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발 우주론의 개요와 몇 가지 오해
2012.01.27 23:33
2월 모임은 녹스님이 대폭발(빅뱅) 우주론에 대해 발표하시기로 했는데, 저도 좀 거드는 차원에서 간단하게 대폭발 우주론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
저는 천문학자도 아니고 우주론 전공도 아니니까, 제가 잘 아는 대폭발 우주론의 표준적인 역사를 간단하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름부터 말하자면, 1949년 프레드 호일(Fred Hoyle)이 BBC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의 '정상상태이론'(Steady-State Theory)과 경쟁하던 다른 이론을 두고 농담으로 말한 Big Bang idea(큰 꽝이라는 생각)을 그 주창자인 게오르기 가모프(George Gamow, Георгий Антонович Гамов)가 받아들였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1912년 베스토 슬리퍼(Vesto Slipher)가 나선'성운'의 빛띠(스펙트럼)에서 적색이동을 관측했습니다.
빛띠라는 것은 무지개처럼 빨주노초파남보의 색이 펼쳐지고 그 속에 특정 원소에 따라 검은 흡수선들이 나오는 것인데 은하에서 오는 빛의 스펙트럼이 지구상에서 보는 것을 기준으로 빨간색(파징이 긴 쪽)으로 치우친 것을 발견한 거죠.
1916년에 아인슈타인이 중력의 일반적인 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는데, 바로 이듬해 이 이론을 써서 우주 전체에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이 나옵니다. 유명한 얘기지만, 중력장 방정식을 우주에 적용하면 자칫 우주가 팽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챈 아인슈타인은 이를 막기 위해 중력장 방정식을 수정해 버립니다. 소위 우주 상수를 덧붙인 것이죠.
1922년 러시아의 수학자 알렉상드르 프리드만(Alexandr Friedman, 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Фри́дман)이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우주가 팽창하는 모형을 발표합니다. 1927년에는 벨기에의 물리학자/사제였던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가 프리드만의 연구를 모른 채로 마찬가지의 결과를 얻습니다. 르메트르는 이렇게 우주가 팽창할 수 있다면 과거에는 아주 작은 점에 모여 있었을 것이라는 선견지명 있는 주장도 제시했습니다.
1924년부터 에드윈 허블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나선은하들의 빛띠를 정밀하게 측정하여, 드디어 1929년에 유명한 허블의 법칙을 발표합니다. 먼 은하들은 모두 우리 은하로부터 후퇴하고 있는데,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 적색이동의 정도가 크다는 것입니다. 은하의 후퇴속도가 적색이동에 비례하기 때문에, 결국 은하의 후퇴속도가 우리 은하로부터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법칙이 등장합니다.
이 관측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1930년대 이후로 치열한 논쟁이 붙은 것입니다.
1948년 프레드 호일, 토머스 골드(Thomas Gold), 헤르만 본디(Hermann Bondi) 등은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은하들이 만들어진다는 소위 '정상상태' 이론을 제안합니다.
같은 해에 러시아 출신의 게오르기 가모프가 랠프 앨퍼(Ralph Alpher)와 로버트 허만(Robert Herman)과 함께 르메트르의 이론을 토대로 우주공간이 팽창한다는 이론을 발표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가모프가 말장난을 좋아해서, 논문에 참여하지 않은 한스 베테(Hans Bethe)를 저자 이름에 넣어 Alpher-Bethe-Gamow의 논문을 만든 뒤, 자기 이론을 알파-베타-감마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겁니다. 이 이론은 단순히 이론적으로 르메트르의 수학적 전개와 사변적 주장을 반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열팽창하면 온도가 내려간다는 열역학 법칙을 토대로, 만일 우주공간이 전체적으로 팽창한다면, 우주의 어느 방향에서나 똑같이 배경처럼 깔려 있는 빛의 복사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것입니다. 당시까지 알려진 수치를 이용하여 그 배경복사가 5 켈빈(즉 영하 268도 섭씨)보다 낮은 온도의 흑체복사에 대응한다는 예측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류 천문학에서는 가모프의 이론이 거의 무시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가 1964년에 미국의 전파천문학자 아노 펜지아스(Arno Penzias)와 윌슨(Robert Wilson)이 다소 우연히 이 배경복사를 발견함으로써 노벨상까지 타게 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주배경복사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1989년에 발사된 COBE (Cosmic Background Explorer) 위성이 10여분이 채 되지 않아 정확히 우주배경복사가 2.72548 ± 0.00057 K의 흑체복사와 10만분의 1 오차 안에서 일치함을 보여주었는데, 저 자신도 그 보도를 보면서 무척 신기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림 출처: http://lambda.gsfc.nasa.gov/product/cobe/c_edresources.cfm )
대폭발 우주론은 그 뒤로도 무궁무진하게 발전했습니다. 급팽창우주론(inflationary cosmology),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가속팽창 등이 대표적인 키워드인데, 요즘 나오는 우주론은 따라가기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2005년에 Scientific American 잡지에 실린 대폭발 우주론에 대한 오해(Misconceptions about the Big Bang)가 흥미롭습니다.
