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경제(학)
2011.08.03 16:24
지난 번 온생명론 공부모임에서 박인구님의 발표 중에 칼 폴라니 얘기가 나왔는데, 그 대목에서 제가 귀동냥으로 배운 '선물의 경제'(economy of gift)가 떠올랐습니다.
간단한 메모 차원에서 몇 자 적어 볼까 합니다.
우선 개념 자체를 보면, 선물의 경제는 쉽게 말해 시장경제 즉 화폐(돈)를 매개로 한 교환의 경제와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교환의 경제와 달리 댓가 없이 주는 경제시스템 내지 사회체제가 바로 선물의 경제입니다. (http://www.gift-economy.com/)
이 개념을 처음 학문적으로 다루고 소개한 사람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내지 문화인류학자인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라고 합니다. 1923년에 출판된 모스의 [증여론](L'Essai sur le don. Forme et raison de l'échange dans les sociétés archaïques)에서 북아메리카 원주민(소위 '인디언')이나 폴리네시아 군도를 비롯한 여러 '미개' 사회에서 보이는 특이한 선물(그냥 주는 것)의 경제시스템이 상세하게 다루어졌다고 합니다.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론은 저 같은 속물에게는 아주 멀어보이는 얘기라면, 선물의 경제는 의외로 가까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줄곧 학교에만 있어서인지, 아니면 본격적으로 '돈을 버는' 일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아직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돈' 때문에 하는 것에 대해 미묘한 심리적 부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돈 안 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쪽은 아니죠. 결국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어떤 일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결정하는 데에는 그에 대한 '돈의 보답'이 결코 빠지지 않는,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막연히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도 가지고 있(었)고, 공동체주의 내지 코뮨주의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거대한 교환경제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아주 작은 한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는" 나약한 삶이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것을 알아나가는 기쁨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 주고 거기에서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통해 얻는 즐거움도, 결국 곰곰히 생각해 보면, '돈이 되지 않을 때' 즉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기쁨과 즐거움이 되겠는가 확신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화여대에 적을 두고 공부를 하면서 젠더연구(페미니즘), 공간론, 문화연구, 탈식민주의 같은 것을 귀동냥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중에 아주 솔깃했던 것이 바로 '선물의 경제'라는 개념이었죠. 아낌 없이 주기만 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싶은데, 실제로 많은 작은 공동체 사회에서 그렇게 선물로 주고받는 것을 통해 체제가 아름답게 유지되는 것을 보면, '선물의 경제'라는 시스템은 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지난 번 녹색문명 공부모임에서 '작은 것이 가능하다'라는 발표를 놓친 것이 무척 아쉽고 속상한 일인데, 아마 그 '작은 것이 가능하다'라는 것, 내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도 '선물의 경제'와 연결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칼 폴라니의 [대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도 직접 연결될 겁니다. (4장 본문)
선물의 경제와 관련하여 기포드 핀쇼(Gifford Pinchot)라는 분의 글이 있습니다. 눈사람님이 관심을 보이실 것도 같은데, 루이스 멈포드, 그레고리 베이트슨, 루이스 하이드 같은 사람들을 인용하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환경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기포드 핀쇼는 미국의 산림학자(초대 산림청장) (1865–1946)와 동명이인이네요. 그 유명한 핀쇼는 환경보전의 문제를 둘러싼 논의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로 거론되고 합니다. (참고: "미국 환경사의 흐름" )
(오래 전에 녹색문명 공부모임에 이와 관련된 석사학위논문(기포드 핀쇼의 체계적 산림관리와 산림학의 전문직업화)을 쓴 이종민씨를 초청해서 강연을 들은 적도 있죠. 기억하시는 분 있으신지... ^^ )
쥬네비에브 보건(Genevieve Vaughan)이란 분이 쓴 For-Giving: A Feminist Criticism of Exchange이란 책이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교환경제 내지 시장경제를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저도 기회 되는 대로 조금씩 읽어보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너무 시간이 없긴 하네요. (링크를 클릭하면 책 내용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자급자족 프로젝트와 연결시켜서 언제든 한번 함께 얘기해 보면 좋으리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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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구
2011.08.2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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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1.08.25 16:41
제가 서울에 가기가 힘들어져서 무지무지 안타깝고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9월 10일(토)에는 추석연휴라 모임이 없고, 그 다음 주 9월 17일(토)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제가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
혹시 9월 16일(금)에 모이신다면 제가 서울로 갈 수 있도록 스케줄을 조정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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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song
2011.08.25 17:30
글쎄요.
