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오후 7시 이음책방
2011.04.27 21:29
아무도 공지를 올리지 않는 분위기인데, 아무래도 공지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기다리다가... 대략이라도 올려 봅니다.
다음 모임은 4월 29일 오후 7시 이음책방입니다. 즉 내일모레가 되겠네요.
지난 번 모임에는 모두 9명이 참석했습니다. 아무래도 부담이 적을수록 모이는 수가 늘어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의논의 결과 앞으로는 각자 자신의 연구주제를 정리해 와서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이번 모임에는 그러게요님과 제가 발표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밀려닥치는 일의 폭풍 속에 발표 준비가 거의 안 되어 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여간 큰 게 아닙니다. 일단 저의 주제는 기연적 접근과 둘레세계와 온생명론을 이어보자는 것인데, 이 아이디어가 아직 제대로 제 머리속에 녹아들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숙제에 밀려, 부끄럽지만, 이번 모임에는 발표를 못 한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대신 그러게요님의 발표를 듣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그러게요님에게 혼날지도 모르겠습니다.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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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쏭
2011.04.2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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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1.04.29 13:11
ㅋ 알겠습니다. 앞으로 공지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얼른 얼른 공지사항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게요님의 발표만으로도 충분히 묵직하다는 말씀... 공감입니다요. 읽은 것을 가져오신다니 더욱 감사합니다요. ^^
지금 열차 안에서 쓰고 있는데, 열차 안의 인터넷 접속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저녁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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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1.05.02 16:19
4월 29일 모임은 그러게요님의 발제를 중심으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모두 6명이 모였고, 흥미로운 자리였습니다.
그러게요님이 "나 아닌 것을 어떻게 부를까? 환경, 자기환경, 보생명, 움벨트"란 제목의 10쪽짜리 발제문을 읽어주셨고, '나'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하이데거와 칸트가 주로 논란이 되었습니다. 제가 괜히 "칸트의 접근이 나쁘다"고 말했다가 얘기가 좀 비화된 것 같기도 합니다. 결국 세계를 나와 나 아닌 것으로 구별하는 것에 책임이 있는 철학자가 데카르트 아니면 칸트가 아니겠는가 하고 둘러둘러 말했어야 했는데, 제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었던 거죠.
'나'라는 개념과 '우리'라는 개념의 관계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별하는 문제는 중세유럽을 염두에 두면 '주체'(Moi/Subjekt/Ego)라는 관념이 새로이 등장한 근대서양철학과 분리되지 않을 문제라는 것이죠. 다만, 얘기가 너무 커져 버려서 애초에 "'나 아닌 것'이 무엇인가?"를 문제시 삼은 것이 아니라 단지 "'나 아닌 것'을 뭐라고 부를까?"가 문제였을 뿐임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끝자락에는 "세계 속의 존재"(In-der-Welt-Sein)라는 하이데거의 개념도 다시 거론되었고 앞으로 더 얘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기연적 접근인가, 발제적 접근인가 하는 물음을 비롯하여 또 다른 중요한 물음들이 있었습니다.
5월 13일 모임은 해피쏭님이 풀어주시기로 했는데, 정확한 내용은 지금 바로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해피쏭님! 간단하게 소개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3일도 시인처럼님의 '직장'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늦으신다는 분이 많아 보였는데, 조금 늦게(가령 7시반) 시작하는 것도 고려해 봐 주시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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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구
2011.05.02 22:52
찬성입니다. 7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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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투 7시반!
그럼 7시 반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발표는 저만 하는 건 아니고
도현님도 준비하시고 계시죠.
저는 가이아론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책은 러브록의 <가이아> 를 보고 있어요.
요약 정리 + @ (가능하다면)가 되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럼 일단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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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硏 自然
2011.05.04 11:02
예, 7시반 저도 찬성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도현님도 이번에 발표하는 건가요? 주제는 하이데거의 In-der-Welt-Sein 세계 속의 존재인가요? 제가 정확히 파악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제임스 러브록은 핵발전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가이아 이론이 그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고들 합니다.
http://www.gaiatheory.org/synopsis.htm
http://www.ecolo.org/lovelock/what_is_Gaia.html
http://www.ecolo.org/media/articles/articles.in.english/love-indep-24-05-04.htm
가이아 이론을 심각하게 검토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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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모임 후기를 빠뜨렸어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많이 나질 않아서
미루다가 깜빡 하고 말았네요.
오늘 “가이아” 읽기가 꽤 진척이 있었지요.
흐뭇흐뭇
그래서 잠깐 후기를 써볼 수도 있겠어요.
그리고 최근에 조카 숙제 도와주다가
“신을 옹호하다”라는 책을 잠시 보게 되었는데
지난번에 박인구님을 통해 화제가 되었던
실존의 영역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위에 자연님이 이미 올려주셨듯이
그러게요님이 환경, 자기환경, 보생명, 움벨트의 개념을
비교하는 글을 발표하셨어요.
이미 모임에서 한번 발표하신 적이 있다고 하세요.
(저는 아무래도 기억이… 그때 어떤 소수민족이 한글을 문자표기로 사용하기로 했다는 에피소드로 시작하신 것만 …. 기억납니다. - _ -;; )
다시 한번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서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시인처럼님이 생명의 정의에 대해 쓰신 글도 다시 한번 발표하면 어떨까요?)
‘나’ 아닌 것을 어떻게 부를까? 가 문제 의식인데…
그래서 저는 더 헛갈렸던 같아요.
위의 개념들은 잘 비교 해주셨고 명확했는데…
일단 “나” 아닌 것이라고 일차규정 하고
(이것은 주체의 문제로 논의가 번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또 이야기 중에 본다고 하지 않고 부른다고 한 것이 의미가 있다고 하셨는데 ….
(이것은 논의에 대한 실천적 관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일단 부르다 보면 보는 법도 바뀐다는 관점에서? 아니면 보는 것은 이론적 탐구가 더 깊어야 하지만 부르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인지? 등등 )
뭘랄까? 글의 의도랄까? 그것이 저는 헛갈렸어요...
다소 엉뚱하게도 정작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나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나로 느낄 수는 없다”(비숫하게 기억했지요?)라는 대목에 집중이 되었던 것 같아요. 박인구님이 엄청난 공감을 표시하면서 말이지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글의 숨겨진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엥? ) 그렇지만 이때 나눈 이야기는 정리할 수는 없겠어요. 이해를 제대로 못했거든요.
“해리포터와 지하철 옆자리 사람” 와
“이해할 수는 있지만 느낄 수는 없다.” 가 어떻게 연결이 되었는지
지금 더듬어보니 까마득하네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이 글은 여기서 끝내고
다음 모임에도 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면
어떻게 정리볼 수 있을까
한번 고민해보아야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지가 나왔네요.
자연자연님이 계속 공지하세요.
당연히 자연자연님이 공지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제 생각에도
그러게요님의 발표만으로
충분히 묵직하다 싶고
자연자연님은
지난번에도 하셨는데
구태여 또 할 필요없지요.
혹시 조금이라도 시간이 남으면
활용할 수 있도록
제가 아주 아주 약간 읽은 게 있는데
그거라도 가져가 볼께요.