논문을 첨부하고,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해서 덧붙입니다.
(1) 대폭발(Big Bang)은 어떤 종류의 폭발인가요?
틀린 답: 대폭발은 마치 폭탄이 터지듯 허공에서 무엇인가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맞는 답: '대폭발'이라는 이름과 달리, 폭발 같은 것은 없습니다. 공간이 한없이 팽창하고 있을 뿐입니다.
에드윈 허블은 멀리 있는 은하들이 우리 은하로부터 후퇴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멀리 있는 은하에서
오는 빛이 전반적으로 빨간색(파장이 긴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은하가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퇴 속도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빠릅니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관념은 공간 자체가 한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결정적인 증거는 COBE (COsmic Background Explorer) 관측위성의 관측 결과입니다.
(2) 은하가 빛보다 빨리 멀어질 수 있나요?
틀린 답: 물론 빛보다 빠를 수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맞는 답: 가능합니다. 은하의 후퇴속도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따르지 않습니다. 은하의 후퇴 속도는 멀어질수록 한없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허블 반지름에 이르게 되면, 은하의 후퇴 속도가 빛의 속도가 되고, 그보다 더 멀리 있는 은하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후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상대성이론과 충돌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하가 팽창한다는 후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은하가 들어 있는 공간이 팽창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른 결과이고, 우주공간의 팽창 자체는 빛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3) 빛보다 빨리 멀어지는 은하를 관측할 수 있나요?
틀린 답: 은하의 후퇴속도가 빛보다 빠를 수 있다고 해도, 거기에서 오는 빛은 우리에게까지 도달할 수 없습니다.
맞는 답: 가능합니다. 소위 '허블상수'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빛보다 빨리 멀어지는 은하에서 방출된 빛알(광자)이
우리에게까지 오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4) 우주의 적색이동(빨강치우침)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틀린 답: 도플러 효과는 광원이 멀어지면 관측자에게 오는 빛의 파장이 길어진다는 것입니다. 은하 스펙트럼(빛띠)에 적색 이동이 있는
것은 광원인 은하가 공간 속에서 후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맞는 답: 은하가 공간 속에서 대단히 큰 속도로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은하는 거의 정지해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옳습니다. 따라서 처음 은하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 분포(스펙트럼)는 우리가 아는 빛띠(스펙트럼)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주공간 자체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이 빛이 우리에게까지 오는 동안 그 파장이 더 길어집니다.
(5) 관측할 수 있는 우주는 얼마나 큰가요?
틀린 답: 대폭발이 137억년 전에 일어났으므로,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크기는 137억 광년입니다.
맞는 답: 137억년 전에 방출된 빛이 우리에게까지 도달하는 동안 공간이 팽창해 왔기 때문에, 빛이 지나온 거리는 팽창이 없는 공간 속에서 빛이 137억 년 동안 지나온 거리보다 더 큽니다. 대략 계산해 보면 3배 정도 더 큽니다.
(6) 우주공간이 팽창함에 따라, 그 안의 은하나 그 안의 모든 것이 팽창하고 있나요?
틀린 답: 공간이 팽창하면서 은하도 함께 팽창하기 때문에, 가령 은하단(은하들의 무리)의 테두리도 그만큼 더 커집니다.
맞는 답: 공간이 팽창함에 따라 은하단 속의 은하들은 서로 멀어져 가긴 합니다만, 은하들 간의 인력 때문에 다시 가까워집니다. 두 가지 힘이 평형을 이루도록 은하단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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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1.2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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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2012.01.31 12:41
이제 읽었네요. 재밌는데요?! 틀린답 맞는답 특히~
오늘 "최초의 3분"이라는 책을 잠깐 봤는데요, 30년도 더 전에 나온 스타인 와인버그라는 분의 책인데..
