맺음말

    역자 후기


     

    출판사 서평


    현대 과학과 동양 철학을 아우르는 통섭 과학의 고전 

    ―‘장소’와 ‘관계자’ 개념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생명이론 


    이 책 『생명과 장소』는 생명을 세포나 시스템과 같은 고정된 틀을 통해 파악하는 기존의 과학적 서술 방식에서 탈피하여, 움직이고 변화하는 생명 자체를 서술하는 생명관계학을 처음으로 주장한 책이다. ‘생명관계학’이라는 용어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생명관계학은 한국 사회에서도 새로운 지식의 모델로 여겨지고 있는 통섭 과학과 네트워크 이론의 연원이 되는 학문이다. 특히 개체가 아니라 관계를, 코스모스가 아니라 카오스를 생명 현상의 기본 모델로 채택하여, 생명 요소들이 관계 맺는 장소(場所) 속에서 생명을 파악하는 새로운 학문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네트워크적 관점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는 담론들은 넘쳐 났으며, 통섭 과학의 필요성을 주장한 책들도 쉼 없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통섭 과학의 이념이나 네트워크 이론을 견고한 철학적 토대 위에서 실증적으로 탐구한 사례는 접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점에서 『생명과 장소』는 이제껏 풍문으로만 들려 왔던 네트워크 이론의 통찰이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비전을 보여 주는지를 통섭의 차원에서 명료하게 제시한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저자 시미즈 히로시(淸水博)는 생명관계학 분야에서 복잡계 연구에 기반한 생물의 운동 원리 해명 등 다채로운 연구를 해온 일본의 석학이다. 현재 이 분야에 대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 무(), 유(), 선() 같은 동아시아의 철학 개념을 끌어들여 주목받고 있다. 이 책에서도 화엄 철학,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의 사상 등 동아시아 전통을 생명관계학에 접목시켜 논의를 전개하며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통섭의 전범을 보여 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특징은 기존의 사유 체계를 훌쩍 넘어서는 ‘생명’ 개념에 있다. 저자는 생명을 서로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 있는 ‘관계자’들의 구성물로 보고, 관계자들의 네트워크 구조가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과정 자체가 생명이라고 정의한다. 사람과 같은 생물학적 개체로부터, 생태계와 국가, 사회에 이르는 모든 네트워크들의 ‘삶’이 고유한 생명시스템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생명시스템이 그 자체로 자율성을 가지는 체계인 동시에, 관계자로서 유연한 관계를 맺고 ‘더 큰 생명시스템’을 형성하여 그 속에서 상호 생존해 간다는 통찰이다. 우주가 그 안에 뭇 생명을 아우르는 하나의 생명시스템으로서 포착되는 것이다. 이렇게 기존 생명관에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이론을 담은 이 책은 과학이 철학을 만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모범이 될 것이며, 독자들은 ‘관계자’와 ‘장소’ 개념이 전하는 존재론적 통찰 속에서 생명과학의 합리성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을 바라보는 새로운 프레임, 생명관계학 


    “관계 생성과 소멸에 의해 그 네트워크 구조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면서, 관계자가 그 관계에 따라 자기표현 상태를 자율적으로 만들어 감으로써 네트워크 전체의 표현 상태가 변한다.”(본문 30쪽)



    생명관계학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시작부터 근대 과학의 이분법적인 태도를 폐기하고, 동아시아 논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핵심 개념을 장소와 관계자로 보고, 생성의 시작점을 카오스로 규정하는 것은 이 책의 사상이 갖는 특이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니시다 기타로의 철학에서 차용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장소’ 개념은 단순히 생명체를 둘러싼 외부 환경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장소’는 외부 환경뿐만 아니라, 환경을 둘러싼 분위기나 흐름까지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장소라는 말은 독자들에게 물리학에서 말하는 전기장이나 자기장 같은 장 이론을 떠올리도록 할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장소는 적극적으로 규정하고 설명할 수 없는,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기() 개념과 가깝다고 말한다.


    이런 독특한 장소 개념은 ‘관계자’들의 정보 범위를 비언어적인 것까지 확장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과학의 범위로 생각하지 않았던 분위기나 감정까지도 관계자들이 전달하는 정보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장소 개념을 통한 정보 범위의 확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질서의 정도가 커진다는 엔트로피(entropy)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무한한 환경에 놓인 생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에게 적합한 정보를 네트워크로 엮어 나가면서 질서도를 높여 간다고 말한다.


