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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2월 모임은 녹스님이 대폭발(빅뱅) 우주론에 대해 발표하시기로 했는데, 저도 좀 거드는 차원에서 간단하게 대폭발 우주론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

저는 천문학자도 아니고 우주론 전공도 아니니까, 제가 잘 아는 대폭발 우주론의 표준적인 역사를 간단하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름부터 말하자면, 1949년 프레드 호일(Fred Hoyle)이 BBC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의 '정상상태이론'(Steady-State Theory)과 경쟁하던 다른 이론을 두고 농담으로 말한 Big Bang idea(큰 꽝이라는 생각)을 그 주창자인 게오르기 가모프(George Gamow, Георгий Антонович Гамов)가 받아들였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1912년 베스토 슬리퍼(Vesto Slipher)가 나선'성운'의 빛띠(스펙트럼)에서 적색이동을 관측했습니다.
빛띠라는 것은 무지개처럼 빨주노초파남보의 색이 펼쳐지고 그 속에 특정 원소에 따라 검은 흡수선들이 나오는 것인데 은하에서 오는 빛의 스펙트럼이 지구상에서 보는 것을 기준으로 빨간색(파징이 긴 쪽)으로 치우친 것을 발견한 거죠.


      dopplerspec.jpg 


1916년에 아인슈타인이 중력의 일반적인 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는데, 바로 이듬해 이 이론을 써서 우주 전체에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이 나옵니다. 유명한 얘기지만, 중력장 방정식을 우주에 적용하면 자칫 우주가 팽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챈 아인슈타인은 이를 막기 위해 중력장 방정식을 수정해 버립니다. 소위 우주 상수를 덧붙인 것이죠.


        TheFieldEquation.png


1922년 러시아의 수학자 알렉상드르 프리드만(Alexandr Friedman, 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Фри́дман)이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우주가 팽창하는 모형을 발표합니다. 1927년에는 벨기에의 물리학자/사제였던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가 프리드만의 연구를 모른 채로 마찬가지의 결과를 얻습니다. 르메트르는 이렇게 우주가 팽창할 수 있다면 과거에는 아주 작은 점에 모여 있었을 것이라는 선견지명 있는 주장도 제시했습니다.

1924년부터 에드윈 허블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나선은하들의 빛띠를 정밀하게 측정하여, 드디어 1929년에 유명한 허블의 법칙을 발표합니다. 먼 은하들은 모두 우리 은하로부터 후퇴하고 있는데,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 적색이동의 정도가 크다는 것입니다. 은하의 후퇴속도가 적색이동에 비례하기 때문에, 결국 은하의 후퇴속도가 우리 은하로부터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법칙이 등장합니다. 


         H_K_redshift.jpg


이 관측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1930년대 이후로 치열한 논쟁이 붙은 것입니다. 
1948년 프레드 호일, 토머스 골드(Thomas Gold), 헤르만 본디(Hermann Bondi) 등은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은하들이 만들어진다는 소위 '정상상태' 이론을 제안합니다.

같은 해에 러시아 출신의 게오르기 가모프랠프 앨퍼(Ralph Alpher)와 로버트 허만(Robert Herman)과 함께 르메트르의 이론을 토대로 우주공간이 팽창한다는 이론을 발표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가모프가 말장난을 좋아해서, 논문에 참여하지 않은 한스 베테(Hans Bethe)를 저자 이름에 넣어 Alpher-Bethe-Gamow의 논문을 만든 뒤, 자기 이론을 알파-베타-감마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겁니다. 이 이론은 단순히 이론적으로 르메트르의 수학적 전개와 사변적 주장을 반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열팽창하면 온도가 내려간다는 열역학 법칙을 토대로, 만일 우주공간이 전체적으로 팽창한다면, 우주의 어느 방향에서나 똑같이 배경처럼 깔려 있는 빛의 복사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것입니다. 당시까지 알려진 수치를 이용하여 그 배경복사가 5 켈빈(즉 영하 268도 섭씨)보다 낮은 온도의 흑체복사에 대응한다는 예측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류 천문학에서는 가모프의 이론이 거의 무시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가 1964년에 미국의 전파천문학자 아노 펜지아스(Arno Penzias)와 윌슨(Robert Wilson)이 다소 우연히 이 배경복사를 발견함으로써 노벨상까지 타게 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주배경복사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1989년에 발사된 COBE (Cosmic Background Explorer) 위성이 10여분이 채 되지 않아 정확히 우주배경복사가 2.72548 ± 0.00057 K의 흑체복사와 10만분의 1 오차 안에서 일치함을 보여주었는데, 저 자신도 그 보도를 보면서 무척 신기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cobe.gif