역자서문의 제목이 최신판 과학 고전이라고. 이 책은 어떤가요? 읽기 쉽게 썼다고는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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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1.31 14:39
스티브스티븐 와인버그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이휘소와도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처음 3분간"(First Three Minutes)는 1977년에 출판되었고, 저도 고등학교 때 이 책(전파과학사 현대과학신서)을 읽고 물리학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었죠. 1993년에 새로운 판이 나왔고, 그것을 번역한 게 최근의 그 책입니다.
읽기는... 안 쉽습니다. ㅠㅠ 근데 재밌습니다.
제 자신은 상대성이론도 와인버그의 책 "중력과 우주론"(Gravitation and Cosmology)로 배웠고, 양자장이론도 와인버그의 책 "마당의 양자이론"(The Quantum Theory of Fields)으로 배워서, 여러 모로 친숙한데, 철학적으로는 근본주의적인 환원주의자이고 여러 모로 맘에 안 드는 입장(예: 물리학최고주의?)을 아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라... ^^
와인버그의 "처음 3분간"이 어디 있나 하고 서가를 뒤져 보니, 그 책은 안 보이고, 번스틴이란 사람이 쓴 "아인슈타인 I, II"(전파과학사 현대과학신서)라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초판은 1976년인데, 제가 가진 것은 1984년에 나온 8쇄입니다. 역자가 누구일까요? ^^ 장회익 선생님이십니다. 고등학교 때 이 책을 거의 외우다시피 읽었었는데, 제가 장회익 선생님의 함자를 처음 본 계기가 바로 이 책이었답니다. 특히 이 책의 부록으로 장회익 선생님께서 쓰신 "4차원 공간-시간과 특수상대성이론"이라는 글은 고등학생이던 저에게도 아주 명쾌해서 뭔가 상대성이론을 다 이해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죠. 그로부터 꽤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느낌이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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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2012.01.31 18:13
앗, 스타인도 스티브도 아닌 스티븐이었네요... Steven. ^^;
자연자연형의 오늘 댓글, 제가 읽은 형의 댓글 중에서 제일 재밌다고하면 실례일라나요? ^^;;;
저는 제목이 멋있어서 최초의3분을 모임 때까지 좀 읽어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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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1.31 18:38
ㅋ 스티브가 아니라 스티븐이었군요. 얼른 고쳤습니다. 호킹도 이름이 스티븐이죠. 철자는 Stephen이지만, 영국인들은 이걸 그냥 '스티븐'으로 읽는다더라구요. 와인버그는 Steven이구요.
저도 "최초의 3분"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없었던 초끈이라든가 급팽창이라든가 새로운 얘기가 많이 들어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런데... 댓글이 재미있다는데, 무슨 실례가 되겠습니까? 다만... ㅋㅋ 이제까지 댓글이 항상 재미없었다는 의미일테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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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
2012.02.02 17:59
녹스님, 자연님
기초반 학생의 질문입니다. 질문이 유치해도 친절한 지도 부탁해요.
1.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을 우주에 적용하면 우주가 팽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이 가능한가요? 수식으로 설명을 해 주실 수 있나요? 아마도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도전해 보고 싶내요.
2. "단열팽창을 하면 온도가 내려간다는 열역학 법칙을 토대로 만일 우주공간이 전체적으로 팽창한다면 우주의 어느 방향에서나 똑같이 배경 처럼 깔려 있는 빛의 복사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 여기서 왜 빛의 복사가 있으리라는 예측이 가능하지요? 그리고 그 빛의 ORIGIN은 어디 인가요?
3. 우주가 팽창한다고 할 때 어디로 팽창 하는 것인가요? 우주 밖은 공간이라 사고 될 수 없으면, 무었인가요?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요? 여기서 공간이란 물리학적 개념 정의는 무엇인가요?
4. 빛 보다 빠른 속도는 없다고 하는데, 은하가 빛 보다 빠르게 멀어 진다는 것은 결국 빛 보다 빠른 속도가 있다는 것인가요? 그러면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빛 보다 빠른 물체의 속도가 가능한 것인가요?
