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in Life 13차 후기
2011.03.05 16:54
이래봬도 제 요리가 어린이와 강아지한테는 꽤 어필하거든요.
오늘도 멸치, 치자단무지, 김을 넣은 비빔밥과
잘 끓인 신라면으로 세 명의 어린이를 행복하게 해주었답니다.
흠~ 기분좋다 !
이 여세를 몰아 밀린 숙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금요일 공부한 sensorymotor subjectivity 입니다.
자연님이 감각-운동주관성이라고 번역하셨네요.
감각-운동 주관성 !
그날 발제할 때도
그랬지만
이게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고, 언뜻 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가도 역시 모르겠다 싶기도 하도 …..
알쏭달쏭이네요.
감각-운동 주관성!
감각 - 운동은 living body 의 측면이고
subjectivity 는 lived body 의 측면이겠지요?
둘이 붙어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붙어 있는 그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은유가 예술작품이라는 거예요. (메를로 퐁티)
눈사람님은 피아노,
저는 악보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은 피아노, 악보가 다 필요하겠죠.
그것이 living body의 측면을 구성하는 것이고
또한 연주가의 운동도 필요하겠죠. (이것 역시 living body 입니다)
그런 것들이 합쳐져서 연주된 음악 그 자체 ! ( 지금 이 순간 )
그것이 바로 주관성이라고 하네요
이 비유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주관성은
바탕을 이루는 것이거든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내 앞에 사과가 있어요.
내가 그 사과를 먹어요.
이 행동은 sense하고 motor로 해체될 수 있겠죠.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든지 주체라고 부르든지 하는 부분은
1.저것은 사과다. (인지)
2.사과는 맛있다. (지식)
3.나는 배고프다 (감각?)
4.저 사과는 먹어도 된다.(판단)
5.사과를 집어서 베어 먹는 운동을 할 수 있다. (매뉴얼?)
….
(이런 것 중 전부일 수도 있고 보기에 따라서 그 일부만 취할 수도 있겠지만)
sensorimotor subjectivity에서 말하는 주관성은
1, 2, 3, 4, 5 ( 5는 잘 모르겠어요) 가 생겨나는 바탕 (?)
헹 ~ 전혀 설명이 안되는군요.
거울이 있으면 그 거울에는
철수가 서면 철수 얼굴, 영희가 서면 영희 얼굴이 비칠텐데
철수, 영희는 1, 2, 3, 4, 5( 5는 잘모르겠어요)에 해당하고
얼굴을 비추는 거울 그 자체는 감각-운동 주관성에 해당한다
뭐 이런 뜻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오른손이 왼손을 만지면 왼손의 느낌이 거울에 비치겠지만
왼손을 만진 오른손의 느낌도 거울에 비치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주체라고 생각하는 본질적인 측면은 왼손을 느끼다가 오른손도 느껴볼까 하는 그 순간(부분)일텐요….
그렇지만 그것도 거울에 비추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주체라고 생각하는 그것도 거울에 비치는 것 중 하나일 뿐인 것이죠
그래서 제 생각에는 이 논의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몸으로 표현되는 개체로서의 주체라는 의견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이해해보려고 애쓴 흔적입니다.
물론 책은 이러한 주관성을 논중하기 위해
메를로 퐁티, 훗설, 샤르트르의 개념들을 인용하였으며
지각 의식에 대한 동적 감각-운동 접근 (dynamic sensorimotor approach)라는 최근의 연구동향을 소개하면서 저자의 관점에서 본 그 의의와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도 모르겠고
발제를 할 때도 모르겠더라구요.
제 생각이 왔다갔다 지점을
그런데 이 후기를 쓰면서 다소 정리가 되지 않았나 합닏.
다음 번 모임도 기대해봅니다.
(애들은 아직까지 지치지 않고 노는데 저는 지쳐서 급마무리)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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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2011.03.0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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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2011.03.08 08:52
늘 해피쏭님이 멋진 후기를 올려 주시네요. ^^ 지난 번 온라인 모임 아주 근사했습니다. 이제는 컴퓨터도 손을 보고 네트워크도 손보고 해서 다음에는 끊김 없는(seamless) 온라인 참석이 가능하리라 기대하고 있답니다.
해피쏭님의 후기에 간단히 첨언을 할까 합니다.
피아노와 악보 얘기는 제가 놓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메를로퐁티가 "몸은 일종의 물체라기보다는 예술작품에 비교할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살아가는 의미들의 연결망이다."라고 한 것이 핵심적인 표현일 텐데, 악보의 비유는 상당히 그럴싸해 보입니다.
