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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입자, 끈, 우주

2013.06.30 18:13

自硏 自然 조회 수:9214

(* 이런 글이 좋은 자료인지, 그리고 이 게시판에 적합한 것인지 의심은 들지만, 관심 있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정보 차원에서 올려 놓습니다. *)



KIAS_대중강연_포스터_0605_3.jpg



어제 한국고등과학원(KIAS, Korea Institute for Advanced Study)이란 곳에서 꽤 유명한 세 명의 물리학자를 초청해서 대중강연을 했습니다. 제목은 "입자, 끈, 우주"인데, 초청연사는 데이빗 그로스, 안드레이 린데, 에드워드 위튼 이렇게 세 사람입니다.


데이빗 그로스(David Gross)는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분인데, 강한 핵력의 '전하'인 '색깔'(color)의 동역학에서 '점근 자유'라는 특이한 상황을 해명한 공로로 2004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입자'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 최근에 주목을 받은 힉스 입자의 의미와 발견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안드레이 린데(Andrei Linde)는 러시아(소련) 출신으로 1980년대에 급팽창 우주론(inflation cosmology)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우주가 왜 어디나 똑같고 어느 방향이나 똑같은지, 그리고 우주가 왜 그리 거대한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소위 급팽창 시나리오입니다. 전체적으로 급팽창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명료하게 해 주었는데, 흔히 말하는 러시아식 유머가 자주 등장하는 아주 집중되는 강연이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강연을 했습니다.


에드워드 위튼(Edward Witten)은 미국 고등과학원에 속해 있는 수리물리학자인데, 초끈 이론을 비롯하여 다섯 가지 정합적인 초끈 이론(I형, IIA형, IIB형, HE형, HO형)을 모두 통합하는 M이론이라는 것을 제안해서 학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위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천재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습니다. 물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수학의 노벨상이라 부르는 필즈 메달을 받았고, 아인슈타인이 여생을 보낸 미국 고등과학원 소속이고, 주제도 아인슈타인이 평생 추구하던 것과 비슷한 것이라서 곧잘 아인슈타인에 비견되곤 합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왜 끈 이론(string theory)이라는 게 등장했는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을 통합하는 후보로서 왜 적합한지 등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사실 좀 재미는 없었습니다. 준비한 텍스트를 40여분 동안 그냥 읽어나가는 식이어서 사실 지루하기조차 했습니다만, 그래도 명불허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이상하고 전문적인 강연에 1000명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통도 불편하고 해서 참석할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가 흔하지 않은 기회라는 생각에 무리해서 열차를 타고 고등과학원에 갔는데, 등록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나마 그 줄은 "사전등록"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가나다 순으로 여러 개의 줄이 있고, 저처럼 미리 등록하지 않은 사람은 현장등록을 따로 하고 멀리 떨어진 다른 장소에서 대형 TV를 통해 중계되는 것을 보도록 했습니다. (저는 다행히 고등과학원에 '연줄'이 있어서 어쩌다 보니 초청연사들과 주요인사를 위해 예비해 둔 맨 앞자리 아주 좋은 자리에 앉아서 편안하게 강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주제들이 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일까, 의아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사실 물리학 분야에서도 이런 종류의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주제들이라 실용성을 강조하는 분들은 아주 싫어하기도 합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신자유주의적인 세상에서 이렇게 아무런 '돈'이 되지 않는 사변적이고 비실용적인 주제들에 관심이 쏠린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결국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어떻게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물론 이 대중강연은 가령 피겨스케이팅이나 리듬체조의 갈라쇼 같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지난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국제 끈이론 학술대회가 서강대 주최로 열렸고, 거기에 참석한 학자들 중에서 세 사람을 골라 대중강연회를 만든 것이거든요. 주최측에서는 대중강연회가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특히 고등과학원이라는 낯선 글자를 많은 사람에게 각인시키는 좋은 기회였을 테니까요.


제 자신은 이 대중강연에서 꽤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새로운 논문 주제도 얻었고, 오랜만에 은사님들을 만나 인사도 드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종류의 문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혹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나중에 기회가 되는 대로 강연 내용을 소개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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