5. 우주공간이 팽창한다면 은하 간의 거리도 변할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 은하 안의 행성 간의 거리도 변 할 수 있는 것인가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질문을 하는군요. 그렇지만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면서 우주의 이해를 넓히고 상상력을 높히는 것은 아주 짜릿한 도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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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2.02 19:50
와! 이모작님의 질문이 너무너무 반갑고 적절합니다 ^^ 아마 상세한 건 녹스님이 해결해 주실 듯 하고 저는 제가 적어놓은 것 몇 가지 급한 대로 수습해 보겠습니다. ㅋ
일단 1번부터 시도해 보겠습니다.
뉴턴의 중력 법칙은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중력장의 공간 2계 미분도함수 = 밀도)로 나타냅니다.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게 아인슈타인의 주장이고, 결국 (공간적 거리를 나타내는 10개의 함수들과 그에 대한 여러 도함수들의 특정 조합 = 물질의 분포와 에너지 분포)로 번역할 수 있는 방정식이 나옵니다. 위에 인용한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이 그것입니다. 이 방정식은 연립 비선형 편미분방정식입니다. 10개의 함수가 위치좌표 3개와 시간 좌표 1개를 독립변수로 주어집니다. 그냥은 절대로 풀 수 없기 때문에 무리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조건을 부여하여 아주 간단한 (그래봤자 여전히 복잡한) 모양으로 축소시킵니다.
직관적으로는 중력이 끌어당기기만 하므로 팽창은 있을 수 없을 것 같은데 프리드만이, 그리고 나중에는 로버트슨과 월커가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면 팽창도 가능함을 증명한 것입니다.
더 상세한 것은 위키피디어를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Friedmann-Lemaître-Robertson-Walker_metr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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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2.02 23:36
2번 질문에 대한 답은 "태초에는 빛이 있었다"입니다.
'큰 꽝'(Big Bang)의 시기에는 우주가 매우 작고 엄청난 밀도에 엄청난 온도였습니다. 따라서 물질은 있을 수 없었고, 빛(즉 복사)과 물질(주로 쿼크)의 플라즈마 상태가 혼합되어 마치 수프나 죽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우주가 팽창하면서 점점 온도가 내려가자, 어느 순간 플라즈마 상태에 있던 물질들 중에서 쿼크들이 모여서 양성자나 중성자나 중간자 같은 하드론이 되고, 다시 이것들이 모여서 원자핵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물질은 양성자 하나였는데, 이것이 전자와 만나 수소원자가 됩니다.
문제는 수소원자들은 플라즈마와 달리 빛(즉 복사 내지 빛알)과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빛알이 쓰윽 지나갈 때 플라즈마 상태의 물질은 이를 금세 흡수하고 다시 방출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일단 원자가 만들어지자, 빛이 흡수되지 못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게 되는 상황이 시작됩니다.
그 전까지 걸쭉한 불투명한 죽이나 수프 같았던 우주에서 비로소 빛이 긴 거리를 갈 수 있는 상황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빛알의 평균자연경로가 유효적으로 무한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연스럽게 빛(복사)과 물질은 서로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고, 이 무렵을 '탈결합'(decoupling) 내지 '투명화'(transparation)라고 부릅니다. 빛이 중간에 물질에 걸기적거리지 않고 우주 끝까지라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결국 우주가 빛으로 가득하게 되었다는 말이 됩니다. 요컨대, 탈결합 이후 우주는 빛으로 가득해진 것입니다. 그렇게 공간을 가득 채운 빛알들이 소위 '흑체복사' 내지 '공동 공진'(cavity resonance)을 이룹니다.
그러다가 우주는 계속 팽창했고, 온도가 더 내려갔지만, 한번 빛으로 가득해진 우주는 그대로여서, 흑체복사 내지 공동 공진을 이루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온도만 내려가는 상황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의 모든 방향에 균일하게 퍼져 있는 배경복사는 바로 이 탈결합 때의 공동 공진의 잔여물입니다. 그래서 이 복사를 흔히 '잔여 복사'(relic radiation)라고 합니다.
대폭발 이후의 우주의 시간별 전개를 잘 요약해 놓은 것이 Timeline of the Big Bang이고, 특히 우주배경복사는 약 37.7만 년 전부터 나옵니다. 영어로 된 글은 그런 대로 맞는 편인데, 한국어로 된 것은 아마 영어로 된 것을 누군가 대충 번역해 놓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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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
2012.02.02 23:45
태초의 그것이 계속 복사 하며 팽창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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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
2012.02.02 23:55
단열팽창, 그리고 열역학 법칙에 의하면 닫힌계에서는 온도가 낮아져야 하는데....