    이처럼 생명관계학에서 생명은 관계의 확장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고, 그 네트워크들은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며 관계자들의 변화를, 또한 그에 따른 네트워크의 변화도 이끌어 낸다. 변화야말로 살아 있음이라고 규정하는 이 책은 생명 현상의 과정에서만 생명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존의 정태적 존재 개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성하는 존재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의 생명관계학은 생명을 바라보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한다.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생명의 ‘관계’, 그리고 ‘장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구상에는 여러 종류의, 또 여러 공간적?시간적 폭을 가진 생명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한 종류나 폭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과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들 시스템에는 ‘살아 있다’라는 공통의 보편적인 성질이 있다.”(본문 93쪽)



    생명관계학의 관점에서 생명은 과연 어떤 것일까? 저자는 모든 생명은 무한정한 상태에 놓인다고 말한다. 전체 환경을 놓고 본다면, 인간이나 동식물 모두 같은 환경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정보는 각각 다르게 다가온다. 일상적인 날씨도 생물들에게 다른 정보로 다가온다. 일조량의 변화는 식물에겐 광합성 조건, 인간들에겐 수확량 변화로 다가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자신에게 적합한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 생명 요소들은 각자의 구속조건을 생성한다. 적절한 구속조건을 생성할 때만 생명은 무한정한 환경을 자기 맥락에 맞는 한정적인 정보로 창출해 낼 수 있다.


    이렇게 자신에게 적합한 정보를 창출해 내는 생명 요소들은 이 책에서 단순한 행위자가 아니라 ‘관계자’로 설정된다. ‘관계자’ 개념은 생명시스템을 언제나 가변적인 것으로 변환시킨다. 어떤 외적 조건에 놓였는지, 그 외부 환경에서 어떤 정보가 흐르고 있고, 관계자들의 내적 상태는 어떤지에 따라 생명시스템은 변화한다. 이 책은 관계자 개념을 통해 생명시스템 자체가 관계적이고 구성적인 것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개념들은 또한 관계자 층위의 다양성을 보여 준다. 세포와 인체의 시스템 범위가 다른 것처럼 생명시스템도 다양한 하위 시스템들과 연결되어 있다. 하위 시스템들은 상위 시스템에 대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네트워크 구조를 형성하는 관계자로 기능하기도 하고, 시스템들의 네트워크인 상위 시스템을 형성하기도 한다. 마치 배우(actor)가 천의 얼굴을 갖고 다양한 연극에 맞춰 연기를 하듯이, 관계자들은 장소를 고려하여 정보를 형성하고, 다시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해 간다.


    생명의 특징을 ‘살아 있음’이라고 규정하는 저자는 생명의 범위까지도 넓힌다. 끊임없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면서 존재를 구축해 가는 생명 현상은 비단 인간과 동식물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현상은 국가, 사회, 기업 같은 인위적인 제도에서도 볼 수 있다. 국가나 사회, 기업들은 자신의 맥락에 맞게 세부 구조를 창출해 나간다. 국가는 연령, 성별, 직업 군, 국제 정세 같은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여 사회 제도를 창출할 것이고, 기업도 경제 흐름에 맞춰 사업 계획을 설정하거나 변경할 것이다. 그에 속한 인간들도 세부 구조에 맞춰 스스로 위치를 만들어 간다. 이러한 인간들의 상태 변화는 다시 국가나 기업에 영향을 미친다. 끊임없는 피드백 과정에서 어느 하나도 고정된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요소들은 저자가 말한 것처럼 자신이 속한 환경의 분위기와 정보를 전달하는 관계자들이며, 외적 환경과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피드백 고리로 만들어지는 정보의 순환과 그 정보를 전달하는 관계자 개념은 이런 맥락에서 빛을 발한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카오스 


    “지구상의 생명시스템은 일종의 카오스적 상태에 있다.”(본문 245쪽)



    이 책을 기존의 생명과학 책들과 가장 명확하게 구별시켜 주는 것은 카오스(chaos)를 다루는 태도이다. 한국 사회에서 카오스는 혼돈, 불규칙한 불확정성, 질서·섭리(cosmos)의 반대말로 사용되어 왔고 질서를 위해 사라져야 할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생명은 카오스 없이는 존속될 수 없다. 생명 요소인 관계자들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기만 하는 종속적인 존재들은 아니다. 이들은 외부 환경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내적 상태 사이에 피드백을 주고받는데, 그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카오스다.


