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문명공부모임 10월 모임의 공지가 좀 늦어지는 것 같아서 우선 예비공지를 올려둡니다.
- 일시: 2014년 10월 11일(토) 14:00-18:00
- 장소: 길담서원
- 내용: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를 어떻게 이해할까?
- 발표:
- 이모작: 예측적 앎의 인식적 구조 (7장)
- 시인처럼: 속도의 윤리(8장, 에너지 흐름의 교란에 대한 실천적 논의?)
이번에는 발표가 두 사람이기 때문에 공지를 어떻게 올리는 게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모작님과 시인처럼님이 협의하셔서 한 분이 올리셔도 되겠고, 두 분이 각각 공지를 올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속도의 윤리라는 말이 묘한 울림을 줍니다. 프랑스의 문화이론가 폴 비릴리오의 <속도와 정치>도 생각나고, 피에르 상소의 <느림에 관하여>도 떠오르고, "슬로시티"나 "슬로머니" 같은 말도 생각납니다. http://www.acfco.or.kr/20/06.pdf
속도에 윤리가 있을까요?
예측적 앎은 무엇일까요? 비예측적 앎이란 것도 있을 수 있을까요? 앎은 원래 예측을 위한 것 아닐까요?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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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4.09.24 19:46
예비공지 전문(?)이 된 것은 민망하지만, 아무래도 미리 이렇게 공지를 올려 두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서울을 떠나 살게 되면서 한두 달 이상의 스케줄을 미리미리 정해 두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반성도 많이 합니다. 서울에 살 때에는 그렇게 서울 밖에서 사는 사람이 서울에 가기가 어려운 줄 미처 몰랐기 때문입니다.
10월 11일이 불편할 수 있다는 말은 10월 9일 한글날 휴일이 목요일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인들 중 상당수가 10월 10일에 월차 휴가를 내서 어디든 떠나려 한다고 합니다. 이 또한 제가 매일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아니었을 때에는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예전에 정했던, 설날이라든가 추석이라든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매월 둘째 토요일 오후 2시에 모인다는 원칙은 지켜질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的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좀 있습니다. 일본어에서는 19세기 문헌을 보면 "的"이라 써 놓고 "の"라고 읽었습니다. 한국어로 한다면 단순히 "~의"라는 조사인 셈입니다. 원래 영어의 모호한 부분을 나타내는 어미 -tic의 의미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현대 일본어에서는 단정지을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하는 형용사로 的을 쓰니까 [고종석의 문장]에 나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고종석 선생이 너무 과도한 순수주의자란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영어에서도 -tic과 같은 어미가 더 많아지고, (독일어에서는 -lich라는 어미가 그런 역할을 합니다), 한국어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데, 새삼스럽게 "한국어다움"을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的이 들어가서 불확실해지거나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느낌을 받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폼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측적 앎의 인식적 구조"를 풀어 쓰면 "예측을 위한 앎은 인식이라는 전체적 틀 안에서 어떤 구조를 지니는가?" 쯤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속도의 윤리"도 그 둘을 등치시키는 게 어색하니까, "속도가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는 시대에 요청되는 윤리"나 "속도라는 것 때문에 새롭게 나타나는 윤리의 몇 가지 측면"이란 의미가 될 수 있겠습니다.
아, 어렵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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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풀어쓰니까 좋네요.
예비공지만으로도 얘깃거리가 나오는군요.
근데 풀어써도 좀 어렵네요.. ^^;
저도 뭐 고종석선생의 책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제가 워낙 한국어에 약해서 조금씩 보는 중인데
마침 그 부분을 읽다보니 한 마디 하고 싶어졌어요.
고선생께서 따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적'을 쓰면 안 된다고 한 건 아니구요.
우리말에 이미 들어와서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에 안쓰면 말이 안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우리말이 안되게 쓰이는 사례를 몇 가지 설명하고 있더라구요.
저는 그래도 우리말을 가지고 이렇게 따지고 드는 사람이 있어서 좋은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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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4.09.25 13:13
여하간 맺힌 건 풀고, 감춰져 있는 건 밝히고, 풀어쓸 수 있으면 풀어쓰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따지고 드는 것은 과학적 사유의 발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었죠.
새삼 홍대용의 담헌서에 있는 글이 생각납니다.
"큰 의심이 없는 자는 큰 깨달음이 없다. 無大疑者無大覺
의심을 품고 말을 얼버무리기보다는
자세히 묻고 분별을 구하는 것이 좋으며,
낯빛을 따라 구차스레 비위를 맞추기 보다는
차라리 말을 다하고 돌아가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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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4.10.01 10:38
공식 공지가 늦어지는 것 같긴 합니다만, 10월 11일 모임에 기대가 많이 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갈지 궁금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자연자연님은 이제 예비공지 전문. ^^;
그런데 10월 11일이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자연자연님께서 발표 주제에 대해서 묻고 계신데요.
10월 발표 주제가 모호한 이유는 '적'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제 마침 [고종석의 문장]이란 책에서 '적'에 대한 부분을 읽었거든요.
'적'은 영어 접미사 '-tic'을 일본에서 '데키(적)'라고 번역한 걸 우리가 받아들인 것이라고 하네요.
불가피한 경우도 많지만 '적'을 뺄 수 있으면 빼야 한국어다움을 잃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한국어에 안 맞게 쓰는 경우 몇 가지를 짚어주고 있고요.
"예측적 앎의 인식적 구조"는 고종석 선생의 말씀에 따르면 문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데,
'적'이 의미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의'까지 있고, 앎과 인식도 의미가 겹치지요.
말을 바꾸거나 풀어서 쓰는 게 좋겠다는... 사견이었습니다.
우리말에서는 '의'나 '적'만 들어가면 의미는 불분명해지고 왠지 폼은 나버리게 되는 묘한 일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속도의 윤리'도 마찬가지.
뭔 뜻인지 알 수가 없는데 속도에 윤리를 붙여놓으니 뭔가 있어보여버리는 거죠. (저만 그런가요? ^^;)
속도의 윤리는 시인처럼님이 발표하겠다는 주제를 제가 대충 기억해서 대충 적어놓은 것입니다. 죄송.
빨리 공지를 올리라고 압박을 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