여기서 어떻게 동일 방향에서의 빛의 복사를 추론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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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2.03 00:09
이소베 슈조가 쓴 "180억 광년의 여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가 10여 년 전에 번역한 책입니다. 혹시나 하고 검색해 보니... 놀랍게도!!! 아직 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앞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교보문고로 연결됩니다. 이제는 137억년이 된 게 한참인데, 아직도 제목이 180억 광년이네요. ^^ 같은 시기에 이 책과 함께 「대폭발: 우주는 이렇게 생겨났다」도 번역했는데 그 책은 절판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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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2.09 17:22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몰라서, 제가 가지고 있는 스티븐 와인버그의 "처음 3분간" 1977년판(영문) 책의 pdf 파일과 epub 파일을 올려 놓습니다. epub 파일은 calibre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pdf 파일에서 제가 만들었는데, 썩 그리 성능이 좋지는 않지만, iBooks로 읽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pdf 파일 자체에 그림이 별로 없어서 차이가 크지는 않습니다.
- The First Three Minutes_ A Modern View of the Origin of the Universe - Steven Weinberg.epub
- The First Three Minutes_ A Modern View of the Origin of the Universe - Steven Weinberg.pdf
- The First Three Minutes_ A Modern View of the Origin of the Universe - Steven Weinberg.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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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2.11 00:53
이모작님 질문에 조금 더 답을 해 보겠습니다.
질문3. 우주가 팽창한다고 할 때 어디로 팽창 하는 것인가요? 우주 밖은 공간이라 사고될 수 없으면, 무엇인가요?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요? 여기서 공간이란 물리학적 개념 정의는 무엇인가요?
대답3. 이 질문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저 일반상대성이론과 현대우주론이 그 질문에 어떤 답을 하는가 하는 점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과 그에 입각한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가 팽창한다기보다는 공간이 팽창하는 것입니다. 그 바깥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공간이란 다름 아니라 두 위치 사이의 거리를 정의할 수 있는 영역이 됩니다. 다행히 우주론에 관한 한, 시간과 공간이 분리될 수 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이 들러붙어서 4차원 시공간이 될 때 직관적 이해는 정말 힘들어지는데, 그나마 우주론에서는 이렇게까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다행한 일이죠.
질문 4. 빛 보다 빠른 속도는 없다고 하는데, 은하가 빛 보다 빠르게 멀어 진다는 것은 결국 빛 보다 빠른 속도가 있다는 것인가요? 그러면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빛 보다 빠른 물체의 속도가 가능한 것인가요?
대답 4. 빛보다 빠른 속도가 없다는 말은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른 것인데, 이 말에는 여러 가지 단서가 달립니다. 특히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원천적으로 빛보다 빠른 속도를 금지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볼(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별로 의미는 없습니다. 은하가 빛보다 빠르게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은하가 들어 있는 공간의 팽창 속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빛의 속도보다 커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Galaxy Redshifts Reconsidered 에 아주 유용한 설명이 들어 있습니다.
Is the universe expanding faster than the speed of light? 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질문 5. 우주공간이 팽창한다면 은하 간의 거리도 변할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 은하 안의 행성 간의 거리도 변 할 수 있는 것인가요?