9월 16일은 17일 바로 전이라 좀 그렇고.....
9월초라면
1일부터 8일 사이에
하루를 잡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월요일은 빼고)
언제가 되든
발표준비는 해놓고 있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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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song
2011.08.25 22:28
참! 이번 녹색문명모임 때
수수한님이 온생명모임일정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아마 참석하시려는 것일테지요? (^ -^)
그럼 박인구님, 수수한님, 밋밋한님, 그리고 저
뭐 이정도인가요? (= .=)
시인처럼님은 업무상황에 따라 가능하면 참석
자연자연님은 무리하게 참석하지는 마시고....
그리고 몇 몇 왔다갔다하시는 분(?)이나
기약할 수 없는 분(?)들도 오시면
대~환영!!!
이렇게 정리해야 모임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자연자연님과 시인처럼님의 부재로
구심점이 없어서 말이지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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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1.08.26 09:21
'부재' 때문에 죄송합니다. 제 생각에는 김석진 선생님을 빠뜨리신 것 같습니다. 해외출장 때문에 종종 불참하시지만 열성이 대단하시잖아요. ^^ 기약은 못 해도 상황이 허락한다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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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song
2011.08.26 15:36
제 말이 좀 잘못되었네요.
두분의 사정으로 구심점이 부재 ...
이렇게 되야 하는데요... (쩝쩝)
그리고 전혀 죄송하실 일이 아니지요.
여기가 생계를 책임져주는 곳도 아닌데 말이지요.
뭐든지 다 죄송하다고 하시면 난감...
그래서 저는 인정할 건 인정해야
모임이 유지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상황이야 항상 변하는 것이니까 ..
모임이 유지된다면 언젠가 또
올출석하는 좋은 날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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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1.08.26 19:30
하하~ 그러고 보니 '구심점의 부재'가 더 알맞은 표현 같기도 합니다.
아, 너무 죄송하다는 말을 자주 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ㅋ 저는 종종 스스로 신기해 할 때가 있는데요... '선물의 경제'와도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화폐 중심의 경제체제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안 하고, 어떤 결정을 하고 안 하고 자체가 쉽게 말해서 "돈이 되는가?"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전에 아는 분의 소개로 어떤 단체(아마도 비영리 단체)에서 주최하는 연속강의 중 하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얘기하기로는 강의료를 얼마를 준다고 했는데, 그 때만 해도 별로 신경 안 쓴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며칠, 아니 몇주, 아니 몇 달이 지나도 그 강의료는 전혀 들어오지 않더라구요. 그 때 제가 속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죠. 객관적으로 보면 그 단체의 연속강의에 참여한 학생들은 수강료를 지불하고 강의를 들은 것이고, 제가 여러 바쁜 와중에도 잘 모르는 단체에 강연을 했을 때에는 강의료 얼마, 라는 것이 적어도 차비 등의 비용을 고려할 정도는 되었으니까, 그 단체의 간사가 처음 연락을 줄 때 얘기했던 강의료에 대해 저는 당연하게 생각했었거든요.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은... 가령 아는 단체라거나 내가 적극 동참하는 곳이라면 강의료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점입니다.
하여튼 생계를 책임져 주지 않더라고 약속을 소중한 것이고 그런 노력들이 모여야 뭔가 새롭고 창조적인 것이 생겨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이 '선물의 경제'에 대해 제가 공부한 것을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간단히 자연님과 문자로 '다음 온생명'모임에 대해 문의드렸는데, 아직 정해진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9월 10일(토)에는 추석연휴로 인해 월모임이 많은 참석이 우려되는바, 미리 그전에 온생명 모임을 한번 쯤 했으면 하는데..
서울에 계신분들 의견이 궁금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9월 초에 한번쯤 모여서 이야기했으면 하는데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