    카오스는 예측할 수 없는 절대 혼돈이 아니라, 생명 요소인 관계자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력이자, 만물이 생성되는 절대 무()의 장소이다. 이 책에 따르면 생명들이 시간적 혹은 공간적 변화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달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카오스 덕분이다. 질서를 고형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상태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우리가 느끼고, 움직이는 것부터, 역사의 변화나 체제 변동까지 모두 카오스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런 변화들은 하나의 질서나 상태로 고형화된 시스템 속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예를 들어 유행의 흐름에 속해 있는 인간들은 외부가 전달하는 유행이라는 정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유행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은 아니며, 유행을 지속시키고 있는 인간들의 심리적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이행, 그리고 그 상태들이 외부와 내적 상태까지 변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카오스다.


    또한 이 책에서는 기존의 과학 서적에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한 방식으로 생명의 노화를 규정한다. 노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과론적인 것이 아니라, 카오스가 생성할 수 없는 상태 자체이다. 카오스가 없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생명 요소나 시스템은 자멸한다. 관계자가 더 이상 관계자로 기능하지 못하고, 외부와 내부 상태의 정보가 순환하는 장소의 의미가 사라질 때, 생명은 한 가지 패턴밖에 생성하지 못하여 고립되고 죽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현대 생명과학에서 통용되는 기계론적 생명관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카오스와 생명의 관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과학과 철학의 새로운 만남 


    복잡계 현상의 연구 및 자기조직 현상의 발견에서 비롯된 생물학 분야의 급격한 발전은 생물학의 지위를 변화시켰다.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발견되기 이전에 생물학은 은연중에 과학철학자들 내부에서도 과학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누리지 못했다. 생명 현상에서 관찰되는 사례들은 물리학의 사례와는 달리 일반적인 법칙에 따르는 운동이나 생성 법칙을 파악하기 힘들었고, 이론의 설명과 예측은 더더욱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수리적 모델을 통해 계산이 가능한 천체물리학이나 양자역학과 달리 생물학은 움직이는 생물이 갖는 무한정성을 제어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생물을 고정된 상태 모델에 끼워 넣고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에서 관찰되는 산일 구조(dissipative structure)나 비슷한 시기에 발전한 복잡계 이론(complexity theory) 등에 힘입어 새롭게 수학적으로 계산 가능한 모델이 등장하면서 생물학적 현상에 대해 회의적인 눈초리를 보내던 사람들도 생물학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생명 현상이 물리학적 현상과는 독립적인 다른 원리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인정되었고, 기존 과학철학과는 또 다른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서 생물학의 철학(philosophy of biology)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현재 과학의 최전선에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이론이나 인지과학은 인간의 신체나 뇌와 정신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며 기존의 인문학의 전형처럼 여겨졌던 현상학이나 불교의 존재론까지 활발하게 접목시키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을 이러한 담론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이라 할 만한 동아시아 철학과의 연결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는 고유한 사상적 전통을 지니고 있고 철학사적으로도 수준 높은 사유를 펼쳐 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서구 학문의 수입으로 인해 동아시아 고유의 사상은 현대 철학이 요구하는 방법론이나 인식론적 증명 기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전체적으로 훈고학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서구 사상과 접목한다 하더라도 그 무게중심을 항상 서구 철학 쪽에 실어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엄 철학이나 니시다 기타로의 이론을 끌어와 자신의 과학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 이 책의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통섭 과학의 예로서 동아시아 사상 연구는 물론이고, 문과와 이과 사이의 교류도 어려운 한국 지성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이 책은 일본에서 1999년에 출간된 개정증보판을 번역하여 펴낸 것입니다. 1992년에 출간된 초판은 전파과학사(2000)에서 같은『생명과 장소』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바 있습니다.(본문 8~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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