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온생명론 작은 토론회, 재미있게 잘 마쳤습니다.
2010.03.03 19:16
모임 전까지 온생명론 연구모임에서 착실하게 준비를 하지 못해서
애써 모였는데 공부가 부실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요,
오신 분들이 최대한 성의있게 공부를 해오시고 발표를 준비해 주셔서
재미있고 생각해 볼 거리를 꽤 발견하는 토론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번 세 번째 온생명론 작은 토론회에는 총 열 한 분이 참석하셨습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모두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구요,
自然, 봄날, happysong, 시인처럼, 수수한, 눈사람, 그러게요 등 온생명론 연구모임 분들이
거의 다 모여 같이 KTX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自然님 소개로 김진영님이 참석해서 마뚜라나에 대해 그 사이 공부했던 것을 발표해 주셨구요,
한동안 바빠서 뵙지 못하던 조현신 선생님과 더불어 같이 오신 이옥분 선생님도 참석하셨네요.
토론회에 참석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옆에서 내내 happysong님네 선재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었답니다.
이번에는 다들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11시 정각에 시작했습니다.
끝나기는 6시를 조금 넘겨 끝났으니 점심 먹는다고 한 시간 지났다고 해도 꼬박 6시간을 공부했네요.
다들 대단하시더이다.
대충 아래와 같은 순으로 진행하였습니다.
- 11시 自然 - 장회익과 마뚜라나 소개 이야기
- "온생명과 자체생성성"
- 12시 둘러 앉아 김밥으로 점심 식사
- 1시 경부터 이후 6시 정도까지...
- 김진영 - 마뚜라나의 생명 이해 이야기
- "생명에 대한 이해를 위한 개념적 작업에 대하여 - 복제자와 자기생성성을 중심으로"
- 시인처럼 - 장회익과 마뚜라나 생명 이해 비교 이야기
- "마뚜라나의 생명 이해는 온생명론과 조화될까? - 마뚜라나의 생명 이론 검토"
- happysong - 장회익과 마뚜라나의 앎과 생명, 의식 이해에 대한 이야기
- "앎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의식이란 무엇인가?"
- 봄날 - 장회익과 마뚜라나의 인간(의 의지와 윤리 등) 이해에 대한 이야기
- "인간이란 (생명은) 무엇인가"
- 自然 - 온생명의 자의식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이야기
- "온생명의 마음과 마투라나의 생물학적 인지"
- 눈사람 - 어떤 이의 체험의 정당성에 대한 이야기
- "'자전거 타는 사람'의 환경 인식과 그 인식의 윤리적 정당성에 대하여 - 장회익과 마뚜라나의 인식론으로 생각해 보기"
- 그러게요 - 장회익의 지식 구분(대인, 대생, 대물)과 마뚜라나의 인식론의 보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에 대한 이해
- Eigen의 '초순환(hypercycles)' 모형과 이 모형에 대한 마뚜라나 등의 비판 소개
- 장회익 선생님의 새 설명 모형 소개 : <물질, 생명, 인간>(2009, 돌베개) 135-138쪽.
- 생식(또는 자체촉매적 기능)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마뚜라나의 규정
- 개체 발생 기제(복제replication, 복사copy, 증식reproduction) 중 autopoiesis, 또는 살아있는 체계의 조직(organization)에 속하는 것이 있나?
- 만약 개체 발생 기제 모두가 살아있는 체계의 조직에 속하지 않다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복제(또는 자체촉매적 기능)을 빼놓고 생명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나?
- '자체생성하는 조직 가진 체계'에는 외부로부터의 입력(input), 출력(output)이 없다는 것에 대한 이해
- '자체생성하는 조직'은 대상이 되는 체계의 물질과 에너지 면을 가리키는가, 자체를 이루는 요소(분자)를 생산하는 내적인 (분자) 생산 네트워크의 재생산 면을 가리키는가?
- 물질과 에너지 면에서는 열린 체계이지만 (분자) 생산 네트워크의 재생산은 개념적으로 닫혀 있을 수 있는가?
