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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위너와 통계역학 (글 수정했음)

2009.05.02 10:55

自然 조회 수:8601

지난 시간에는 제 준비가 충실하지 못한 상태에서 모임이 시작되었는데, 그나마 프로젝터마저 말썽이어서 고생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칠판을 썼더라면 하는 생각이... 하여튼 기심이라고나 할까요. 

지난 모임에서는 주로 통계역학 이야기를 했습니다. 통계역학이라는 것이 확률통계의 방법을 물리학에 원용하는 아주 특이한 분야인데, 이것이 사이버네틱스와 연결되리라고는 흔히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원래 통계역학은 역사적으로 기체의 열역학적 성질(그러니까 부피, 압력, 온도 같은 것)을 더 미시적인 수준에서 설명하려던 것이었죠. 다시 말해서 기체가 알고 보면 모두 아주아주 작은 입자들(흔히 분자molecules라고 합니다만)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하고, 거시적인 수준에서 드러나는 기체의 성질이 사실상 그 입자들이 서로 충돌하고 에너지를 주고받고 하면서 우리의 관측망 안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 아주아주 작은 입자들이 무지무지 많기 때문에 결국 확률통계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넓게 보자면 미시적인 것들에 대해 확률통계적 방법을 적용하여 거시적인 주장들을 끌어내는 것은 거의 모든 대상에 대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이버네틱스가 통계역학을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현명한 일이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2장에서 위너가 주로 얘기하는 것은 소위 에르고딕 가설입니다. 요즘은 이 분야가 하나의 연구영역으로 자리를 잡아서 아예 '에르고딕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에르고딕ergodic이란 말을 처음 만든 것은 루트비히 볼츠만이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확률통계의 방법을 기쳬분자들의 모임에 적용해도 된다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에서 이런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약간의 전문용어를 동원해서 말하자면, 에르고딕 가설은 시간평균과 공간평균이 같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공간평균은 사실 위상평균을 가리킵니다.

위너가 2장에서 거론하는 두 거인 중 한 명이 윌러드 깁스(Josiah Willard Gibbs)인데, 깁스는 위상평균과 달리 앙상블평균이란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위상평균과 앙상블평균은 개념적으로는 다르지만, 실제로는 언제나 같게 되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준분포나 대정준분포에서 하는 얘기와 미소정준분포에서 하는 얘기가 다르기 때문에 위상평균과 앙상블평균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앙상블의 개념 자체를 미소정준 앙상블, 정준 앙상블, 대정준 앙상블 등과 같이 유연하게 사용하면, 그런 차이도 없앨 수 있습니다. 앙상블(ensemble) 개념에 대해 더 상세한 것은 가령 위키피디어의 항목참조. 여기를 클릭)

문제는 그 위상평균=앙상블평균이 과연 시간평균과 같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제가 학부 때 이 개념을 배울 때에만 해도 확률통계를 적용하기 위해 이들을 같다고 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위너의 책을 보면서, 그리고 사실은 양자역학의 서울해석을 머리 속에 품고 있다 보니, 이게 단순한 가정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위상평균=앙상블평균은 이론적이고 개념적이고 수학적인 것이고, 소위 '상태서술' 내지 (칸트의 용어로 말하면) 지성(Verstand)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평균은 실험적이고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것이고, 소위 '사건서술' 내지 (칸트의 용어로 말하면) 감성(Sinnlichkeit)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 둘이 언제나 같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볼츠만이 이 둘이 같다고 가정한 것은 그렇게 해야만 통계역학에서 사용하는 확률통계적 방법이 정당화될 수 있을 터였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가정은 원론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수학자들의 노력으로 밝혀집니다. 위너는 이 얘기는 고스란히 빼 놓고 있습니다만, 그 뒤에 버코프(Birkhoff), 코프만(Koopman), 폰노이만(von Neumann) 등이 유사에르고딕 가설을 증명하는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결국은 실패담이 아니라 성공담을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위너가 2장에서 거론하는 두 번째 거인, 앙리 르벡(Henri Léon Lebesgue)이 등장합니다.

르벡은 수학자였고, 적분이론을 아주 세련되게 다듬은 사람입니다. 르벡 적분과 르벡 측도에 대해서는 제가 지난 시간에 별로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다음 시간에 시간이 허용되는 한도 안에서 얘기를 더 풀어볼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대체 적분이란 게 무엇인가부터 상세하게 얘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적분이 들어오는 것은 확률통계의 방법에서 '더하기'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그 적분이 상당히 힘들다는 데에서 흥미로운 얘기가 펼쳐집니다.

자, 여전히 왜 사이버네틱스 2장에서 통계역학을 얘기하고 있는지 제대로 설명을 안 했는데, 일단 여기에서 멈추고 다시 시간이 될 때 이어 보겠습니다. 내일 학술대회 논문발표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하나도 없는 형편이거든요. 늘 이렇게 사네요...^^

날씨~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