대답 5. 여기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거리'라는 개념입니다.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거리도 늘어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기차가 이곳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처럼 그런 개념은 아닙니다. 직관적으로 확인할 도리가 없는 것이죠.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적색이동(빨강치우침)뿐입니다. 가령 은하를 몇 백 년, 몇 만 년 동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확인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주 흔한 풍선 위의 은하들 비유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림 출처: http://universe-review.ca/F02-cosmicbg.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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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2.11 10:29
조금 덧붙이자면 "거리"라는 개념이 핵심이 됩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거리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물질과 에너지 분포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양입니다. 19세기 이전에는 공간(과 시간)이 정해지면 거기에서의 거리도 유일하게 고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위 유클리드 기하학이죠. 로바체프스키, 보요이, 리만과 같은 수학자들이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기하학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 전에 가우스가 기하학적 주장을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믿음을 피력한 적이 있지만,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물리학 문제로 끌어내린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입니다. 거리를 나타내는 10개의 함수(거리함수)가 다름 아니라 중력장이라는 것입니다. 거리함수는 영어로는 metric 이라고 하는데, 종종 일본어를 따라 계량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自硏 自然
2012.02.11 12:07
사소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Gribbin의 책에서 읽었습니다. 가모프가 흔히 대폭발 우주론의 발견자로 공로를 치하받지만, 사실 진짜 공로는 랠프 앨퍼와 로버트 허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조지워싱턴 대학 응용물리학연구소에서 전쟁 관련된 일로 근무하고 있었고, 저녁과 주말에 일종의 취미로 초기우주에 대해 연구했는데, 마침 그 연구소에도 겸직하고 있던 가모프를 만나서 초기우주에서 수소와 헬륨이 만들어지는 과정(핵합성)에 몰두하게 됩니다. 가모프는 프리드만의 제자였지만, 우주의 팽창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고 있었고, 오히려 양자역학과 핵반응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앨퍼와 허만은 핵합성 문제를 통해 초기 우주가 아주 뜨거운 고밀도의 덩어리였으리라는 생각을 발전시켰습니다. 열역학적인 고찰을 통해 우주배경복사까지 도출했고, 그 복사가 온도가 5켈빈 쯤 되는 흑체복사와 같으리라는 결론까지 얻게 됩니다. 가모프는 이 결론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별로 믿지도 않았다고 그리빈은 말하고 있습니다. 앨퍼와 허먼은 아직 박사학위도 없는 20대였고, 자연스럽게 가모프와 공동저자가 됩니다. 하지만 논문의 아이디어와 계산은 대부분 앨퍼와 허먼의 것이었습니다.
가모프가 또 적절하지 않은 일을 했는데, 앨퍼와의 공동논문에 한스 베테를 공동저자로 넣은 것이죠. 요즘 같으면, 연구 부정행위로 자탄받을 일인데, 순전히 "알파-베타-감마"의 음율 때문이었다니 더 우습죠. 앨퍼는 끝까지 크게 반대했지만, 앨퍼보다 가모프의 힘이 더 셌습니다. 1960년대에 벨 연구소의 펜지아스와 윌슨이 우연히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했을 무렵, 프린스턴 대학의 피블즈는 열심히 우주배경복사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피블즈는 앨퍼-허먼 계산을 모른 채로 독자적으로 같은 결론에 이르었던 것입니다. 펜지아스-윌슨은 중대한 발견을 하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바로 같은 지역에 있던 피블즈는 몇 년 동안 찾으려 했는데 얻지 못한 것입니다. 이 발견이 알려지자 뒤늦게야 가모프가 자기도 그 연구를 했다고 열심히 홍보를 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앨퍼와 허먼의 공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마치 자신이 다 한 것처럼 했다는 겁니다.
여하튼 그리빈에 따르면, 대폭발(빅뱅) 우주론을 진짜로 처음 제창한 것은 가모프가 아니라 앨퍼와 허먼입니다. 역사상으로는 (교과서에서도) 거의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
이모작
2012.02.14 07:43
자연님의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설명한 내용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고 질문 드리겠습니다.
우선 한가지만, redshift 정도를 보고 속도를 추정할 수 있지 않나요?
그리고 Skype id 좀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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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2.14 16:35
적색이동으로부터 외부은하의 후퇴속도를 정할 수 있다는 말은 옳습니다.
적색이동(redshift)은 관측자료로부터 정해지는 양입니다. 빛띠(스펙트럼)에서 파장의 치우침(이동)을 측정하는 것이죠. 흔히
z = Delta lambda / lambda_e
와 같이 쓰는데, 방출된 빛의 파장이 lambda_e (즉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흡수선의 파장)이구요. 은하에서 온 빛의 빛띠를 관측하여 그 흡수선의 파장이 옮겨간 정도가 바로 Delta lambda 가 됩니다.