- 장회익의 인식론과 마뚜라나의 인식론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해
- '앎의 틀' 이야기와 '함과 앎이 같다'는 이야기에 공통점이 있는가?
- 장회익은 여전히 주체와 대상을 구분하지만 마뚜라나는 그렇지 않은 게 아닌가?
- 의식, 자(기)의식, 주체의식, 자유의지, 윤리 등의 문제에 대해
- 마뚜라나의 이야기는 '자율'을 허용함으로써 '사랑'이라는 행위와 윤리를 이야기하는데 장회익의 이야기에서 '자유의지'와 '윤리'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펼칠 수 있나?
- 윅스퀼의 '둘레세계 umwelt'와 장회익의 '보생명'에 대한 비교
- 보생명 개념을 둘레세계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둘레세계 개념에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
- 장회익의 '관측자'와 마뚜라나의 '관찰자'에 대한 비교
- 장회익 인식론에서 '관측자'와 마뚜라나 인식론에서 '관찰자'는 통하는 면이 있을까?
- 장회익의 '모형을 낳는 모형'이란 인간 이해와 마뚜라나의 '관찰자' 이야기, 윅스퀼의 '둘레세계' 이야기는 통하는 면이 있을까?
- 당위(윤리적 정당성)과 '온우리' 개념에 대한 이해
- 체험 주체마다 체험이나 인식이 다 다르고, 원칙적으로 이것을 공유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당위', '윤리'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누군가의 당위', '누군가의 윤리'일 뿐 아닐까?
- 결국 당위나 윤리의 문제를 이해하려면 '나'를 넘어서는 '우리', '온우리'까지 가야 하는 게 아닐까?
- '대인지식'의 의미에 대한 이해
- '대물지식'은 대상에 대한 앎, '대생지식'은 자신의 살아있음에 대한 메타관찰자의 앎이라고 보면 잘 이해가 되지만 '대인지식'은 체험 주체마다의 체험이 원칙적으로 공유될 수 없다는 마뚜라나식의 이해에서 보면 뜻이 매우 애매하지 않은가?
또 긴 시간 내내 피곤한 내색없이 이야기 잘 들어주시고 또 말씀 많이 해주신 장회익 선생님께도 많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옆에서 지루한 토론회를 잘 참아준 선재에게도 고마웠구요.
이번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 여름의 네 번째 온생명론 작은 토론회에는 꼭 와주시고요,
요번 토론회 참석하셨던 분들은 이날 돌려 읽었던 글들, 댓글로 첨부들 해주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글들이지만 자료들, 모아 두자구요.
- 시인처럼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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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
2010.03.04 13:56
부족하지만, 제가 발표한 글(자료) 두 편 올려 놓습니다. 참고를 위해 관련된 논문도 두 편 올려 놓습니다. 하나는 윅스퀼의 둘레세계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투라나가 2002년에 자체생성 개념에 대해 더 상세한 얘기를 정리해서 발표한 논문입니다. 마투라나의 논문은 시인처럼님이 상세하게 분석도 하고 번역해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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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생명 작은 토론회에 대한 늦은 후기
선반을 4개 만들어
모든 잡동사니를 창고에 싹
밀어넣었습니다.
이제 집안이 정돈되었습니다.
책도 보고 글도 두드려 볼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마음의 공간 !
그러면 작은 토론회에서 제가 배운 것을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억이 얼마나 날려나........
마뚜라나하면
기억나는 것이 자체생성성과 구조접속.
그리고 관찰자.
자체생성성은 영어로 autopoesis
poesis는 어원적으로 make라는 의미이고
(그래서 poet은 maker이라는 의미가 된다고 합니다)
auto는 스스로라는 의미니까
(예를 들어 autobiography)
autopoesis는 스스로를 만든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무엇을 생명이라 하는가 했을때
마뚜라나의 대답은 스스로 자기자신을 만드는 것이 생명이다.