후설, 메를로퐁티, 사르트르에 이르는 몸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을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대비되는 칸트나 헤겔이나 하이데거의 '주관' 개념을 비교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후자는 현재의 지배적인 관점이기도 하죠. 흔히 '주관성' 내지 '주관'이라고 할 때에는 피가 흐르고 체온이 있고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몸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귀한 것이든 영원한 것이든 '몸'과는 별 관계가 없이 존재합니다.
후설-메를로퐁티-사르트르 계보의 연장선에서 현상학자 에반 톰슨이 주장하는 것은 한 마디로 "인간의 마음은 우리 몸 전체와 세계 속에 체현되어 있다."는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그 말의 의미를 세 가지 요소로 설명하는 것이죠. 즉 (1)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느끼기 위한 자기조절 (2) 세계와 결합되는 방식으로서의 감각-운동(바깥 세계로부터 나에게로, 그리고 나로부터 바깥 세계로) (3) 주관들 사이의 상호작용.
9장은 주로 (2)번 항목에 집중됩니다. 예전에 장회익 선생님께서 문지문화원 사이 특강 "생명의 자기 이해"에서 말씀하신 도식이 흥미롭게도 잘 연결됩니다.
⇒ 〈⊙ 〉⇒
이 도식에서 <O>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나'가 되고 왼쪽의 ⇒가 sensor라면 오른쪽의 ⇒가 motor에 해당합니다.
이것을 장회익 선생님께서는 "생명체의 인지-행위 구도"라고 부르셨죠. CMM이라는 약자를 쓰셨는데, Cognition-Motion Model의 줄임입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논의가 몸의 현상학이나 바렐라-톰슨의 논의와 상당히 잘 연결된다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아래 도식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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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1.03.08 10:24
위에서 언급한 석학강좌에서 장회익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참고도서 중에 Nicholas Humphrey의 "빨강색 보기 Seeing Red"에 흥미로운 논의가 많이 있습니다. 그 때 스캔했던 그림 몇 개 올려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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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1.03.08 12:40
요즘 길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종이로 된 책을 들고다니기보다는 pdf 파일과 같은 디지털 신호로 이루어진 책을 선호하거든요. 이번에 읽을 10장을 스캔한 파일 올려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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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1.03.14 16:20
다음 모임은 언제가 되는 것인가요? 제가 요즘 스케줄링을 한 달 단위로 하는 형편이 되어서... (교통편이나 여러 가지 다른 요인들 때문에) 모임을 미리 확정해 두지 않으면 변화요인이 많거든요. ^^ 아마 다음 모임에는 온라인으로 합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van Thompson의 책을 계속 읽어갈지 아니면 잠시 다른 책(가령 오르테가 이 가세트)으로 외도를 할지 온라인 상에서 의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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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2011.03.15 00:30
작은토론회까지 모임 안하는 줄 알았는데요?!
할 시간이 없는 걸로 압니당. 시간 안되는 사람도 많고 바쁜 사람도 많으니, 그냥 토론회 때 만나요. ^^;
그리고 이번 주 중에 자기 발표 주제를 간략하게나마 올리고, 올린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코멘트 해주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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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1.03.15 11:33
아, 그렇군요. 저는 원래 "체현된 마음에 대한 기연적 접근과 확장된 좀비 논변"이란 제목으로 9장의 얘기를 풀어보려고 했었는데, 너무 테크니컬하기도 하고 온생명론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면도 있어서 갈등하고 있었거든요. 지난 주 녹색문명공부모임에서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아주 좋은 소스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나는 나 더하기 둘레세계: 윅스퀼과 오르테가 이 가세트와 온생명"이란 제목으로 얘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윅스퀼의 얘기도 더 하고 오르테가 이 가세트에 대한 얘기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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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과장의 사기에 넘어가신 겁니까??? 저희도 넘어가설랑은 [대중의 반역] 사들고 왔지요. ㅋㅋ 앞에 좀 읽어보니, 정말 쎄구나 딱 최과장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철학적 배경이라고나 할까 그런 게 부족한 저로서는 꽤 어렵네요.
저는 무엇을 발표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인데 말이죠. 최근 떠벌리고 다니는 피어시그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서 느낀 바를 좀 적어볼까 합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에.. '나'는 '나' 하나인데, '나의 몸'과 '나의 정신'으로 나뉘어지면서 '나'라는 총체는 어떤 불편함과 고통이 있어왔나, 이런 걸 좀 고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어시그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아니구요. [Mind in Life]를 모임을 통해 따라가다보니, 몸과 마음을 그야말로 '합치기' 위해서 사람들이 아주 애를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나뉘어졌나, 그 원흉을 찾아서 정리 좀 할까도 싶었는데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관뒀지요. 대신 나뉘어진 몸과 마음으로 우리는 어떤 고생을 하고 있나, 이런 쪽으로 가닥을 잡을까 합니다.