은하의 후퇴속도를 v라고 하면, 도플러 효과의 공식(고전역학적인)으로부터
z = v / c ( c는 빛의 속도)
가 됩니다. 따라서 계산만을 놓고 보자면, 관측으로부터 얻어낸 적색이동 z를 알면, 거기에 빛의 속도를 곱하면 대략 은하의 후퇴속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다만, 이 공식은 근사적인 것이기 때문에, 정확히 은하의 후퇴속도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올바르지 않지만, 만일 특수상대성이론의 도플러 공식을 사용한다면,
1 + z = [(1 + v/c ) / (1 - v/c ) ]^{1/2)
가 됩니다. 분수 형태이고, ^(1/2)라는 것은 제곱근을 의미합니다. 간단히 계산해 보면
v = c * [ 1 - 2 / (z^2 + 2 z + 2) ]
가 되는데, 여기에서 ^2은 제곱을 의미합니다. 이 공식이 그럴싸하다고 사람들이 (잘못) 생각한 이유는 z의 값이 아무리 커도 후퇴속도가 광속보다 커질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측정된 적색이동 중 가장 큰 값은 z=8.2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Redshift#Highest_redshifts )
직접 측정을 할 수는 없겠지만,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가 시작될 때(대폭발 후 약 38만년 후)의 적색이동은 z=1089 가 되는데, 이 무렵의 은하의 후퇴속도는 빛보다 1천 배 이상 빠르다는 말이 됩니다. 만일 특수상대성이론의 도플러 공식을 사용한다면, 은하의 후퇴속도가 거의 광속에 육박하지만 광속보다 큰 것은 아닙니다.
제가 관측천문학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실제로 정말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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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2.02.14 16:53
은하의 후퇴속도가 광속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것은 적색이동과는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대폭발(빅뱅) 우주론의 표준모형에서는 우주의 크기를 나타내는 척도인자(scale factor)라는 단위가 없는 양이 등장합니다. 보통 R(t)와 같이 씁니다. 여기에서 t는 시간이고, 우주의 크기는 시간의 함수입니다. 그래프에 등장하는 우주의 크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멀리 있는 외부은하까지의 거리를 D라고 하면, 이 모형에서 D와 R 사이의 관계가
D(t) R(t)
------ = ------
D(t_0) R(t_0)
가 됨을 수학적으로 유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t_0 는 현재의 시간입니다.
이 식으로부터 간단하게, 은하의 후퇴속도가
v = dD/dt = (dR/dt)/R * D
가 되는 것을 유도할 수 있고, 우주의 크기를 나타내는 척도인자 R에 대하여
H = (dR/dt) / R
이라고 정의하면,
v = H D
가 됩니다. 즉 멀리 있는 은하의 후퇴속도는 그 은하까지의 거리에 비례합니다. 바로 이것이 허블의 법칙이죠. 맨 처음에는 허블의 법칙이 멀리 있는 은하들 안에 있는 세페이드 변광성을 이용하여 외부은하들의 적색이동을 측정하여 추론한 것이었는데, 우주론의 표준모형에서는 허블의 법칙이 수학적으로 유도되는 법칙이 됩니다.
H는 소위 허블 상수가 되고, 현재 측정으로부터 정해진 값은
H_0 = 67.0 plus minus 3.2
또는
H_0 = 73.8 plus minus 2.4
입니다. 여하튼 허블 상수의 값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은하까지의 거리가 어느 값이 되면, 후퇴속도가 광속이 됩니다. 이 거리를 허블 반지름(D_H)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D_H = c / H_0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허블 상수 값을 대입하면, 허블 반지름은 대략 139억 광년이 나옵니다. 그러나 허블 반지름이 우주의 크기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허블 반지름보다 밖에 있는 은하는 광속보다 빠르게 우리은하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 됩니다.
우주의 크기는 적어도 789억 광년(24 기가파섹Gpc)보다 커야 현재의 우주배경복사의 관측결과와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http://plus.maths.org/content/os/issue10/features/topology/index ) 이 789억 광년은 지름이기 때문에, 대략 그 절반이 반지름이라고 보면, 139억 광년보다 3배 정도가 됩니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슬라이드 하나 올려 놓습니다. 대폭발 우주론이 잘 요약되어 있는 편입니다만, 조금 낡은 느낌도 있습니다. 암흑에너지와 급팽창 우주론은 아직 안 나오는 초급 수준입니다. 영어로 되어 있어서 읽기 싫을 수도 있습니다. ^^
덧붙여 급팽창 우주론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담은 슬라이드도 첨부합니다. 다만 이것은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어야 이해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WMAP (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이라는 관측우주선이 말해 주는 우주의 모습을 담은 영상도 첨부합니다. 마지막 것은 음악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갑자기 나오는 음악에 놀라지 않도록 미리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