자기자신을 만드는 것이니까
번식/생식은
생명의 본질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번식을 못한다고 생명이 아닌 것이 아니고
번식을 통해 생겨나지 않았다고 하여 생명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런 결론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자동차와 말을 비교했을 때
둘 다 내가 보살피면서 ( 말이 있다는 것은 아니고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죠)
먹이를 주고 씻어주고 사용합니다.
둘에 대한 나의 영향력과 애착은 동일합니다.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갈고 닦으며 둘 다 나의 계회적 관리에 따라
형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은 생명이고 자동차는 생명이 아닌 것이지요.
설사 말의 성장이 내가 만들어준 환경에 따라 100%로 결정된다 하더라도
나는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고 지금 상태로 몸과 마음을 만든 것은
말 자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자동차에 대해서는 말에 대해서 말한 것처럼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나는 환경만 조성해주었을 뿐이고 이 녀석이 스스로 자랐어라고...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생명의 이해에 대해 자체생성성 개념은 위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생명 메카니즘이 거의 다 밝혀져서
모든 과정에 대한 조작이 가능하다고 해도
위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닫혀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질/에너지의 교환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물질/에너지/애정 외부에서 주어진다 해도
스스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닫혀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이것이 사칙연산에 대해 닫혀있다는 같은 의미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구조접속
영어로는 structural coupling (?)
자체생성하는 생물의 외부와의 관계맺음을
표현하는 용어인 것 같아요.
아주 근원적인 개념.
예를 들어 물리에서 운동이나
화학에서 화학반응 같은……
그렇지만 이해 부족입니다.
비교할만한 개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네요.
그리고 관찰자 observer가 있는데요.
엉성한 이해를 통해 제가 받은 느낌은
전지전능한 관찰자 시점의 부정.
등장인물 중 하나.
등장인물 중 하나가 학문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일단 1부를 마치겠습니다.
2부는 장회익편입니다.
제 마음대로 써서 죄송합니다.
제가 제출했던 보고서는 아무런 내용은 없지만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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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생명 작은 토론회 늦은 후기 2부
쓰다보니 길어지고 밤도 깊어서 그냥 1부라고 하고 끊었어요.
할 수 없이 2부를 써야겠네요.
2부는 마뚜라나의 이론과 비교해본 온생명론이라고 할까나....
장회익선생님은 온생명이야말로 진짜 생명이고
낱생명은 진정한 생명의 단위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낱생명만으로는 생명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뚜라나의 생명이론은 낱생명 혹은 낱생명보다 더 작은 단위(세포)를 생명의 단위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뚜라나의 이론과 온생명론 어떤 식으로 비교해야 할까요?
1. 생명이란 무엇인가? 묻고 온생명도 생명인가? 하고 접근하는 방법
예를 들어 생명이란 자체생성성이다. 온생명도 자체생성한다. 온생명도 생명이다.
혹은 그 반대로도 말할 수 있을 지 모릅니다.
온생명은 자체생성하지 않는다. 온생명은 생명이 아니다.
어떤 개념을 정리하고 나서
무엇이 개념에 속한다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안 사실로서
온생명론은 온생명도 생명이다라는 주장이 아니라
온생명이야말로 생명이다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알아본 바는 아니지만 생명에 대한 정의도
물질에서 생명이 가능하게 되는 전제들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온생명도 자체생성한다. 온생명도 생명이다.
이런 말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
제 생각에는 이 두 이론은 출발한 질문이 서로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 같아요.
둘 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고 묻고 있지만 사실은
마뚜라나의 이론은 생명으로 부류되는 현상의 특징을 묻는 것이고
온생명론은 물질에서 생명이 가능하게 된 조건을 묻는 것입니다.
그렇담 온생명론에서 자유에너지, 자체촉매적 국소질서는 생명을 정의함에 있어서
필수 항목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초의 출발이 물질에서 생명이 가능하게 되는 질서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장회익선생님께 두 가지 질문을 했는데요.
하나가 본질과 현상의 구분에 대한 것이었구요.
왜냐하면 마뚜라나이론도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이론이라 할 수 있는데
장회익 선생님은 현상적인 차원이라 하셨기 때문에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의식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신비라고 하신 것인데요.