 (그림 출처: http://lambda.gsfc.nasa.gov/product/cobe/c_edresources.cfm )


대폭발 우주론은 그 뒤로도 무궁무진하게 발전했습니다. 급팽창우주론(inflationary cosmology),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가속팽창 등이 대표적인 키워드인데, 요즘 나오는 우주론은 따라가기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2005년에 Scientific American 잡지에 실린 대폭발 우주론에 대한 오해(Misconceptions about the Big Bang)가 흥미롭습니다.
논문을 첨부하고,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해서 덧붙입니다.
 
(1) 대폭발(Big Bang)은 어떤 종류의 폭발인가요?

틀린 답: 대폭발은 마치 폭탄이 터지듯 허공에서 무엇인가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맞는 답: '대폭발'이라는 이름과 달리, 폭발 같은 것은 없습니다. 공간이 한없이 팽창하고 있을 뿐입니다.
에드윈 허블은 멀리 있는 은하들이 우리 은하로부터 후퇴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멀리 있는 은하에서
오는 빛이 전반적으로 빨간색(파장이 긴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은하가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퇴 속도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빠릅니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관념은 공간 자체가 한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결정적인 증거는 COBE (COsmic Background Explorer) 관측위성의 관측 결과입니다.
 
(2) 은하가 빛보다 빨리 멀어질 수 있나요?

틀린 답: 물론 빛보다 빠를 수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맞는 답: 가능합니다. 은하의 후퇴속도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따르지 않습니다. 은하의 후퇴 속도는 멀어질수록 한없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허블 반지름에 이르게 되면, 은하의 후퇴 속도가 빛의 속도가 되고, 그보다 더 멀리 있는 은하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후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상대성이론과 충돌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하가 팽창한다는 후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은하가 들어 있는 공간이 팽창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른 결과이고, 우주공간의 팽창 자체는 빛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3) 빛보다 빨리 멀어지는 은하를 관측할 수 있나요?

틀린 답: 은하의 후퇴속도가 빛보다 빠를 수 있다고 해도, 거기에서 오는 빛은 우리에게까지 도달할 수 없습니다.

맞는 답: 가능합니다. 소위 '허블상수'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빛보다 빨리 멀어지는 은하에서 방출된 빛알(광자)이
우리에게까지 오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4) 우주의 적색이동(빨강치우침)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틀린 답: 도플러 효과는 광원이 멀어지면 관측자에게 오는 빛의 파장이 길어진다는 것입니다. 은하 스펙트럼(빛띠)에 적색 이동이 있는
것은 광원인 은하가 공간 속에서 후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맞는 답: 은하가 공간 속에서 대단히 큰 속도로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은하는 거의 정지해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옳습니다. 따라서 처음 은하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 분포(스펙트럼)는 우리가 아는 빛띠(스펙트럼)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주공간 자체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이 빛이 우리에게까지 오는 동안 그 파장이 더 길어집니다.

(5) 관측할 수 있는 우주는 얼마나 큰가요?

틀린 답: 대폭발이 137억년 전에 일어났으므로,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크기는 137억 광년입니다.

맞는 답: 137억년 전에 방출된 빛이 우리에게까지 도달하는 동안 공간이 팽창해 왔기 때문에, 빛이 지나온 거리는 팽창이 없는 공간 속에서 빛이 137억 년 동안 지나온 거리보다 더 큽니다. 대략 계산해 보면 3배 정도 더 큽니다.

(6) 우주공간이 팽창함에 따라, 그 안의 은하나 그 안의 모든 것이 팽창하고 있나요?

틀린 답: 공간이 팽창하면서 은하도 함께 팽창하기 때문에, 가령 은하단(은하들의 무리)의 테두리도 그만큼 더 커집니다.

맞는 답: 공간이 팽창함에 따라 은하단 속의 은하들은 서로 멀어져 가긴 합니다만, 은하들 간의 인력 때문에 다시 가까워집니다. 두 가지 힘이 평형을 이루도록 은하단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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