기술공학이 인간의 감성을 소외시키고, 감성적인 인간들이 기술공학을 배타적으로 대하게 된 것은 기술공학과 과학, 철학에 잘못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들을 버릴 것이 아니라 바로 잡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피어시그는 얘기합니다. 피어시그는 과학보다는 기술공학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더군요. 이성, 감성, quality, moral, 기술공학, 분리.. 이런 말도.
그래서~ 작은토론회에서 제가 하고자 하는 바는, 자연형 말대로 피어시그의 이 책을 간략하게 소개하구요, 이 책에서 제가 공감하게 된 부분과 그 이유를 좀 정리해볼까 합니다.
어제는 벼르다가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를 빌려왔는데요, 책 뒷장 소개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이성과 과학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인간의 정신과 문화, 예술...
그러고 보니, 이성과 감성의 분리라는 신화(?!)로 고통 받고 방황하는 인간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이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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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철학 vs 철학](강신주)의 목차를 훑어보다가 재밌는 제목을 발견했어요. 2부 동양편에 보면, "7.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유부 vs 편작", "17. 마음은 실체적인 것일까?: 종밀 vs 임제"라는 장이 있습니다.. 17장을 먼저 좀 읽어봤는데 부처상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저도 궁금해한 적이 있는데, 인도의 싯다르타 부처상을 보면, 갈비뼈가 다 보이는 깡마른 부처상인데, 우리나라나 중국의 부처상은 아주 풍만하시잖아요. ^^; 피부도 좋아보이고, 입술도 빨갛고, 토동하지요. 그게 동양의 사유와 기독교적 사유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대학]에 '심광체반'이라는 표현이 있다고 하는데요, "마음이 넓어지면 몸이 윤택해진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동양 특히 중국의 사유에서는 몸과 마음이 같이 간다는 거죠.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그렇지가 않지요. 기독교의 회화를 보면, 정신이 숭고한 사람은 거의 항상 초췌하고 남루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조각에서도 그렇구요. 인도도 유럽과 같은 인도유럽어족이라 기독교와 비슷한 특징을 보였다는 것이죠.
그런데 싯다르타는 "영원불멸하는 자아를 부정하면서 인간의 일상적인 삶을 긍정했던 사상가"라는데, 인도인들은 그를 깡마른 고행자로 만들어버린 거죠.
한편 유럽인인 스피노자는 오히려 동양적인 사유와 공통점이 더 많다고 하네요. 인용은 모두 [철학 vs 철학], 17장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책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서원지기소년샘의 사기?!에 넘어간 면은 좀 있지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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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부터는 자연자연님이라고 해야 될까요?
3월에 온생명공부모임은 더 이상 없는거군요.
그럼 4월 어느 때로 정해서
mind in life 은 이번처럼 각자 알아서 읽는 걸로 해서
마무리하는 모임만 한번 더 가지면 어떨까 합니다.
(아무리 정이 떨어졌어도 옛정을 생각해서 마무리는 해야하지 않을까요? )
그때 마무리도 하고 새로 읽을 책도 정하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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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1.03.16 12:04
ㅋ 자연자연..은 좀 우스운데요? ^^ 원래는 자연과학 출신이고 또 자연과학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서, 2002년이나 2003년 쯤에 自然이란 별명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가만 보니 그 두 글자만 놓고 보면 "스스로 그러하다"는 아주 거창하고 노장 사상과도 통할 듯한 큰 느낌이 들어서 빌려 입은 옷처럼 좀 불편하더라구요. 그래서 "스스로 살펴본다"는 의미로 自硏은 어떨까 했던 건데요. 그렇다고 원래의 自然을 버리기도 아까운 느낌이라... 제가 뭐든 잘 못 버리는 스타일인지라...
저도 4월에 Mind in Life 정리모임 하는 데 한 표입니다.
눈사람님의 댓글은 따로 독립된 새 글로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도 아주 재미있어 보입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그래도 미리 조금이지만 읽고, 모임을 하고, 다시 해피쏭님의 후기를 보니, 뭔가 공부가 좀 되는 기분이 드네요. 후기에 대한 후기를 써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지만, 뭐라고 써야할지 암담... ^^;; (후기를 블로그와 이곳에 다 올리셨군요.. 댓글도 옮겨봤습니다. ㅋㅋ 신라면 먹은지 정말 오래 됐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