그것이 설명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답변을 듣고 제가 이해한 바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생님의 입장은 물질로 설명을 하는데까지 해보자 (본질적인 입장)
물질에서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질서는 찾을 수가 있는데 (온생명)
물질에서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질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신비)
이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이다니!!
제가 물리학에 대한 것이라면
중학교 때 물상 이후로 손을 털었지만
물리가 보는 세상이 내가 보는 세상과 다르다는 것
그래서 너무 어렵다는 것 정도는 이해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어떤 현상을 설명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을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물음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물리학적으로 타당하게 설명하는 것이 다른 인습적인 설명보다 본질적인 것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것을 설명할 수 있다(나아가 예측하고 재현하고 조작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어떤 것에 대해 다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쓰다 보니 뭔가 감당 못할 만큼 심오해진 것 같은데…
그 질문은 저의 문제의식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신
녹색아카데미관계자분께(?)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이따 ‘먹을거리와 녹색’ 후기도 쓸 예정입니다.
그것 끝나면 ‘간디와 녹색’ 예고편도 써야 합니다.
딸이 수련회 가고 남편은 늦게 오는 황금 같은 기회에
초강력 집중력을 발휘하려고 합니다.…낮잠도 자두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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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
2010.03.30 13:18
후기라고 하기에는 해피쏭님의 답글이 멋진 정리란 느낌이 듭니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배방도서관에서의 즐거운 토론이 아직도 생생한 느낌으로 남아 있습니다.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물리'를 통해 보는 세상과 직관적으로 보는 세상이 다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물리를 통해 보는 세상이 직관으로 보는 세상보다 더 잘보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직관으로 보는 것이 더 잘 보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 상호보완적인 접근일 것입니다. 특히 어떤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다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큰 울림이 있습니다.
생명의 참된 의미를 쫓다 보면 자연스럽게 온생명의 개념에 이르게 된다고 할 수 있는데, 제 관심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그 피부(껍질) 안에 있는 무엇과 그 바깥(보생명)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보생명의 문제를 마투라나의 '구조적 결합'이나 야콥 폰 윅스퀼의 '둘레세계' 개념과 연결시켜 보려는 것입니다.
해피쏭님 '간디와 녹색' 예고편(내지 공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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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님
건강은 회복되셨는지요?
제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책을 너무 많이 들고 다니시는 것 같으세요.
책가방을 조금 가볍게 하면 덜 아프실 것 같아요.
이건 은유가 아니라 말그대로.
무거운 짐 들고 다니면 몸이 피곤하거든요.
자연님의 주제는 정해졌네요.
다음 번 모임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마침 제가 다음 번 모임에서 구조적 결합 부분을 번역해 가기로 했어요.
윅스퀼은 모르겠지만
보생명 관련해서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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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
2010.03.31 23:53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몸살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건데요. 희한하게도 춘분 지나고 나면 꼭 이렇게 아픕니다. 한의학에서는 겨울내내 기가 움츠러들어 있다가 갑자기 풀릴 때 이런 증세가 있다고들 합니다. 이번에는 환절기 감기도 겹친 데에다 비가 오려니 더 몸이 안 좋더라구요.
책가방은 원래 옛날부터 공부못하는 사람이 책가방이 무겁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아마도 효과적으로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산만하게 책을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길에서 항상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요즘엔 주로 노트북컴퓨터를 들고 다녀서 그게 무게를 늘리고 있는데, 앞으로는 될수록 안 들고 다니려고 합니다. 책도 최대 두 권만 들고 다니려구요. 해피쏭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옷에도 이것저것 넣어 다니느라 늘 몸이 피곤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발표했던 "마뚜라나의 생명 이해는 온생명론과 조화될까? - 마뚜라나의 생명 이론 검토" 원고 올립니다. 마뚜라나의 최근 글의 중요한 부분들을 없는 실력이지만 조금 번역해서 인용해두었으니 '자체생성 autopoiesis' 개념을 이해하시는 데 약간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